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로 생애 최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의 딸로 18년, 야인으로 18년, 그리고 정치인으로 18년을 보낸데 이어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된 셈이다.
▶대통령의 딸 박근혜=그의 삶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빼놓곤 설명할 수 없다. ‘대통령의 딸’, ‘퍼스트레이디 대행’, ‘첫 부녀 대통령’ 등 그를 상징하는 대표적 표현 모두 아버지와 묶여 있다.
1952년 2월2일 대구 삼덕동 전셋집에서 박정희 대령과 육영수 씨의 장녀로 태어나 유년기의 대부분을 아버지 임지를 쫓아 광주와 서울에서 보냈다. 서울 신당동으로 이사한 뒤 장충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61년 5월16일 밤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당시 박정희 소장은 집을 나서려다 “근혜 숙제 좀 봐주세요”라는 부인의 말을 듣고 맏딸이 숙제하는 모습과 둘째딸 근령과 막내아들 지만이 잠든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떠난 뒤 ‘거사’에 성공했다.
아버지가 이듬해 제5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한동안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다 성심여중 2학년 때 기숙사가 폐쇄되면서 청와대 생활을 시작했다. ‘산업역군’을 꿈꾸며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는데, 대학 3학년 때 ‘10월 유신’은 대학가의 반정부 시위에 불을 지폈다. 그는 자서전에서 “점점 학과 공부에 매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기록했다.
▶22살의 퍼스트레이디=대학 이공계 수석 졸업 뒤 곧장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지만 유학생활은 6개월만에 끝났다. 어머니가 1974년 8ㆍ15 광복절 경축 행사에서 문세광에게 저격당했기 때문이었다. 22살에 퍼스트레이디 대행 역할을 맡았다.
아버지와 거의 매일 아침식사를 함께 하며 신문을 읽어주고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곤 했다. “누에고치에서 깨어나 나비가 되는 일”이라고 회고한대로 국정운영에 눈을 뜬 시기였다.
정치역정 최대 위기를 안겨준 국정농단 파문의 주역 최순실 씨의 아버지 최태민 목사를 만난 것도 이 때쯤이다. “내가 어려운 시절에 도운 분”이라고 했지만 최태민과의 인연은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중요한 고비 때마다 발목을 잡았다.
1979년 10월26일 밤은 또 한번의 분수령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피살당했고, 그는 9일장을 치른 뒤 청와대를 나와야 했다.
▶야인 박근혜, 시련의 계절=18년을 영애와 퍼스트레이디로 지내다 청와대 밖으로 나오자 시련의 계절이 기다렸다. 1980년 영남대 이사장을 맡았지만 학생들의 반발로 7개월만에 물러났다. 제5공화국이 들어서고 정통성이 취약했던 전두환 대통령이 박정희 격하를 시도하면서 ‘폐족’으로 전락했다. 박정희 사람들이 전두환 사람들로 변모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배신의 정치’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권력 상층부에 있었지만 아버지 사후에는 밑바닥까지 경험했다. 수많은 매도 속에 몇 년의 시간을 버티며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야 박정희ㆍ육영수 기념사업회를 발족시키는 등 아버지 복권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최태민 목사 전횡 논란과 함께 불거진 동생 박근령과의 육영재단을 둘러싼 갈등 등 시련은 계속됐다.
▶선거의 여왕, 33년만에 청와대 귀환=1997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요청에 따라 정계입문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듬해 대구 달성 재보선을 통해 처음 여의도에 입성했다. 2002년 이회창 총재의 1인 체제를 비판하며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지만 지방선거 참패 뒤 다시 당으로 복귀했다.
2004년 ‘차떼기 파문’으로 흔들리던 당의 대표를 맡아 ‘천막당사’를 발판으로 구원했다. 2007년 본선보다 치열한 예선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고배를 마셨지만, “저 박근혜,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는 말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자산을 얻었다.
2011년 또다시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등 쇄신작업을 벌여 불가능해보였던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선거의 여왕’은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도 승리함으로써 33년만에 청와대로 귀환했다.
대통령 박근혜는 ‘희망의 새 시대’와 ‘국민행복’을 내걸고 취임했다. 그러나 최태민ㆍ최순실 부녀와의 ‘악연’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신대원 기자/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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