정부·여당 ‘공정경제 3법’ 강행

내년엔 더 강한 규제 입법 예고

기업들 세대교체·새 먹거리 찾기

학계 “기업정책 전환·규제 개혁을”

지난 1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확대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
지난 1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확대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

“경제계에서 정치권에 여러 차례 의견을 냈음에도 ‘기업 관련 법안임에도 기업 의견은 무시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일방통행이 예상됩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오래 기업을 경영했지만, 올해처럼 힘든 해는 1998년 외환위기를 빼고는 없었습니다.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 기업 경영에 부담을 늘리는 법이 무더기로 통과돼 기업 부담이 더 커졌습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대한민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와 한국경영자총회협회(경총)의 수장들이 올해 하반기 잇따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언급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지난 9일 거대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복합기업집단감독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두 수장의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올 한 해 경제계가 처했던 상황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코로나19’와 ‘규제’로 좁혀진다. 21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 잇따라 통과된 각종 규제 입법과 관련 “기업인들의 ‘눈물 호소’에도 불구하고 일방통행식으로 추진됐다”는 비판이 야권과 재계 안팎에서 이어졌다.

경총에 따르면 올해 나온 법안 중 기업활동에 부담을 주는 법안은 213건에 달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위 ‘기업을 격려하는 법안’은 한 건도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서울 대한상의에서 열린 확대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공정경제 3법이 기업을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기업을 건강하게 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는 긍정적인 인식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박 회장은 이 자리에서 “상법 개정 취지에는 경제계도 공감하지만 규제 방식과 내용에는 아쉬움이 많다”면서 “당장 내년 주주총회부터 혼선을 줄이기 위한 선제 대응과 보완책을 건의드린다”고 다시 한 번 읍소했다.

대내외적 어려움 속에서도 국내 주요 기업들은 세대 교체를 통해 조직 쇄신과 ‘새 먹거리 찾기’ 등 활로 개척에 힘을 쏟았다.

주요 그룹들이 본격적으로 3세·4세 경영을 시작한 점도 올해 재계의 중요한 변화로 꼽힌다.

삼성그룹은 한국 경제계의 거목인 고(故) 이건희 회장이 지난 10월 별세한 이후 온전한 ‘이재용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부회장은 반도체 등 기존 사업의 경쟁력 강화 및 인공지능(AI)·바이오·5세대(5G) 이동통신 등 미래 먹거리 사업 역량 확보를 위해 전 삼성 계열사의 조직을 재정비했다.

현대차그룹도 지난 10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신임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경영승계를 마무리했다. 현대차그룹은 조만간 글로벌 시장 상황과 대내외 경영 환경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년도 사업전략을 확정할 계획이다. 4대 그룹은 위기시 단기적인 사업 전략으로 대응하는 ‘컨틴전시 플랜’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정부와 거대여당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은 경제계에 더욱 험난한 일정이 예상된다.

전경련에 따르면, 징벌적손배배상과 집단소송제로 증가할 소송 추산액은 각각 8조3000억원, 1조7000억원으로, 총 10조원에 이른다. 재계는 공식적으로 법무부에 반대 의견을 피력한 상태이나, 현재까지 정부·여당은 입법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최근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추진되면서 30개 경제단체가 일제히 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든 사망사고에 인과관계 증명 없이 책임을 부과하는 것으로, 공동연대 처벌을 가하는 연좌제와 같다”고 토로했다. 재계는 집단소송제, 징벌적손배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을 더해 ‘기업징벌3법’이라 규정하고 있다.

이미 재계는 올해 코로나 여파로 심각한 경영 불확실성에 봉착했다. 코스피 상장기업 687개사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은 각각 1440조원, 84조원, 56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7%, 6.29%, 9.44% 감소했다. 그나마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삼성전자 착시효과’가 크다. 이 중 삼성전자 실적을 제외하면 하락 폭은 각각 6.73%, 18.84%, 21.61%로 급증한다.

업종별로도 의약품을 비롯,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증가한 업종은 5개에 그쳤다. 운수창고(-18.62%), 화학(-13.64%), 철강(-11.26%) 등을 비롯, 12개 업종에서 매출이 감소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한계기업 수는 전년 대비 44% 급증한 5033개에 이를 전망이다.

경총이 전국 30인 이상 기업 212개사를 대상으로 2021년 경영 전망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 기업 중 ‘긴축 경영’ 또는 ‘현상 유지’를 답한 비율은 각각 49.2%, 42.3%에 달했다. 반면 ‘확대 경영’을 하겠다고 응답한 곳은 8.5%에 불과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올해 기업들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악조건 속에서도 투자와 고용 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최근 기업규제 3법과 노동관계법 등 연이은 입법으로 기업환경이 더욱 악화될 우려가 있다”며 “민간 활력 회복과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기업정책의 전환과 적극적인 규제 개혁에 적극 힘 써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양대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