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알티마’는 1992년 데뷔 이후 전 세계 시장에서 610만대가 팔린 베스트셀링 모델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지난해 일본 불매운동에 가려져 판매량은 물론 존재감마저 흐릿한 ‘비운의 차’가 전락했다.
시승한 차량은 지난해 7월 국내에 출시한 완전변경 모델인 ‘신형 알티마 2.0 터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브랜드 뒤에 가려진 탄탄한 기본기와 기대 이상으로 편안한 시트가 인상적인 모델이었다.
우려했던 따가운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닛산 디자인의 시그니처인 ‘V-모션’ 그릴이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더 강렬해졌지만, 주위의 운전자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부메랑 헤드램프의 날카로운 선과 유려한 선으로 이어진 측면부의 완성도 높은 디자인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이전 세대보다 전장은 25㎜, 전고는 25㎜ 낮아졌다. 또 전폭과 휠베이스가 각각 25㎜, 50㎜ 넓어지면서 안정적이고 스포티한 느낌이 강조됐다. 공기역학을 고려한 언더바디 플로어 디자인은 실제 고속 주행 시 소음을 줄여주는 역할을 했다.
인테리어는 중형 세단에 적합한 구성이다. 그러나 다소 밋밋한 디자인이 젊은 감각에 어울리진 않는다. 8인치 센터 디스플레이는 시각적으로 충분치 않았고, 화질 열화가 심한 360도 카메라도 아쉬웠다.
9개 스피커를 탑재한 ‘보스 프리미엄 오디오’와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 그립감이 훌륭한 운전대가 곳곳의 단점을 보완했다. 계기판 중앙에 있는 7인치 어드밴스드 드라이브 어시스트 디스플레이(Advanced Drive Assist Display)도 운전의 재미를 선사했다.
차량의 매력이자 최고 장점은 ‘저중력 시트(Zero Gravity)’다. 적당한 탄성과 너비로 착좌감이 좋은 소파에 앉은 느낌이다. 옆구리를 받치는 볼스터나 요추 지지대가 없어도 충분히 편안하다. 기술적으로는 골반부터 등까지 중심을 단단히 잡아 밑으로 쏠리는 체중을 분산한다. 덕분에 장시간 운전해도 허리가 덜 부담스럽다.
국내 출시된 모델의 파워트레인은 2.5리터 자연흡기 엔진과 2.0리터 터보로 나뉜다. 시승차에 탑재된 건 닛산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가변압축비 엔진인 2.0리터 VC-터보 엔진이다.
우선 기존 4기통이 가졌던 단점은 잊어도 좋다. 실내로 유입되는 진동과 소음은 없으며, 엔진 압축비를 달리해 저속부터 고속까지 일정하게 힘을 바퀴에 전달한다.
CVT 미션과의 궁합도 훌륭하다. 패들 시프트의 조작에서 허공에서 노를 젓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충격이나 지체 없이 속도를 자연스럽게 올린다. 고속도로와 일반도로가 뒤섞인 300㎞ 구간을 달린 이후 측정한 평균 연비는 15.9㎞/ℓ였다.
운전대는 유압식에서 전동식으로 개선되면서 가벼우면서 경쾌한 조작감을 선사했다. 옥에 티는 고속주행 시 다소 떨어지는 직진성이었다. 차선유지장치의 부재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앞차와의 간격을 인식하고 속도를 조절하는 ‘인텔리전트 차간거리 제어(Intelligent Distance Control)’는 빠르고 정확했다. 브레이크를 거는 압력도 자연스러웠다. 완전한 정차를 지원하지 않아 고속도로에서만 효과적이라는 게 아쉬웠다.
도로에서 끼어들기를 하거나 주차를 하더라도 운전자들의 시샘이나 편견은 없었다. 신호등이 바뀐 뒤 빨리 출발을 하지 않아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번호판 앞 숫자가 세 자리가 아니어서였을까.
시대를 잘못 택한 차라는 이미지는 분명하다. 해외 각종 언론과 협회의 수상 내역만 봐도 그렇다. 운전자는 물론 안전성과 엔진의 기술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배지를 뗀다면 그 설움을 지울 수 있을까. 브랜드도, 국내 사정도 녹록지 않다.
‘신형 알티마’의 가격은 2.5 스마트가 2990만원, 2.5SL 테크가 3590만원, 2.0 터보가 4190만원이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과 패들시프트는 2.0 터보에만 들어간다. 가성비 트림은 2.5SL 테크다. LED 헤드램프부터 닛산의 안전 철학인 ‘세이프티 실드(Safety Shield)’를 오롯이 누릴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