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윤현종 기자ㆍ이채윤 학생기자] ‘빚’을 내서라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약’이다. 단순한 감기몸살을 넘어 죽음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병이라면 더욱 그렇다.
의약품 소매가격 정보를 제공하는 미국의 ‘Good RX’가 자국서 가장 비싼 10개의 약 순위를 매겼다. 일반 30일분으로 구매했을 때의 가격이다. 미국의 약값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비싸다는 사실은 감안해야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약 중 5개가 만성 C형간염 치료제라는 점이다. 물론 비싼 만큼 완치율도 높다.
10위. 비에키라 팩(Viekira Pak). 3만 4600달러(3863만원)
비에키라 팩은 리토나비르ㆍ옴비타스비르ㆍ파리타프레비르 복합제와 다사부비르 정제, 총 4가지 성분의 만성 C형간염 치료제다. 흔히 비에키라 팩을 통한 치료를 ‘애브비 요법’이라 한다. 개발사 애브비 이름을 땄다.
비에키라 팩은 리바비린을 병용하지 않는 1a형 만성 C형간염 및 대상성 간경변 환자 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에서 12주 지속 바이러스 반응률(SVR12)이 95%에 달했다. 피로ㆍ두통ㆍ설사 등 부작용이 보고됐지만 부작용으로 복용을 중단한 환자는 없었다.
C형간염바이러스는 급성 간염ㆍ 만성 간염ㆍ간경변증 및 간암 등 다양한 양상의 질환을 유발한다.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1억 5000만명이 만성 C형간염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 또 매년 300만~400만 명이 새로 감염된다. 또 35만명 이상이 C형간염 관련 간질환으로 사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다나의원 C형간염 집단감염 사태로 인해 C형간염과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9위. 피라지르(Firazyr). 3만 5800달러(3997만원) 샤이어가 개발한 피라지르(성분명 이카티반트아세테이트)가 9위를 차지했다. 희귀질환인 유전자 혈관부종 치료제다. 유전자 혈관부종은 C1 에스테라제 억제제라는 단백질이 적게 분비되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손과 발ㆍ팔다리ㆍ얼굴ㆍ기도 등에 부종이 생긴다.
피라지르는 임상시험에서 2시간만에 효과를 보였다. 이전의 치료제는 증상완화에 20시간이 걸렸던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결과였다. 30mg을 복부에 1회 피하 주사하는 형식으로, 효과가 불충분할 경우 6시간 간격으로 투여한다. 그러나 24시간 이내에 3회를 초과해 투여하면 안 된다. 국내에선 2014년부터 SK케미칼이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8위. 쿠프리민(Cuprimine). 3만 9800달러(4444만원) 8위는 쿠프리민(성분 페니실라민)이다. 페니실라민은 페니실린의 분해 산물에서 얻은 성분이다. 이름도 거기서 땄다. 쿠프리민은 동(銅)대사 이상에 의해 일어나는 윌슨병ㆍ납중독ㆍ수은중독을 치료한다. 뿐만 아니다. 장과 신장에서 아미노산의 운반에 이상이 생긴 유전성 대사 질환 시스틴뇨증과 류마티스 관절염에도 효과가 있다.
윌슨병은 몸 안의 구리가 배출되지 않고 축적되는 유전질환으로 간이나 뇌에 구리가 쌓여 간염ㆍ신경계질환을 유발한다. 치료를 위해서는 페니실라민 같은 킬레이트 화합물을 투여해 조직 내 구리를 소변으로 배출하게 만들어야 한다.
7위. 오캄비(Orkambi). 4만 4200달러(4935만원) 버텍스가 개발한 오캄비가 7위에 올랐다.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다소 생소한 질환 치료제다. 낭포성 섬유증은 상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되는 질병이다. 쉽게 말하면 폐나 이자 등에 있는 점막생성세포의 결함이다. 체내에서 점액이 너무 많이 생성되는 것. 이는 소화효소가 소장에 도달할 수 없는 등 해당 장기의 기능을 방해한다. 현재 변이유전자를 정상유전자로 바꾸어주는 유전자 치료법과 효소를 공급해주는 치료법이 연구되고 있다.
오캄비는 12세 이상 특정 유전자변이가 있는 낭포성 섬유증 환자가 병용할 수 있는 치료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도 물론 거쳤다. 이 약은 전체 낭포성 섬유증 환자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F508del’ 유전자변이로 인한 증상을 치료한다.
6위. 올리시오(Olysio). 4만 4800달러(5002만원) 6위는 비에키라 팩와 같은 C형간염치료제인 올리시오(성분명 시메프레비르)다. 시메프레비르는 NS3/4A 프로테아제 억제제의 일종이다. 얀센이 개발했다. 1형 C형간염 환자가 소포스부비르(소발디)와 12주간 병용할 경우 90%이상 완치된다. 국내에서는 아직 만나볼 수 없다.
5위. 악타젤(HP Acthar). 5만 1600달러(5762만원) 부신 피질 자극 호르몬제 ‘악타젤’이 5위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퀘스트코 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약이다. 주성분은 코르티코트로핀이다. 부신 피질에 작용해 부신 피질보다 활성화된 여러 종류의 스테로이드를 생성, 분비를 촉진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ㆍ돼지ㆍ양 등에서 결정 상태로 얻는다. 2010~2013년 사이 3000건의 부작용(사망ㆍ장애) 등이 보고 됐다. 그러나 ‘웨스트증후군’ 치료제로 살 길을 찾았다. 웨스트증후군은 ‘영아연축’으로도 불린다. 즉, 영ㆍ유아기에 생기는 드문 발작이다. 발작 양상은 갑작스런 근 수축으로 머리ㆍ몸통과 팔다리가 일시에 굴곡되는 발작을 보이며, 마치 접이칼이 꺾이는 모양과 같다.
악타젤의 가격은 지난 13년간 약 1000배 가량 올랐다.
4위. 다클린자(Daklinza). 5만 4300달러(6063만원) 1ㆍ3형 만성 C형간염 치료제 중 하나인 다클린자(성분명 다클라타스비르)가 4위를 차지했다. 다클린자-순베프라 병용요법인 ‘닥순요법’으로 더 익숙하다. 1일 1회 다클린자 60mg과 1일 2회 순베프라 100mg을 복용하는 방식이다.
이 약은 비싼 만큼 그 값을 한다는 분석이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연구 결과가 말해준다. 한국인 C형간염 환자 대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유전자형 1b형인 C형간염환자에게서 12주 지속바이러스 반응률(SVR12)이 무려 93.2%였다.
3위. 신라이즈(Cinryze). 7만 2100달러(8051만원) 3위부터는 30일분 약가가 억 단위에 육박한다. 30일 복용시 7만 2000달러가 드는 3위는 어떤 약일까. C1 에스트라제 저해제 성분의 ‘신라이즈’가 그 주인공이다. 피라지르처럼 유전성 혈관부종을 예방 및 치료하는 약이다. 애초 개발사는 미국 제약회사인 바이로파마다. 그러나 2013년 영국 제약업체 샤이어 파마슈티컬스가 42억달러에 바이로파마를 인수했다. 물론 신라이즈 판권도 바뀌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정맥주사로 투여하는 신라이즈는 유전성 혈관부종 치료제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2014년 한해 매출만 무려 5억 300만달러(5610억원)였다. 전문가들은 2017년에는 7억 3500만달러(8198억원)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현재 신라이즈 판권을 보유한 샤이어는 희귀병 치료제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2015년에는 미국 생명공학업체인 다이엑스를 59억달러(6조 5800억원)에 인수합병(M&A)했다. 이는 신라이즈와 경쟁구도였던 다이엑스의 또 다른 유전성 혈관부종 치료제인 ‘DX-2930’을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샤이어는 공격적이고 과감한 인수합병과 신약개발로 ‘희귀질환 전문 제약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 회사를 이끄는 플레밍 온스코브(58) 최고경영자(CEO)의 자산은 2100만달러(234억원)다.
2위. 하보니(Harvoni). 7만 9200달러(8844만원) 2위와 1위 역시 만성C형간염치료제가 차지했다. 두 약 모두 개발사가 길리어드라는 공통점도있다.
2위는 하보니다. 소포스부아르와 레디파스비르를 결합한 복합제로 성인의 유전자형 1형 만성C형간염 치료효과가 입증됐다. 만성C형간염환자 중 이전 치료 경험이 없는 경우는 12주, 간경변이 없는 환자는 8주 치료를 권장한다.
1위. 소발디(Sovaldi). 8만 1000달러(9045만원) C형간염 치료제 계의 ‘블록버스터’이라 불리는 소발디(성분명 소포스부아르)가 1위다. C형 간염바이러스의 변이된 유전자(RNA)복제를 차단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발디는 다양한 유전자형과 기존 확인된 유전자 변이 여부에 관계없이 높은 SVR(지속적 반응률)을 자랑한다. 12주 치료로 90%이상 완치율은 기본이다.
그 때문일까. 약값이 하늘을 찌른다. 미국에서는 소발디 한 알이 1000달러(111만원)를 웃돈다. 2013년 출시이후 연간 10조원 이상 팔렸다.
지난해 11월 우리나라에서는 다나의원 C형간염 집단 감염이 큰 이슈였다. 환자단체와 의료단체들은 치료제인 소발디와 하보니의 시급한 급여화를 요구해왔다. 하보니와 소발디의 비급여 가격이 12주 치료기준 각각 4600만원, 3800만원이었기 때문. 부담은 모두 환자 몫이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5월부터 두 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그 결과 하보니 약가는 기존 46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소발디는 3800만원에서 680만원으로 낮아졌다. 적용 대상은 유전자형 1b형을 제외한 1형 환자였다.
8월부터는 1b형 환자 중 기존의 다클린자정-순베프라 병용요법(닥순요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환자에게도 소발디와 하보니 보험 적용을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