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서 F-35 스텔스전투기 40대 구매

미국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에 근거해

미 주요 동맹국이나 우방국 위주로 판매

중동에선 오로지 이스라엘에만 수출 허용

[김수한의 리썰웨펀]한국은 쉽게 구매하는 F-35…이슬람권엔 '그림의 떡', 왜?
미국에서 수입한 한국 공군 최초의 스텔스전투기 F-35A 1호기가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사진=방위사업청]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한국군이 차세대전투기사업(FX) 1차 사업으로 F-35 40대를 수입한 뒤 수십여대를 추가로 수입할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중동에서 대치 중인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가 F-35 수입 가능여부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 그 배경이 주목된다.

이렇게 미국 무기를 수입하고자 열망해도 수입할 수 없는 나라가 생기는 이유는 특이한 미국의 무기판매 방식인 FMS(Foreign Military Sale) 때문이다.

'대외군사판매', '정부승인판매', '유상군사원조'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는 FMS는 미국 정부가 미국산 최첨단 특수 무기를 수출할 때는 사전에 미 정부 승인을 받도록 해 생겨난 방식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무기제조업체는 일반상업판매와 FMS 판매 등 2가지 방식으로 무기를 판다. 일반상업판매는 별다른 제한 없이 무기 구매자가 돈을 지불하면 무기를 판매하는 방식이다. F-35 스텔스전투기 등 첨단무기에 대해서는 미국의 무기제조업체가 미 정부 승인을 받은 후 판매한다.

미국의 무기를 살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나 우방국에 주로 한정된다. 동북아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이 FMS 방식에 따라 미국의 무기를 살 수 있고,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이 유일하게 FMS의 수혜(?) 대상이다.

그런데 지난 13일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UAE가 평화협약(아브라함 협약)을 발표하면서 두 나라가 외교관계 수립을 앞두고 있어 UAE도 미국산 F-35 수입을 희망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역사적 수교를 앞두고 UAE의 F-35 수입 의지가 양국 관계에 마지막 걸림돌이 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UAE는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약으로 F-35 전투기를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상대방인 이스라엘이 UAE의 F-35 보유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한정돼 있는 전투기를 생산, 판매하는 나라는 공급량을 늘려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특히 미국으로서는 천문학적인 개발 비용이 들어간 F-35의 본전 회수를 위해서는 FMS 방식에 갇힌 F-35의 수출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미국은 최근 이슬람권 국가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수교의 반대급부로 F-35 수출 등의 실리를 제공한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미국이 F-35를 UAE에 공급한다면 이는 UAE에 그치지 않고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이란과 적대적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 걸프 국가도 F-35를 보유하게 되는 물꼬가 될 수 있다.

이스라엘과 UAE 두 나라는 이번 수교를 통해 각자 노리는 게 있다. UAE는 주변 이슬람권 국가들의 비판 속에서도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강행해 일단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합병을 막았다는 명분과 F-35를 수입할 수 있다는 실리를 챙기려 한다. 이스라엘은 UAE와의 수교로 중동에서 오랜 갈등 관계인 이슬람권 국가들과 화해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로서는 UAE를 필두로 F-35가 보급될 경우, 이슬랍권 국가 대비 압도적인 군사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이슬람권 국가에 둘러싸인 불리한 지정학적 여건 하에서도 첨단 전투기를 앞세운 압도적인 제공권 우위로 지역 군사강국으로 생존해왔다. 그러나 F-35가 UAE 등에 보급될 경우, 유사시 생존 자체를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18일 UAE에 대한 미국의 F-35 판매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평화협약은 미국과 UAE 간 무기 거래에 대한 약속을 포함하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안와르 가르가시 UAE 외교담당 국무장관은 20일 미국의 F-35 판매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라면서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약으로 F-35 구매가 더 순조로워져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다음날인 21일 미국 뉴욕에서 예정돼 있던 미국, 이스라엘, UAE의 3자 회담은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지난 24일 "UAE가 F-35 판매를 반대한 네타냐후 총리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21일 유엔에서 예정됐던 미국, 이스라엘과 3자 회담을 취소했다"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관련 소식통 3명을 인용해 "UAE는 네타냐후 총리가 F-35 문제를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라며 "그런데 그의 반대 발언이 상호 이해에 어긋난다고 느꼈고 특히 미 의회에 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한 데 대해 화가 났다"고 전했다.

F-35는 이스라엘과 걸프 지역 수니파 왕정의 '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란의 강력한 방공망을 무력화할 수 있는 첨단 전략자산으로 꼽힌다.

일부 중동 언론에서는 이스라엘의 F-35가 시리아뿐 아니라 이미 이라크와 이란의 영공도 침범해 비행했지만 이란이 뒤늦게 이를 인지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종종 나왔다.

이스라엘과 UAE를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미국의 입장은 현재로선 모호하다.

평화협약의 산파 역할을 한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22일 CNN에 출연해 "UAE는 F-35를 보유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했다"라며 "평화협약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커지긴 했지만 우리가 검토해야 할 게 있다"라고 말했다.

악시오스는 브라이언 훅 미 국무부 대이란 특별대표가 "UAE와 이스라엘 모두 이란이라는 공적과 맞서야 한다"라며 "미국은 이스라엘의 안보에 대한 우리의 책무(군사적 우위)를 지키면서도 이란에 맞선 UAE의 국방력을 계속 향상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24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네타냐후 총리와 만나 "미국은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군사력의 질적인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계속 보장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유리함을 훼손하지 않고 UAE에 군사적 도움을 주겠다"라며 이스라엘 입맛에 발언 수위를 맞췄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스라엘을 떠나 25일 UAE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그가 UAE에 어떤 입장을 밝힐 지 주목된다. F-35 수출을 위해서는 UAE의 손을 들어줘야 하지만, 중동 질서를 위해서는 이스라엘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