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허언(虛言)’이 됐다. 이 정권의 핫 이슈가 된 집값 이야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1월 취임 2년 차 국민과의 대화 때 “부동산 문제는 자신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에서는 전월세 가격이 정말 안정돼 있지 않느냐”고도 했다. 대통령의 말에 국민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내심 기대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도 “부동산 시장의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을 비롯 청와대 참모진과 여당의원, 국토교통부 장관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했다. 요약하면 “각종 대책으로 시장은 안정돼가고 있다. 집값은 잡힐 것이다”로 압축된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희망고문’이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전국 주간 아파트 상승률은 지난 7일 역대 최고치(0.27%)를 기록했고,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66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말을 믿고 매수를 미뤘던 이들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다. ‘부동산 블루(우울증)’, ‘벼락거지(집값이 오르는 바람에 갑자기 거지 신세가 된 무주택자)’라는 자조섞인 신조어들도 등장했다.
이런 와중에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고 있다. 정부는 집값을 2017년 5월 정권출범 초기 수준으로 낮춰, 무주택자들이 집을 살 수 있는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하더니 시나브로 ‘임대주택 찬가’로 바뀌었다. 7월말 여당이 강행한 ‘임대차2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이후 전셋값이 치솟고, 이에 대한 방편으로 임대주택 확대를 골자로 하는 11·19 전세대책을 내놓으면서 분위기가 더욱 ‘매수’에서 ‘임대’로 흐르고 있다.
아파트 마련은 점차 국민들이 꿈꿔볼 수 없는 환상이 됐고, 맘껏 먹을 수 없는 빵이 됐다. 부동산 민심이 악화되자 예정에 없던 국토부 장관도 전격 교체됐다. 정치인 출신의 김현미 장관 자리에 주거복지전문가인 변창흠 전 LH공사 사장이 내정됐다. 변창흠 후보자는 늘 시세차익 환수와 공공임대 확대를 강조해왔다. 내심 정책전환을 바랐던 시장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이런 가운데 뿔난 부동산 민심을 임대주택으로 전환해보려고 문 대통령이 방문한 경기도 화성동탄의 행복주택 단지에서 사달이 났다. 13평형(44㎡) 공공임대아파트를 찾은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변창흠 후보자에게 “신혼부부에 아이 한 명은 표준이고 어린 아이 같은 경우는 두 명도 가능하겠다(는 말이냐)”고 질문했고 이에 변 후보자는 “네”라고 답한 게 논란이 됐다.
여론이 악화되자 청와대가 대통령이 직접적 언급을 한게 하니라 질문을 한 것이라고 했지만 시장에서는 (대통령이) “13평형 임대주택에서도 4인가족이 살 수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핵심은 발언 여부보다는 부동산 민심이다. 국민들은 번듯한 30, 40평형대 아파트를 사서 거주하길 원하는 데, 정부가 임대주택을 강조하면서 민심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정부는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고 줄곧 강조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국민은 ‘지금이라도 집을 사둬야(buy) 맘 편히 살(live) 수 있다’며 조급해하고 있다. 임대주택 확대는 주거복지 차원에서는 필요하지만 현재의 치솟는 집값 및 전셋값 상승을 안정시키기엔 역부족인 카드다.
정부가 민심을 읽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펼치는 부동산 정책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울 뿐이다. 더 이상의 국민을 상대로 한 ‘희망고문’은 안된다.
권남근 건설부동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