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한 환경시민단체의 페이스북 피드에 기사 하나가 공유됐다. 대표 이미지는 고래 사진이었다. 고래 입속엔 온갖 쓰레기가 가득했고 고래는 마치 최후의 순간에 뭍으로 나와 쓰레기를 토하고 죽은 듯한 모습이었다. 사진 아래에 달린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플라스틱 먹고 죽은 고래…뱃속에 쓰레기 29㎏ 있었다’.
이어진 댓글창.
‘고래가 너무 힘들었겠네요. 저렇게 죽었다는 것은 다른 해양동물 뱃속에도 저렇게 많은 쓰레기가 쌓여 있을 듯’, ‘저 고래만큼이나 곧 인간도 더한 고통을 받게 될거라 생각하니 정말 두렵네요’란 내용들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고래가 ‘고래가 아님’을 알지 못했다. 막상 기사를 읽기 위해 새로운 창을 띄운 뒤에서야 해당 사진이 그린피스 필리핀 지부에서 해변에 설치한 고래 조형물임을 알게됐다. 가까이서 보면 대나무로 혹등고래 모양의 뼈대를 만들어 그 사이를 플라스틱 비닐 폐기물로 채운 모양새다.
순간 낚인 기분이었다. 훌륭한 기사 내용과는 별개로. 처음 페이스북 피드 썸네일 사진을 보고 느낀 엄청난 분노와 위기감이 허무해서다.
나도 아프다 그렇게 낚이는 건 SNS뿐만 아니다. 이어 자주 보는 TV광고 하나가 떠올랐다. 바짝 마른 흑인 아이가 눈물 콧물을 흘리고 있다. 잠시 뒤 화면 아래엔 아이의 눈보다 선명하게 후원 전화번호와 홈페이지 주소가 뜬다. 유명 배우들은 아이의 이름을 불러가며 ‘지금 도와주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말한다.
기부정글에서 살아남는 법 많은 비정부기구(NGO)와 시민단체들이 공익을 위해 일한다. 환경보호를 위해,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아동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그 영역은 다양하다. 공익사업은 대부분의 후원금으로 이뤄지는데 이들에 기꺼이 후원할 시민들의 수와 그들의 후원금 규모는 한정돼 있다. 후원 공급자가 한정돼 있다보니 이를 둘러싸고 후원자를 데리고 와야하는 구호단체들은 경쟁관계에 놓인다.
그래서 ‘홍보’는 중요하다. 홍보에 쓰는 예산도 만만치 않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경우 후원자관리 및 제반 홍보활동에 들어가는 사업비가 2015년 114억7398만원, 2016년 118억9183만원, 2017년 124억9177만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구호단체의 홍보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유명인들이 호소하는 방식이다. 배우 안성기가 1991년부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를 맡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배우 원빈, 김래원, 이보영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특별대표다. 배우 한혜진과 최강희 등은 월드비전의 홍보대사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친선대사와 특별대표 모두 무보수로 활동하는 봉사직”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방법은 구호 대상을 직접 내세우는 것이다. TV나 온라인에서 난민, 아동,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사람들의 지갑을 열어야한다. 이때 ‘공감의 폭’은 ‘비극의 정도’에 비례한다. 더 슬프고, 더 아파보여야 후원자가 늘어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일부 단체들은 광고 촬영을 할 때 난민 아동들에게 일부러 맞을 필요도 없는 주사바늘을 놓기도 하고(크게 울게하기 위해서), 몇날 며칠을 굶기기도 한다. 빈곤 포르노가 만들어지는 현장이다.
국내 한 구호단체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정’에 이끌려서 기부를 하기 때문에 TV광고를 보는 순간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광고제작시 자극적인 연출을 많이 한다. 실제로 정에 약한 50대 이상의 장년층 기부자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그 과정에서 구호대상들의 인권이 침해되기도 한다. 얼마 전 이 문제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자체적으로 만들긴 했지만 사실 잘 안 지켜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호단체 입장에선 어쩔 수 없지 않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기부자를 모아야하는 구호단체 입장에선 홍보가 단체 존폐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 많은 기부자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선 광고내용이 ‘격해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구호단체 관계자는 “기부자를 모으는 방식 중 길거리 홍보나 SNS보다 TV광고가 더 효과적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기꺼이 ‘적선’을 할 수 있는 장년층들이 TV를 시청하는 주요 계층이기 때문인데, SNS 많이 하는 2030세대는 경제적 여유가 상대적으로 없어서인지 기부규모가 적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어려운 것’에 맞서다 정말 어쩔 수 없는걸까. 같은 고민을 하는 일부 단체에선 ‘고정관념’과 싸우고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난민과 개발도상국 아동들을 생각할때 불쌍한 이미지부터 떠올리도록 교육 받아왔다. 불쌍해하고, 울어줘야 하는 대상들이라고 배웠다. 빈곤 포르노로 갈 수밖에 없는 데는 이러한 편견들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중들의 ‘자극점’부터 왜곡돼 있었던 것이다.
이에 새로운 고정관념을 만들려는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개발도상국 아이들이라고 해서 매번 울고 있는 게 아니다. 현지주민들은 구걸하는 거지들이 아니다. 일할 땐 크게 노래 부르고 마을에 경사가 있을 때 춤을 추며 웃는 사람들이다. 그런 시도에 나서고 있는 지구촌나눔운동 관계자는 “단순히 정에 이끌려서 하는 기부가 아닌 현지 주민들의 건강한 자립을 이뤄낸다는 의미의 기부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홍보를 하려고 한다”며 “밝고 건강한 이미지들을 많이 활용하는데 실제로 현지에 가봐도 느껴지는 분위기들도 밝은 경우가 많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그들의 조금 더 나은 삶을 후원자들이 도와줄 수 있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빈곤포르노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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