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ㆍ남성 노숙인 등에 성폭행 노출 -“경찰서 근처에서 생활해야” 하소연 - 전문가 “여성 노숙인복지 시설 시급”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ㆍ박이담 기자]“10년전에 대방동. 애를 지웠다. 30만원.”
지난달 7월 10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공원에서 만난 노숙인 김모(39) 씨는 노숙생활을 하던 도중 아는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낙태를 했다고 털어놨다.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는 두 눈, 단어를 조합하는 의사소통 능력을 볼 때 그는 몸과 정신이 모두 온전하지 못해 보였다. 그는 언제 어떻게 성폭행을 당했는지 정확히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임신을 하면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애는 빨리 지워야 한다. 그래야 아프지 않다”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거리에서 만난 여성 노숙인은 외부의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었다. 20대부터 60대 노숙인까지 모두 누군가에게 맞아봤다고 했다. 심지어는 남성들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영등포역 근처에서 만난 40대 노숙인 이지연(가명) 씨는 남성이 접근하면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자 기자가 말을 걸자 “왜 그러느냐”고 소리치며 두 손으로 허벅지를 감싸는 행동을 취했다. 몹시 불안한 모습이었다. 옆 벤치에 앉아있는 다른 남성을 계속 쳐다보면서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남자들이 가슴이랑 다리랑 만진다. 그들은 말이 안 통한다”며 “하지 말라고 하고 도망가야 한다”고 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60대 여자 노숙인은 지하철 방범대가 있는 9번 출구 근처에서만 노숙을 한다고 털어놨다. 새벽이 되면 노숙인은 물론 일반 남성들도 손찌검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번은 엉덩이를 주먹으로 세게 맞아 넘어진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경찰 옆에서 지내면 안전하다”고 말했다.
성희롱ㆍ폭력 등에 수시로 노출돼 있는 여성노숙인들 중에선 남성 노숙인을 방패 삼아 지내는 경우도 꽤 있다. 바깥에서 노숙하는 게 위험하다 보니 인근 쪽방에서 지내는 남성 노숙인과 함께 지내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사회복지사는 “일반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면서 “오랜 노숙생활로 인해 성의식이 희박해지고 대다수가 정신질환,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기 방어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회복지사는 “다수의 남성들에게 위협을 당하느니, 한 남성과 함께 지내는 게 안전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생존 방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리에서는 여성 노숙인 성매매 얘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서울 영등포역에서 만난 20년째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는 한 남성은 “쪽방촌에 정신이 좋지 않은 여성들이 몸을 판다. 중간에 브로커도 있다. 예전에는 하룻밤에 5000원에서 1만원이었는데 지금은 가격이 오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는 그 조차도 아쉬운 돈이 아니겠느냐”고도 덧붙였다.
한 달에 한번 겪는 생리도 여성 노숙인에게 큰 골칫거리였다. 거리에서 만난 대다수의 여성 노숙인들은 “생리대가 너무 비싸다”고 걱정했다. 영등포역에서 만난 한 여성노숙인은 생리대만 모아둔 검정비닐 봉지를 보이며 “이렇게 모아도 금방 쓴다. 없으면 휴지라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 노숙인들의 특성을 반영한 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노숙인들 대다수가 지적장애, 정신질환을 갖고 있지만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재활시설은 부족한 게 현실이다.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는 여성자활쉼터는 서울에 3곳밖에 없다.
오소영 열린복지디딤센터 상담가는 “일자리는 노숙인 자립에 필수적이지만 여성노숙인들 일자리 역시 남성에 비해 구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대부분 보호적이고 임시적인 경우가 많다”면서 “근로 의지가 있는 여성 노숙인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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