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한국 정치에 ‘제3의 길’은 없다.”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는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말하는 중도정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발언한 바와 같이 김 후보의 정치 신념도 좌파에서 우파로 선명하게 바뀌었다.

김 후보는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다.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에게는 단일화 조건으로 보수신념을 확인해달라고 했다. 그전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해 태극기 집회에 나가기도 했다. 보수진영 다수가 박 전 대통령과 선을 그으려고 할 때에도 김 후보는 집회에 나갔다.

1970ㆍ1980년대엔 다른 방향으로 선명성을 보였다. 1951년에 태어난 김 후보는 20, 30대를 운동권에 투신하며 보냈다. 1985년엔 서울노동운동연합을 설립했다. 이후 1986년 5ㆍ3 인천운동을 주도했단 이유로 2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5ㆍ3 인천운동은 1987년 일어난 6월 민주화 항쟁의 1년 전 전초전이었단 평가를 받는다. 군부독재를 끝낸 민주화 운동에 김 후보의 손길이 닿아있는 셈이다. 당시 여성 운동계 핵심 인물이었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김 후보의 후배였다. 심 의원은 당시 김 후보가 교도소에 가자 후임으로 역할 했다.

운동권 거두로 평가받던 김 후보는 40대가 되자 보수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김 후보는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진영인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경쟁자는 DJ계(김대중 전 대통령)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었다.

이후 그는 연이어 같은 지역구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에 성공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는 32대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서 당선됐고, 연임에 성공했다.

전향하고 나서 김 후보는 그 이유를 수차례 설명했다. 외부적 요인은 ‘소련에 대한 실망’이었다. 소련은 1991년에 무너졌다. 내부적 요인으로는 주사파 계열에 의한 운동권 장악 때문으로 알려졌다. 진보진영이 ‘김일성 사상’으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김 후보는 2011년 ‘도지사입니다’라는 발언을 해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119에 전화를 걸어 “관등성명을 대라”는 등의 녹음이 공개되자, ‘갑질하는 도지사’라는 비판이 일어났다. 그는 도지사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보수 정치인으로 선거에서 패배한 적 없던 그는 2016년 첫 실패를 맛봤다. 김 후보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수성갑 후보로 나섰지만 낙선했다. 당시 경쟁자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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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자유한국당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가 9일 오후 서울 중랑구 중랑교 인근에서 유세차량을 타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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