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디자이너 론 아라드

명사 초상화 새긴 마스크 디자인

코로나 시대 ‘위로의 퍼포먼스’

전쟁같은 현실 잠시 잊고 ‘미소’

로버체어·英 홀로코스트 기념관…

독창성·예술성 탁월 RDI 칭호까지

겐조·삼성·LG…브랜드 넘나든 협업

‘디자인을 지원하는 비즈니스’ 소신

[헤럴드디자인포럼 2020] 그의 손을 거치면 따뜻해진다…‘코로나19’의 공포마저도

혓바닥을 쏙 내미는 괴짜 과학자 아인슈타인, 시가를 입에 문 윈스턴 처칠, 아름다운 미소의 나이팅게일…. 세계적인 명사들의 얼굴이 ‘나의 얼굴’과 만난다. 코로나19 시대의 예술은 일상으로 들어와 재기발랄하게 빛났다. 세계 3대 산업 디자이너로 꼽히는 론 아라드의 최신 프로젝트다. 그는 지난 4월 영국 국민보건서비스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위해 마스크를 디자인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시대를 살아낸 역사 속 인물들의 초상화가 마스크로 태어난 이 프로젝트는 ‘스마일 포(Smile for) NHS’ 캠페인이다. 의료계 종사들이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해 기획한 모금 행사다.

론 아라드는 “이 끔찍한 시기에 예술의 힘을 사용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가 약간의 즐거움을 제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시대의 마스크는 두려움과 공포의 또 다른 얼굴이다. 마스크는 곧 타인과의 단절이며, 감염병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론 아라드의 마스크는 ‘전쟁 같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한다. 캠페인의 주최 측은 “론 아라드는 비인격적이고 무서운 의료용 마스크에 대한 인식을 바꿔줬다”며 “그의 마스크는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고 했다. 아라드의 디자인엔 인간과 생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있다.

[헤럴드디자인포럼 2020] 그의 손을 거치면 따뜻해진다…‘코로나19’의 공포마저도

론 아라드가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헤럴드디자인포럼의 기조연설자로 참석,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에 그의 디자인 철학을 전한다.

‘디자인 변방’과 다름없던 이스라엘 텔아비브 출신인 론 아라드는 스물 세 살에 군사적 긴장 상태의 조국을 떠나 런던으로 향했다. 아키텍추얼 어소시에이션 입학 면접에서 그는 “포트폴리오 같은 건 없으니 내 손에 쥔 6B 연필로 그림을 그려 보이면 어떻겠냐”는 전대미문의 당돌한 답변을 남기며 건축과에 합격했다.

론 아라드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81년 로버 체어(Rover Chair)를 만들면서다. 런던 코벤트 가든 뒤편 고물 처리장을 배회하던 그는 자동차 ‘로버 2000’의 카 시트를 가져와 금속 파이프 프레임 위에 얹어 의자를 만들었다. 빨간색 로버 체어를 처음 구매한 사람은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 건축 잡지 ‘블루프린트’는 이런 그를 “런던에서 온 가장 흥미로운 디자이너”로 불렀다.

데안 수직 런던 디자인 뮤지엄 관장은 그의 저서인 ‘바이디자인’에서 론 아라드의 결정적 커리어로 1987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서 선보인 알루미늄 의자 ‘풀하우스’를 꼽는다. 전시 첫날 비트라 회장 롤프 펠바움과 팝 아트계의 거물 딜러 브루노 비숍베르거가 그의 부스를 방문, 구매 의사를 밝혔다. 론 아라드는 비트라 회장에게 풀하우스를 판매했다. 데안 수직은 “결과적으로 이때의 결정이 론 아라드를 산업적 대량 생산 시스템으로 이끌었다”고 그의 책에 적었다. ‘풀하우스’를 비롯해 ‘책벌레’, 카페용 의자, 식기, 안경테에 이르기까지 그의 제품들이 대량 생산되며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그는 지난 4월 뉴욕 갤러리 프리드먼 벤다(Friedman Benda) ‘디자인 인 다이얼로그’ 인터뷰에서 “우리는 비즈니스를 위해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을 지원하기 위해 비즈니스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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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아라드가 이스라엘 디자인 뮤지엄 홀론에서 처음 선보인‘ 프레스트 플라워 쿠바(Pressed Flower Cuba)’(2018) 시리즈. 6대의 이탈리아 자동차피아트(Fiat) 500를 납작하게 2차원적 형태로 만들어 전시했다. 아라드는네덜란드로 수집한 자동차들을 가지고 온 다음 500톤 무게의 중량으로눌러 12센치 두께의 조각품으로 만들었다. [론 아라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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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아라드 책벌레. [헤럴드DB]

금속 소재를 주로 사용하면서, 금속의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린 그의 디자인은 독창적이었다. 금속을 구부려 만든 ‘착한 의자(Well Tempered Chair·1996)’, 달팽이 모양의 곡선 선반을 갖춘 책꽂이 ‘책벌레(Bookworm ·1994)’, 메탈 스트립을 구부려 세 개의 원을 만든 ‘쓰리 넌즈 스툴(3 Nuns Stool·2013)’ 등은 재료의 성질을 살리면서 차가운 금속에 따뜻함을 불어넣었다. 아라드는 “세상에 나쁜 재료는 없다”고 말한다. 하나의 디자인이 만들어지기까지 아라드는 연필이든, 금속이든 그 재료와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며 태어난 그의 디자인엔 어느새 온기가 담긴다.

아라드는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며 “내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호기심을 갖고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능성을 확보한 일상의 디자인을 하면서도 독창성과 예술성을 잃지 않은 그는 2002년엔 영국 디자이너 최고의 영예인 RDI(Royal Designer for Industry) 칭호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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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아라드는 탄자니아 태생의 건축가 데이빗 아드자예(David Adjaye)와 함께영국 홀로코스트 기념관 국제설계공모의 최종 당선자로 선정, 지난 2017년부터 2022년까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홀로코스트에서살해된 유대인 600만명과 나치 박해의 모든 피해자들에게 헌정하기 위해 시작됐다. [론 아라드 홈페이지]

2017엔 영국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데이빗 아드자예(David Adjaye)와 함께 영국 홀로코스트 기념관(UK Holocaust memorial·2017~2022) 국제 설계 공모의 최종 당선자로 선정됐다. 이 프로젝트는 홀로코스트에서 살해된 유대인 600만 명과 나치 박해의 모든 피해자들에게 헌정하기 위해 시작됐다. 다가올 세대에게 지나온 역사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작업엔 경계가 없다. 건축물부터 의자, 안경까지 모든 것을 디자인한다. 창의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론 아라드의 디자인은 일상의 그림을 바꾼다. 그의 직업을 규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디자이너이기도, 건축가이기도 하고,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스스로는 “셋을 합친 그 이상”이라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