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필요한 덕목은 구체성과 진정성이다. 무슨 일을 잘못했는지 솔직하고 진솔하게 밝혀야 한다. 그렇게 해도 받는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 바로 사과다. ‘훌륭한 사과는 세 부분으로 이뤄진다. 첫째 “미안해”, 둘째 “내 잘못이야”, 셋째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세 번째를 잊는다’는 누군가가 했던 말이 사과의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한 격언이라고 본다.
2015년 6월 이른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삼성생명공익재단(삼성서울병원 운영 의료법인) 이사장 자격으로 발표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사과는 지금도 ‘사과의 정석’으로 회자된다. 당시 이 부회장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슈퍼전파자 역할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회견에서 관리소홀을 인정하며, 병원 측 잘못을 구체적으로 명시했고, 객관적 분석도 내놨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체성과 진정성이 모두 녹아 있다는 세간의 평도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적확한 사과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내 탓이오”가 아닌 “네 탓이오”라는 말이 더 많이 들리는 요즘 들어 더욱 그렇다. 최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거듭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결정했을 때부터다. 하지만 서두에 꺼냈던 격언 중 둘째와 셋째가 빠져 찜찜해 보이는 느낌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당헌 개정 절차에 들어가며 “특히 피해여성께 마음을 다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당원 투표에서 서울·부산 보궐선거 공천 결정이 나온 것과 관련해 이달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 대표는 “피해여성에게도 거듭 사과드린다”고만 했다. 하지만 두 차례 사과에도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재발방지책 등 향후 대책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 구체적 이야기는 이 대표의 발언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두 곳의 지자체장 모두 성추문 의혹으로 불미스럽게 임기를 그만뒀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인데 말이다. 구체성과 진정성이 결여된 사과는 피해자에게 더욱 아프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특히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사건 피해자는 이 대표의 ‘2차 사과’ 다음날인 이달 3일 법률대리인에게 ‘이게 무슨 사과인가’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피해자는 자신을 돕는 단체들로 구성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공동행동)을 통해 지난달 30일 공개질의서를 이 대표에게 보냈다. 피해자는 질의서를 통해 “도대체 무엇에 대해 사과하신다는 뜻인가”라고 물었지만 아직 이 대표의 답변은 없다고 한다. 이 대표의 잇단 사과가 그저 ‘보여 주기’일 수 있다는 의혹이 드는 대목이다. 공동행동도 이달 3일 입장문을 통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민주당은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사건이 알려진 이후 진상규명은커녕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부르는가 하면 시민 60만명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반대한 서울시장(葬)을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의 잇단 사과가 정말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사과였을까. ‘공당의 도리’라는 명분하에 피해자가 여당 지지자들로부터 ‘2차 가해’를 당하며 지금도 눈시울을 붉히고 있을지 모른다.
신상윤 사회부 사회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