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018년 모든 공기관 도입” 불구 75%는 시간선택제 고용 한명도 없어 은행권도 남성육아휴직률 0.4% 불과 -인재손실 방지-업무효율성 강화 “저출산 해법” 국내기업들 속속 동참
#충남 천안에 있는 반도체회사 ‘스테코’에 근무하는 A씨는 ’자율출퇴근제‘를 시작한 후 그동안 엄마밖에 모르던 3살 딸이 “아빠 좋아”를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싹 달라지면서 매일 귀가시간이 기다려진다. 그는 출산한 아내가 육아휴직을 다 쓰고 복직하자 맞벌이하면서 딸을 돌봐야 할 처지였다. 그런데 4조 3교대하는 아내의 근무시간이 불규칙하다보니 시간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회사가 2011년부터 유연근무의 일환으로 도입한 자율출퇴근제를 떠올렸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 사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8시간 근무를 마치면 퇴근할 수 있어서 그에게 딱 맞춤형이었다.
A씨는 “처음에는 퇴근하는 시간이 두려울 정도로 육아가 힘들었지만, 기저귀를 갈고 목욕시키는 일이 점점 수월해졌고, 거기에 맞춰 엄마에게만 매달리는 ‘엄마 껌딱지’였던 딸이 어느 순간부터 퇴근해 집에 가면 달려와서 안기고, 아내가 출근해도 더이상 울지 않는 아이로 변했다”며 웃음꽃을 피웠다. 자율출퇴근제가 부녀 관계를 살갑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인 셈이다.
지난해말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저출산대책 평가’ 보고서를 보면 정부의 저출산대책 우선순위평가에서 ‘일-가정 양립’ 여건 확대가 가장 시급하면서도 효율적인 정책 1순위로 꼽혔다. 저출산의 근본 해법으로 장시간 근로관행을 없애고 일과 가정이 조화를 이루는 ‘일-가정 양립사회’를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이 사회적 공감대를 점차 얻어가고 있다. 일-가정 양립이 저출산 극복의 화두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육아아빠와 육아엄마들은 여전히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신음하고 있다. A씨처럼 복받은 육아아빠는 많지않다는 얘기다.
▶시간선택제 여전히 전반적으로 지지부진=유연근무의 일종으로 생애주기에 따라 임신, 출산, 육아, 자기계발 등을 이유로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최근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활용하는 국내 사업체는 채 0.1%도 되지 않는게 현실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지원한 기업은 지난 4년 간(2013~2016년) 16배(2013년 319개→2016년 5193개), 지원 인원은 10배(1295명→1만 3074명), 지원 금액은 15배(34억원→510억원)로 증가했다. 특히 최근 1년 새 전환형 시간선택제 도입 기업과 사용자가 늘었다. 시간선택제 전환 지원기업과 인원은 지난해 기준 2015년 대비 각각 3배(242→746곳), 4.5배(556→2530명)로 증가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업장에서는 다른 세상 얘기일 뿐이다. 2014년 기준 통계청에 등록된 국내 총 사업체 762만 5640곳 중 시간선택제를 활용하는 기업은 고작 0.07%(5193곳)에 불과하다. 대다수 기업에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공공기관도 크게 다르지않다. 정부가 2018년까지 모든 공공기관에 시간선택제를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놨지만 확산은 정부의 의지를 비웃을 정도로 더디다. 공공기관 증 지난해 시간선택제 직원을 한명도 채용하지 않은 곳이 257개로 75%에 달한다. 일-가정 양립은 여전히 머나먼 노정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앞서가는 금융권도 아빠육아휴직은 ‘글쎄’=육아휴직에서 앞서가고 있는 은행들이지만 금융권에 근무하는 아빠들은 육아휴직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국정감사때 제출한 ‘국내 은행 어린이집 및 육아휴직제도 운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17대 은행에 근무 중인 유자녀 임직원 6만5573명 중 육아휴직을 했거나 현재 육아휴직 중인 임직원은 2만9755명으로 45%의 이용률을 보였다. 하지만 육아휴직 이용 임직원 2만9755명 중 여성이 2만9645명으로 99.6%를 차지한 반면, 남성은 110명(0.4%)에 불과했다. 고용부가 발표한 올해 3월 말 현재 전체 육아휴직자 2만935명 중 남성비율 10.2%(2129명)에 크게 못미친다.
금융권은 시간선택제 도입도 지지부진했다. 은행 등 금융업은 여성인력비중이 높고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여수준도 높아 시간선택제 근무 수요가 많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 중 시간선택제를 도입해 운용 중인 곳은 신한은행 뿐이다. KB국민은행이 시범운영에 들어갔고 우리은행은 최근 유연근무제를 도입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도 많은 사업장에서 시간선택제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데는 전일제를 고집하는 고용 관행 영향이 가장 크다. 조직 내 의사결정권자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충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도 도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남지민 노사발전재단 선임연구원은 “시간선택제는 일-가정 양립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인 만큼 일선 사업장에 뿌리 내릴 수 있게 기업들이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직무 조정·배분을 통해 전일제 동료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조직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희망…유연근무 기업 계속 확산=일-가정 양립의 미래가 반드시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재 손실을 방지하고 직원업무 효율성을 높이기위해 유연근로와 육아지원근무제도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속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임직원은 오는 7월부터 유아를 위해 아이가 만 8세가 될 때까지 2년간 하루 4~12시간 근무하면서 ‘주 5일 40시간’만 근무하는 ‘완전 자율 출퇴근제’, 5일 동안 20시간 또는 30시간 근무하는 ‘전환형 시간 선택제’, 한 업무를 직원 2명이 나눠서 하루 총 8시간을 근무하는 ‘직무 공유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오전 7~10시까지 1시간 단위로 출근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시차출퇴근제를 도입해 아이들을 보육·교육시설에 데려다주고 출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임산부 대상 2시간 단축근무제를 도입하고, 출산을 이유로 장기 휴직한 직원에게 희망부서 우선 배정권도 준다. 이마트는 임신한 직원이 전 임신 기간에 걸쳐 임금삭감 없이 출퇴근 시간을 자율로 지정하고 2시간 단축근무를 할 수 있는 임신기 일괄단축근무제도를 도입했다.
롯데그룹은 올초부터 국내 대기업 최초로 ‘남성직원 의무육아휴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김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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