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물가 여전히 고공행진
1분위 가처분소득은 감소세
“무랑 양파 싼 건 알겠는데 다른 건 잘 모르겠어요. 지난 명절 때랑 비슷한 것 같아요. 하지만 심적으로는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네요”
지난 4일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박성희(38, 서울 흑석동)씨는 냉동 수산물 매대를 한참 들여다보다 동태포 한 팩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연휴 직전 붐빌 것을 우려해 미리 장보러 나왔다는 그는 “휴가 다녀온지도 얼마 안됐는데 또 명절이라 큰돈 나갈 일이 줄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관련기사 3면
올 들어 줄곧 0%대 저공 비행을 펼쳤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급기야 사상 첫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했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가집계 때보다 더 떨어진 1.0%에 그쳤다. 거시 경제 상황을 놓고 ‘디플레이션’ ‘M(마이너스)의 공포’ 등 온갖 어수선한 단어들이 줄을 잇는다. 문제는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추석 연휴를 일주일 앞두고 농축산물을 중심으로 한 추석 성수품 물가도 마찬가지다. 지표상으로는 안정적이라고 하는데, 소비자들은 저물가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오히려 물가가 무섭다고 아우성이다.
한국농축수산물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올해 추석 차례상 차림비용(28개 품목, 4인가족 기준)은 대형유통업체 기준 지난해 31만5907원에서 올해엔 31만3879원으로 소폭 감소했다. 무를 비롯해 밤, 소고기, 돼지고기 등 추석 성수품 물가가 대부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성수품 가격 안정세에 소비자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아직 추석 장보기 전이라는 50대 주부 김모 씨는 “명절에 다른 형제들이랑 (제수품을) 나눠서 사가는데 주로 가공식품을 사가다보니 가격은 큰 차이 없을 것 같다”며 “저녁 장보는데 소고기는 되려 비싸진 것처럼 보이더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들의 물가인식(지난 1년간 소비자들이 인식한 물가 상승률 수준)은 2.1%로 소비자물가 상승률 0%보다 2.1%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지표물가와 일반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물가와의 괴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전히 체감물가는 높고 주머니 사정은 나아지지 않다보니 제수상 차림 준비에서도 저가제품 강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모바일커머스 티몬이 최근 1주간(8월29일~9월4일) 제수상 관련 상품 매출을 분석한 결과, 가성비 상품 매출이 최대 4배 이상 높았다. 중력 밀가루(1㎏, 1010원)가 찰밀가루(1㎏, 1390원) 대비 매출이 397% 더 높았고, 송편도 2㎏에 8900원인 제품이 동일 용량 1만1900원인 제품보다 매출이 81% 더 높았다.
이처럼 명절을 앞둔 소비자들이 물가 안정세를 체감 못하고 소비를 줄여가고 있는 것은 만성화된 경기불황 영향이 크다. 지속적인 고용 부진과 세금·이자비용 등의 증가로 가처분소득(실제 쓸 수 있는 소득)이 줄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득하위 20%(1분위) 가구의 가처분소득은 6분기째 감소했다.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가구 간 소득격차는 2003년 이후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 소비자들이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떨어진 품목들이 많다는 점에서 실제 국민들이 체감하는 물가가 낮다고 보긴 어렵다”며 “또 가처분소득이 많이 줄면서 구매력이 감소한 상황도 지표상물가와 체감물가 괴리의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