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3법·최저임금 인상 ‘역효과’ 사례
이념과 이상 개입 시장원리 거스른 결과
대주주 전횡 막겠다는 ‘기업규제3법’도
투자보단 경영권방어 집중 ‘부작용’ 초래
‘뜨거운 가슴’으로 정책 추진해선 안돼
기업에게도 최소한의 방어수단 제공을
‘재정부담은 미래세대의 빚’ 명심해야
임기 후 ‘반기업정서 해소 일조’ 소망
40여년 경제 정책의 최전선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통임에도 인터뷰 내내 표정에는 어두움이 가시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등 혹독한 경제 환경을 헤쳐오며 내공을 다져왔음에도 작금의 경제 환경에 대한 절망감이 인터뷰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근부회장을 최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만났다. 급전직하로 추락한 전경련의 위상 탓에 4년 가까이 이어진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음에도, 현 경제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진심어린 조언은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기업규제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에 대해선 기업의 미래를 막는 법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뚜렷해지는 정부의 재정만능주의,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성 노조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판했다.
▶쌓아놓은 재산 까먹는 韓 경제…“경제 정책은 뜨거운 가슴 아닌 차가운 이성으로 접근해야”=인터뷰는 현 경제 상황과 정책 지형도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권 부회장은 “지금처럼 우리 경제가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권 부회장은 “전 국민이 합심해 쌓아놓은 경쟁력의 재산을 갉아 먹는 느낌이 든다”며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 안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3%(2005~2020년 평균)에서 1.2%(2020~2060년 평균)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고도화하고 소득 수준이 높아져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지난 10년 간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성장률 평균 보다도 낮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며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속도로 저출산과 고령화의 파고가 덮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경제 정책에 임하는 위정자의 철학을 제시했다. 권 부회장은 “경제정책은 차가운 머리로 하는 것이지,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추진된 정책들은 당초의 의도와 다른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강조했다. 수십년간 경제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며, 정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몸으로 체험해 온 데서 정립된 이 철학은 작금의 경제 현실에도 정확히 맞아 들어간다.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임대차3법은 초유의 전세대란을 야기하고 있다. 소득이 낮은 이들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시행된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은 역설적이게도 편의점과 식당 등에서 빠르게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잠식하고 있다. 그는 “경제 정책은 시장 상황을 보고 시장 원리에 따라 수립해야 한다”라며 “정책에 이념과 이상이 개입되면 궁극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 먹는 결과로 이어져 국가의 대외경쟁력 또한 동반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기업규제 3법…기업 투자 대신 지분 방어에만 몰두할 것=인터뷰는 재계 전반의 최대 화두로 부상한 기업규제3법으로 이어졌다. 권 부회장은 기업규제3법이 가져올 부작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는 “기업규제 3법의 취지는 대주주의 횡포를 막겠다는 것이지만, 기업 정책은 기업의 본성에 맞게 설계돼야 한다”라며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미래 투자가 아닌 경영권 방어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기업이 미래 투자 대신 현금 보유와 지분 매입 등으로 경영권 방어에만 치중하게 되면 결국 성장이 멈추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만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사회 중 단 한 명 만이 규제 대상인데 과도한 우려 아니냐는 질문을 건네자 권 부회장은 강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반박해 나갔다. 권 부회장은 “법이라는 것은 선의의 이상적 가정을 통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라며 “이미 우리는 외국계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들의 공격을 목도해 오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1999년 타이거펀드의 SK텔레콤 경영진 교체 및 배당금 확대 요구와 2004년 외국계 펀드 소버린의 SK 경영권 공격, 지난해 헤지펀드 엘리엇의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 이사회 진출 시도 등의 사례를 일일이 열거한 뒤, “3%룰에 따라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해 외국 기관 투자자들이 연합해 공격에 나설 경우 우리나라 시가총액 30위 기업 중 최대 29곳의 이사회에 그들의 입맛에 맞는 감사위원을 진출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1명의 이사라지만, 중요한 의사 결정 마다 반대표를 던져 투자의 결정적 타이밍을 놓칠 수 있고, 회사의 비밀도 외부로 새나갈 수 있다”며 “투기펀드들의 목적은 회사의 발전이 아닌 자신들의 수익극대화에 있다는 점을 왜 애써 외면하는 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와 기업의 영역을 분명히 구분했다. 공정과 형평은 정치와 행정의 영역이지, 효율과 생산성이 화두인 기업의 영역에 적용하겠다는 것은 어느 나라에도 시도되지 않은 조치라고 역설했다.
▶기업 더 이상 내줄 것이 없다…대한민국은 勞에 기울어진 운동장=현 시점의 노동조합 문제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의 노동정책은 일방적으로 노조 위주로 운영돼 왔다고 진단했다.
권 부회장은 “현 정부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추진 등 노조 편향적인 정책들로 기업들은 더 이상 내 줄 것이 없을 정도로 노동자 측에 기울어진 운동장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87년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하고 힘있는 조직은 노조일 것이라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이에 상호주의 입장에서 이 불균형을 시정하는 게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적어도 기업들에게도 방어할 수단을 제공하는 게 지극히 합리적 수순임을 그는 재차 강조했다.
그는 “노조병은 우리경제에 가장 깊고 오래된 만성질환”이라며 “오죽하면 해외 매체에서 한국을 두고 ‘Strike to Death’, 즉 죽을 떄까지 파업하는 나라라고 했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그의 이같은 우려에도 정부는 현재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 허용 등을 골자로 한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해 입법을 추진 중이다. 권 부회장은 “해고로 인해 회사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해고자가 개별 기업 노조에 참여할 경우 합리적 교섭을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목에서 권 부회장은 기업규제3법을 처리해야 한다면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방안등과 연계해 처리해줄 것은 제안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 정부의 역할에 대해 그는 한정된 국가 예산에서 재정지출이 남발되는 데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권 부회장은 “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근간이 됐던 것은 다름 아닌 탄탄한 국가재정이었다”라며 “재정부담은 곧 미래세대에 빚 부담을 넘겨주는 것임을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권 부회장의 이같은 주장을 보수 이념과 대기업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권 부회장을 지켜봐 온 이들은 그의 경력을 살펴보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은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이 아닌 합리성에 근거한 경제철학이 기저에 깔려 있음을 대변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권 부회장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등 보수와 진보로 대표되는 네 명의 대통령 재임 시절 모두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한 흔치 않은 경력을 갖고 있다.
권 부회장은 내년 2월이면 한 차례 연임을 포함해 4년 간 이어진 전경련 부회장의 임기를 마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소박하지만 평생 경제인으로서의 철학이 진하게 배어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지난 경제 관료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정부의 역할은 궁극적으로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라며 “우리 정부나 국민들 사이에 반기업정서가 사라져 함께 성장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게 작은 꿈”이라고 말했다. 정순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