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아이돌 그룹에 입덕(팬이 됨)해 보셨나요? 아니면 이미 아이돌의 모든 게 설레고 감동스러운 자타공인 덕후의 삶을 살고 계신가요?
여러분(이하 덕후)은 덕질을 통해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셨을 겁니다. 내 아이돌이 좋다는 음악을 찾아 듣고, 광고 계약한 브랜드 상품을 구매하고, 그들의 노력과 열정에 자극받아 삶의 의욕을 불태우고... 다 나열할 수 없을 숱한 의미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겠죠.
아이돌 입덕이 가져온 중대한 변화는 덕후들의 대화법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덕후는 수수께끼 같은 덕질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내 아이돌 얘기는 하루 종일이라도 나눌 수 있는 언어의 신이 됩니다. 모두 덕질 전엔 알 수 없던 세계죠. 과연 덕후들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 걸까요?
‘선생님’들이 참 많아진다 덕후에게 아이돌 덕질은 삶의 활력소입니다. 내 아이돌의 정보와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공식 계정 알람을 켜고, SNS, 팬카페를 수시로 들락이죠. 일명 ‘고독방’(팬들이 대화 없이 사진을 공유하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사진과 짤을 챙기는 것도 기본입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희소성 높은 정보(해외 매체 인터뷰 번역이나 정성이 가득한 후기글 등)를 제공하거나, 그동안 찾아 헤맸던 특정 사진∙짤을 고화질로 올려주거나, 당장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정보를 신속하고 명쾌하게 답변해 주는 등의 순간, 덕후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역시 같은 팬덤에 있는 또 다른 팬입니다. 집단 지성에 기반한 팬덤의 정보 교류가 이들 선생님의 탄생 배경인 셈이죠. ‘감사합니다 선생님. 얼떨결에 성공하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감히 선생님이 더 최고라고 얘기해 봅니다’... 덕질에 큰 도움을 준 선생님에겐 그 어떤 덕담도 모자라게만 느껴집니다.
이심전심이란 이런 것 “팬들끼리 마음이 다 통하고 대부분 서로의 생각에 동의하는 현상이 참 신기하고 재밌어. 심지어 나라와 인종을 초월하거든. 덕질 하는 아이돌을 매개로 말이야. 교과서처럼 분명히 적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쩜 다들 이렇게 비슷하게 느낄까?”
한 아이돌 그룹의 누나팬 지윤(29ㆍ가명) 씨는 ‘머글(아이돌 팬이 아닌 일반인을 지칭)은 모르는 우리끼리의 공감대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마법 세계를 알지 못하는 일반 인간을 머글이라 부르듯, 아이돌에 관심이 없거나 팬덤 문화와 관계없는 사람들을 머글이라 일컫죠. 아이돌 덕후의 대화도 두 영역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덕후끼리의 대화, 그리고 머글 지인과의 대화로 말이죠.
덕후끼리의 대화는 공카(공식 카페), 스밍(스트리밍) 등 팬 문화에 기반한 그들만의 용어를 공유합니다. 또 오프라인 관계에서의 덕밍아웃(덕후와 커밍아웃을 합친 말로 스스로 덕후임을 공개하는 것)은 같은 아이돌 팬인 지인들과 급속도로 친해지는 계기가 됩니다. 덕질을 함께 할 둘 이상의 무리를 이뤄가는 모습이지요.
덕후 혹은 머글과의 대화, 그 차이에 대해 지윤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돌에 관한 대화는 주로 멤버들의 캐릭터(성격ㆍ외모ㆍ실력ㆍ행동 등)에 대해 이뤄지는데, 다양한 콘텐츠로 쌓은 멤버들에 대한 정보는 덕후들 사이에서만 소통이 가능해. 머글은 아예 모르거나 피상적으로만 알기 때문에 대화의 깊이가 제한적이지.” 아이돌을 바라보는 감정의 온도차도 극명합니다. “같은 아이돌 멤버 사진을 보고도 머글은 ‘음 귀엽네’ 정도지만, 덕후는 ‘지저스 우리 00이 진짜 너무 귀여워서 내 심장 남아나질 못해 현생 불가 털썩’ 정도의 반응 차이가 나.”
아이돌 덕후의 속내 아이돌에게 열광하고 헌신하는 이 시대의 덕후들. 이들을 쉽게 ‘철없다’고 치부해버리는 시선은 이미 촌스럽습니다. 지난 2004년 그룹 신화의 멤버 에릭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이런 글을 남겼죠. “한국에서 소위 빠순이라고 불려지는 그들. 자기 할 일 다 하면서 공연문화까지 자유롭게 즐기는 사람은 잘 나가는 사람이고 자유로운 사람이다.”
특히 ‘누나팬’이라 불리는 성인 여성의 경우 아이돌을 이성의 대상으로 여기기 보다는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발전을 응원하고, 성과에 공감하며 자극을 받는 것에서 욕망을 충족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즉 이성에 대한 연애감정이라기보다는 동생이나 친구로 생각하는 가족애 또는 우정에 가까운 셈이죠(‘성인 여성의 아이돌 그룹 팬 경험에 따른 문화기술적 연구’, 배현주). 논문에 따르면 이들에게 아이돌은 자기성찰과 발전의 거울입니다. 자신과 비슷한 연령이거나 어린 아이돌이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발전되고 변화된 모습을 보며, 그들의 결과가 아닌 과정에 반응합니다.
같은 아이돌 팬인 지인과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은주(26ㆍ가명)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왜 덕질을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게 돼.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겠지만 팬들은 서로 비슷한 고민이나 결핍을 가진 것 같아. 그래서 아이돌과 그들의 음악에 감동하고 위로받는 지점도 비슷한 것 아닐까.” 팬카페에선 팬들끼리 자신의 입덕 계기를 밝히고 공유하는 일종의 간증(?)과 같은 게시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죠.
결국 아이돌을 덕질 한다는 것은 아이돌 자체뿐 아니라 아이돌을 통해 연결된 팬들끼리의 관계까지 내포합니다. 그 관계에서 얻는 의미와 공감 또한 덕질의 중요한 부분이며 덕후들의 대화가 꽃피는 이유겠지요.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특히 한국에서는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덕질 자체가 환영받는 문화는 아니다. 때문에 팬덤 내에서 더 서로 간의 동지 의식이 강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교수는 “아이돌 덕질이 일반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만큼 팬덤 내에선 편안함을 느끼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서슴 없이 팬인 것을 드러낼 수 있다”면서 “이를 숨길 필요가 없으니 더 솔직해질 수 있고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에 아이돌 팬으로서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친근함이 생기기 쉽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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