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민상식ㆍ이세진 기자] 민간 대형병원을 운영하는 법인의 오너 일가들이 3세경영 체제로 전환할 준비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공익재단과 개인회사를 통해 주요 계열사를 우회 지배하며 경영권 승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익법인이 설립 취지와 다르게 경영권 확보 등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대형병원을 소유하고 있는 법인의 이사장 등이 친인척을 동원해 의약품 도매상을 설립, 이 업체로부터 독점적인 의약품을 공급받는 ‘일감 몰아주기’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1960년 창업자인 차경섭 박사에 의해 중구 초동에서 차산부인과의원으로 출발한 ‘차병원그룹’은 현재 오너가 3세를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구축되고 있다.
현재 차병원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주력계열사인 ‘차바이오텍’이 있다. 세포치료제 연구개발 및 제대혈 보관사업을 영위하는 차바이오텍은 CMG제약, 차헬스케어 등 차병원그룹 주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차병원그룹을 이끌고 있는 차광렬(63) 회장의 지분 5.9%를 비롯해 오너일가의 차바이오텍 지분율은 14.79%이다.
부인과 자녀를 포함한 차 회장 일가의 상장사 차바이오텍 주식 자산 합계는 1100억원이 넘는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차 회장이 보유한 상장사 차바이오텍 등의 주식 지분평가액(이달 4일 기준)은 461억6900만원이다.
차 회장의 부인 김혜숙(61) 씨의 주식자산이 68억7500만원, 장남인 차원태(35) 미국 차병원 상무가 316억5100만원, 장녀 차원영(37) 씨가 174억5300만원, 차녀 차원희(32) 씨가 136억1700만원으로 평가된다. 장녀 원영 씨의 남편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41) 동부금융연구소 부장이다.
오너 일가의 차바이오텍 지분율은 높지 않지만, 이들은 공익재단인 ‘성광학원’과 오너 일가의 개인회사 ‘KH그린’을 통해 차바이오텍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를 우회 지배하며 안정적인 지배구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비상장사 KH그린과 공익법인 성광학원은 차바이오텍의 2, 3대 주주이다. 차광렬 회장은 성광학원의 이사로 재직 중이고, KH그린의 최대주주이다.
차바이오텍의 주요 주주는 차광렬 회장(5.9%), KH그린(4.79%), 성광학원(4.31%), 장남 차원태(4.04%), 장녀 차원영(2.23%), 차녀 차원희(1.74%), 부인 김혜숙(0.88%) 순이다.
1996년에 설립된 성광학원은 차의과학대학교를 운영 중이며 건물 및 토지가 약 1600억원을 포함해 자산규모가 3000억원이 넘는다. 차케어스 등 주요 계열사의 유상증자에도 참여, 지분을 확보해 주식평가액도 약 370억원에 이른다.
특히 성광학원 이사진 총 12명 중에는 차 회장과 장남인 차원태 상무 등이 포함돼 있어, 오너 일가가 차병원그룹 계열사 지분 매입 등을 의지대로 실행할 수 있는 구조이다.
KH그린은 1995년에 설립된 부동산임대업 전문 회사다. 서울 청담동 등에 장부가액 500억원이 넘는 규모의 토지 및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KH그린은 차 회장 일가가 지분 90% 이상을 소유한 개인 회사이다. KH그린의 지분 구조를 보면 장남 원태 씨를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구축하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차 회장은 KH그린 지분 44.86%를 소유하고 있으며, 차 회장의 아들인 원태 씨가 33.76%, 부인인 김혜숙 씨가 10.55%를 보유하고 있다.
삼천당제약과 의료법인 성심의료재단을 이끌고 있는 윤대인(66) 회장 오너 일가의 주식 자산 추정액 역시 1000억원이 훌쩍 넘는다.
삼천당제약의 최대주주는 지분 29%를 보유한 의약품 도매업체인 ‘소화’이다. 윤대인 회장은 삼천당제약의 지분 7.5%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분평가액은 148억4200만원이다.
비상장사 소화는 윤대인 회장과 아들 윤희제(33) 씨의 사실상 개인기업이다. 윤대인 회장은 비상장사 소화의 지분 72%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분 27.78%는 윤 회장 아들 희제 씨가 소유한 기업인 ‘인산MTS’가 갖고 있다. 희제 씨는 의약품 판매업체인 인산MTS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자본총계를 기준으로 집계한 윤대인 회장과 아들 윤희제 씨의 비상장사 소화와 인산MTS 등의 주식가치는 최소 1600억원이다.
소화와 인산MTS는 윤 회장 일가가 소유한 강동성심병원과 윤 회장의 친형인 윤대원 이사장이 이끄는 일송학원 소유의 병원 여러 곳에 약품을 공급한다. 인산MTS는 다수의 의약품을 삼천당제약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강남성심병원 등을 운영하는 일송학원은 한림대 설립자인 고(故) 윤덕선 명예회장이 1982년 설립했다.
윤덕선 명예회장이 1996년 별세한 이후에는 장남인 윤대원 일송학원 이사장이 강남성심병원과 한강성심병원, 춘천성심병원, 한림대성심병원을 물려받았고, 차남인 윤대인 성심의료재단 이사장은 강동성심병원과 삼천당제약을 맡았다.
1958년 인천시 중구 용동에서 이길여산부인과로 시작한 ‘가천대 길병원’은 이길여(84) 길의료재단 이사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길여 이사장은 1957년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인천에서 산부인과의원을 시작, 1978년 전 재산을 들여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의료법인인 인천길병원을 설립했다.
이 이사장은 결혼을 하지 않아, 친언니인 고(故) 이귀례 한국차문화협회 명예 이사장의 자녀와 사위가 현재 길병원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고 이귀례 이사장의 아들은 최승헌 가천대 교수, 딸은 최미리 가천대 기획부총장이며, 사위는 가천대 길병원의 이태훈 의료원장, 철원 길병원의 이창규 원장이다.
특히 길병원은 현재 이길여 이사장의 조카사위가 최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인 제넥스팜을 통해 의약품을 공급받고 있다. 의약품 도매업체인 제넥스팜은 이길여의 조카사위인 이승복 씨가 지분 52.4%를 보유하고 있다.
자본총계를 기준으로 집계한 이승복 씨의 비상장사 제넥스팜의 주식가치는 최소 15억원이다.
이길여 이사장은 수도권지역의 유력 지방신문인 경인일보 지분 13.83%도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이 이사장은 1999년 당시 경인일보 대주주였던 성백응 씨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53%를 76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이 이사장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개인 재산을 모두 재단과 학교법인에 귀속시켰다고 밝혔으며, 그의 자산평가액은 제대로 공개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