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 가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

[헤럴드경제=성기윤 기자] “명절에 고향집에 가면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온다”

서울에 사는 이상기(50ㆍ가명) 씨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명절 고향 대구에 갈 때마다 수면제를 챙겨갔다. 친척들에게서 듣는 각종 잔소리 때문에 밤에 쉽게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 이틀도 힘든데 부모님께서 더 오래 있으라고 해서 너무 스트레스다. 차라리 안 가고 싶다”고 말했다.

설은 오랫동안 못 본 가족끼리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민족의 명절이지만 오히려 가족 간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생기는 각종 오해와 지나친 간섭들로 오히려 설 때문에 가족들 사이가 멀어진다는 하소연이 쏟아진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이모(29) 씨는 작년부터 명절에 친가에는 가지 않는다. 외모 지적부터 시작하는 각종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살이 빠졌다, 살이 쪘다, 왜 이렇게 나이를 먹었니, 이게 요즘 유행이니, 고모는 잘 모르겠다 이런 말들을 한다”면서 “1년에 한 두 번 보는데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간섭하는 게 싫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어릴 때는 명절에 가면 공부 핑계를 대고 카페로 피신을 갔다”면서 “지금은 일 핑계 대고 잘 안 간다”고 전했다.

실제로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성인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3일 발표한 ‘설 스트레스 여부’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3.9%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스트레스의 이유는 혼인 여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미혼자는 ‘어른들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가 56.4%로 가장 높았다. 이어 ‘근황을 묻는 과도한 관심이 싫어서(55%)’, ‘용돈ㆍ선물 등 지출이 걱정돼서(37%)’, ‘친척들과 비교될 것 같아서(32.8%)’ 순이었다. 기혼자의 경우 ‘용돈ㆍ선물등 지출이 걱정돼서’가 57.9%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는 ‘처가ㆍ시댁 식구들이 불편해서(25.3%)’, ‘근황을 묻는 과도한 관심이 싫어서(22.1%)’가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9.4%)가 ‘가족, 친지들의 듣기 싫은 말 때문에 명절 귀성이나 가족모임을 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명절에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보니 굳이 명절에 모일 필요가 있냐는 도발적 질문도 심심찮게 나온다. 직장인 이모(31) 씨는 “명절 노동을 안 하는 남자들은 꼴 보기가 싫다”면서 “즐거우면 가겠지만 차라리 명절에 혼자 휴가를 보내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이번 설에 국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신모(45) 씨도 “다른 주말에 보면 되지 굳이 연휴에 꼭 봐야 하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한해 가장 큰 명절을 빠졌다간 자칫하면 예의가 없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도리’라고 생각하고 친척집을 방문하는 게 다수다. 이왕 가는 것 즐겁게 생각하자는 반포기족들도 많다. 직장인 정모(31) 씨는 “1번 안 갔다가 1년 내내 가족들의 눈치 본 적이 있다. 어차피 가야 한다면 여행 간다고 생각하고 좋게 생각하는 게 모두에게 좋은 것 같다”며 “다만 명절에 서로 도리상 모인다는 것을 함께 있는 동안 서로 배려하며 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