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크놀로지그룹(옛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형제의 난’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국민연금이 경영권 승계의 최종 향방을 가를 ‘캐스팅보트’로 떠올랐다.

조양래 회장이 차남 조현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사장(COO·최고운영책임자)의 손을 들면서 승계 구도가 굳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국민연금이 어느 편에 설지에 따라 장남인 조현식 그룹 부회장의 반격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조 회장은 최근 자신이 가진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23.59% 전량을 조 사장에게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했다. 이로써 조 사장은 42.90%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초미의 관심사는 지분 7.74%를 가진 국민연금의 의중이다. 조 부회장이 차녀인 조희원 씨(10.82%)와 장녀 조희경 씨(0.83%)의 지분을 끌어들이고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될 국민연금과 손을 잡으면 조 사장과의 격차를 4%대로 줄일 수 있어서다.

조 사장이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조 사장을 지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횡령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에게 경영권을 맡기기에도 부담이 크다.

최근 국민연금의 주주 권한 행사는 적극적이다. 지난 2018년 한국타이어의 신주인수권이 기존 주주 가치를 희석한다며 반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진칼의 경우엔 정관 변경을 요구하기도 했다.

가치 훼손과 불특정 다수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판단이 이뤄질 경우 승계 작업을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가장 가능성이 큰 국민연금의 행보는 정관 변경이다. 징역이나 집행유예 등 법적 분쟁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선임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요구할 경우 조 사장의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정관 변경을 요구하기 위해선 기업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된 거버넌스(협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국민연금이 당장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아니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현실적인 대안은 대외적인 의사 표시다. 특정 인물이 경영권을 쥘 경우 주주 가치 훼손과 회사 경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반대한다는 공식 자료를 발표하는 식이다. 업계는 이런 의사와 함께 정관 변경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는 식의 입장 발표 자체가 그룹에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내부에서도 조 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두고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조 사장이 지난해 11월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구속되면서 형제간 다툼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조 회장이 기습 승계를 선언한 만큼 장남인 조 부회장 설득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내부적으로 서열 정리가 되지 않으면 형제의 난이 더 불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입장에 따라 경영권 승계 작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조 사장이 신사업을 아우르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통한 그룹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