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디자인포럼 10돌…어제, 오늘, 내일
9년간 명사 86명·관객 9000여명 참가
디자인계 ‘다보스 포럼’으로 자리매김
분야 망라한 지식콘서트는 포럼의 ‘꽃’
자연과 공존, 인간의 더 나은 삶 해법 제시
“디자인은 의미”(크리스 뱅글·2011년 연사)이며, “미래를 그리는 작업”(카림 라시드·2011년 연사)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에게 디자인은 “어제가 아닌 오늘을 살게 하는” 예술이며, ‘미래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 창의와 혁신의 디자인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무한의 영역으로 뻗어갔다. ‘현재’만을 위한 기능과 편의, 미의 기준은 일찌감치 넘어섰다.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 단 로세하르데(Daan Roosegaarde)는 2018년 헤럴드디자인포럼에서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며 “기술과 디자인으로 사람들에게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했다. 디자인은 이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꿈꾸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린다.
86명의 디자인 명사들이 함께 한 ‘헤럴드디자인포럼’의 지난 9년엔 이들이 고민한 어제와 오늘, 내일의 이야기가 채워졌다. ‘디자인이 세상을 바꾼다’(2011년 첫 포럼 주제)는 확신으로 디자인의 변화와 트렌드를 한눈에 펼쳐놨다. 과거를 반추했고, 현재를 보여줬으며, 미래를 제시했다.
해마다 1000여명씩, 약 1만명이 다녀간 포럼은 참가자들에게도 뜻깊은 의미를 남겼다.
헤럴드디자인포럼의 토크 세션 좌장이자, 대학생 글로벌 디자인 프레젠테이션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김승현 국민대학교 의상디자인과 교수는 “헤럴드디자인포럼은 제품과 작품을 전시하는 기존의 디자인 행사와 달리 글로벌 디자인 리더들의 철학과 비전을 나누며 국내 디자인 분야의 종사자들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영감과 방향성을 제안해 주는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특히 “프리젠테이션 대회를 통해 글로벌 디자인 행사에 미래의 디자인 산업을 이끌어갈 젊은 친구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봤다.
복순도가 대표인 김민규 건축가는 “지식을 공유하는 대개의 국제 포럼은 굉장히 딱딱한데, 헤럴드디자인포럼은 건축은 물론 여러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모여 그들의 철학을 나누는 것이 재미있고 흥미로워 해마다 찾게 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연사들의 강연을 ‘최고의 볼거리’로 꼽았다. 세계적인 석학과 디자이너, 건축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지식 콘서트’는 학생과 업계 종사자들에게 발상의 전환과 영감을 줬다. 이들이 풀어놓는 철학과 경험은 헤럴드디자인포럼이 디자인계의 ‘다보스 포럼’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공신이었다.
김승현 교수는 “매년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받았다. 패션디자인 전공자의 관점에서 다양한 디자인의 시도와 결합을 보면서 패션의 개념적 확장과 통합, 사회적 책임까지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김 교수는 포럼에 연사로 참석한 박성호 바우드(boud) 대표와 패션과 제품이 융합된 디자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김민규 대표는 “포럼을 통해 다양한 연사를 알게 되고, SNS를 통해 그들의 작업을 공유보면서 영역을 확장하고 경계를 허물 혁신적인 디자인을 생각해보게 됐다”고 돌아봤다. SPC에서 디자인 업무를 맡고 있는 최소영 씨는 “해마나 나온 주제를 바로바로 업무에 적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무의식적으로 포럼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활용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강연의 힘은 강력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연사들은 1000여명 참석자들의 동료이자 멘토였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안내자였다.
김 교수는 2017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건축가 까르메 피젬(Carme Pigem)을 인상깊은 연사로 꼽았다. 그는 “강연의 주요 메시지였던 ‘최상의 건축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든 조화’에 깊이 공감했다”며 “그녀가 말하는 최상의 공간이 발휘하는 힘, 즉 좋은 디자인이 인간의 생각과 태도의 형성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고 회고했다.
2019년 포럼에 참석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효란 씨와 아모레퍼시픽 이니스프리 디자이너인 나선희 씨는 네덜란드 팔켄스바르트 출신의 친환경 디자이너 데이브 하켄스(Dave Hakkens)를 꼽았다. 박씨는 “플라스틱 재활용 기계를 만드는 방법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데이브 하켄스의 강연을 통해 환경과 공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고 돌아봤다. 나씨는 “강연 이후 미래 세대를 위해 환경과 인류와의 공존 방식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100개 의자를 100가지 방법으로 100일동안 만들기’ 전시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탈리아 출신 가구 디자이너 마르티노 감페르(Martino Gamper)의 강연은 창조의 강박에 시달리는 ‘미생’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줬다. 이지혜 씨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창조적인 생각을 하고, 그것을 결과물로 만들어낸다는 것이 인상적이고 좋았다”며 “고민 자체를 내 삶의 일부로 하는 법을 보게 된 것 같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건축과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오승빈 씨는 “단 로세하르데의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는 ‘스모크 프리 타워’ 프로젝트가 인상적이었다”며 “로세하르데처럼 작업물이 사회적으로 기역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 디자이너로서 본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해로 열 살이 된 헤럴드디자인포럼은 새로운 날들을 향해 다시 도약한다. 참석자들은 포럼을 향한 애정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 교수는 “지난 10년처럼 지구와 인류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디자인과 디자이너들의 사례가 지속적으로 공유돼 국내 디자이너들과 디자이너를 꿈꾸는 분들에게 자극과 영감이 되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도 연사들과 참석자들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툴이 발전하길 바라고, 연사들의 강연을 포럼 이후에도 볼 수 있는 유·무료 콘텐츠가 제공돼 더 많은 정보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고승희·김빛나·신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