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미투 열풍?
지난달 29일 서지현 검사가 JTBC 뉴스룸에 출연했다. 전국에 생방송되는 뉴스 카메라 앞에서, 그녀는 안태근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 후 일주일. ‘한국판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란 보도가 쏟아졌다.
조금 의아했다. 2009년 고 장자연 사건부터 2016년 ‘#00_내_성폭력’ 해쉬태그 운동, 작년 말 한샘 사내 성폭행까지. 성폭력을 당한 여성의 폭로는 과거에도 충격적이었으며, 익명의 폭로가 타래의 타래를 물며 SNS를 휩쓴 지 오래다.
그런데 새삼 ‘한국판 미투 열풍’이라니. 그동안은 찾지 못했던 걸까? 만연한 성범죄를 직시하고 여성들의 연대를 호명할 명칭을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에는 미투 운동 같은 게 없었죠?”라는 김어준 시사평론가의 발언은 논란을 낳았다. 2016년 예술계 내 성폭력을 폭로한 사진작가 지망생 송보경 씨는 지난 2일 손석희 앵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아직도 모든 피해는 진행 중”이라고 지적했다.(원문링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2177495)
#2016년의 ‘#00_내_성폭력’과 2018년의 ‘미투’
2016년 10월의 ‘#00_내_성폭력’ 해쉬태그와 2018년 2월 ‘한국판 미투’의 차이를 고민했다. 크게 두 가지였다. 시기, 그리고 익명성. 2016년 10월은 최순실이란 이름이 모든 이슈를 삼켰고, 2018년의 서 검사는 방송에 출연해 피해 사실을 밝힌 점에서 익명의 피해자가 아니었다.
두 차이엔 공통된 변수가 있다. 만연한 성폭력과, 피해자들의 연대에 우리 사회가 주목할 소위 ‘여력’의 역치다. 2016년 최순실 게이트의 화살은 최고 권력 기관을 향했고, SNS 속 숱한 피해자들은 주목도가 떨어지는 익명의 존재들이었다. 들리지 못한 비명은 호명되지 못했다.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어쩌면 ‘한국판 미투’는 편리한 용어다. ‘성폭력’ 보단 부드럽고 ‘페미니즘’ 보단 모호한 단어. 이를 무엇이라 부르든 ‘비로소 터진’ 변화에 기뻐해야 할지, ‘뒤늦은 관심’에 씁쓸해할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