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실제 크기 그린란드의 14배

1569년 항해 위해 만든 ‘메르카토르 도법’

극지방 확대·적도 인근 축소 왜곡 논란

AU 주도 ‘이퀄 어스’ 전환 결의안 표결

왼쪽은 메르카토르 도법을 적용한 전통적인 세계지도에서 표현된 아프리카의 모습. 오른쪽은 실제 대륙의 면적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2018년 개발된 ‘이퀄 어스(Equal Earth)’ 지도에서 표현된 아프리카의 모습. [equal-earth.com·게티이미지]
왼쪽은 메르카토르 도법을 적용한 전통적인 세계지도에서 표현된 아프리카의 모습. 오른쪽은 실제 대륙의 면적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2018년 개발된 ‘이퀄 어스(Equal Earth)’ 지도에서 표현된 아프리카의 모습. [equal-earth.com·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우리가 학교에서부터 익숙하게 봐온 세계지도가 500년 만에 ‘퇴출’ 기로에 섰다. 지도에서는 아프리카와 그린란드가 얼핏 비슷한 크기로 보이지만 실제 아프리카의 면적은 그린란드의 약 14배에 달한다. 지구라는 구(球)를 평면에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왜곡 때문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 같은 왜곡이 단순한 지리적 오류를 넘어 세계가 아프리카를 실제보다 작고 주변적인 대륙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국제사회에서 가장 널리 사용돼온 ‘메르카토르 도법’ 대신 실제 대륙 면적을 보다 정확하게 보여주는 새로운 세계지도를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유엔 무대로 올라왔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유엔총회는 4일 아프리카 대륙의 실제 크기를 보다 정확하게 나타내는 세계지도 사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표결한다.

토고가 주도하고 아프리카연합(AU)이 지지하는 이번 결의안은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학교, 기술기업 등에 메르카토르 도법 대신 ‘이퀄 어스(Equal Earth)’를 비롯한 면적 보존형 세계지도 사용을 장려하는 내용이 골자다.

결의안이 통과되더라도 강제력은 없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교과과정은 물론 국제기구와 디지털 플랫폼이 사용하는 세계지도까지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로베르 뒤세이 토고 외교부 장관은 “이것은 정치적 논의가 아니라 과학적 논의”라며 과학적으로 입증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익숙한 세계지도는 플랑드르 출신 지도 제작자 헤라르두스 메르카토르가 1569년 만든 메르카토르 도법에 기반한다. 애초 목적은 세계의 실제 면적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항해시대 선원들의 항해를 돕는 것이었다.

구형인 지구 표면을 평면에 옮기면서 위도와 경도의 방향 관계를 유지하도록 설계해 항해에는 유용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다.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면적이 실제보다 크게 표현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북극에 가까운 그린란드와 북미·유럽·러시아 등은 실제보다 훨씬 크게 나타나는 반면 적도를 가로지르는 아프리카와 남미 등은 상대적으로 작게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프리카와 그린란드다. 메르카토르 지도만 보면 두 지역의 면적이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프리카 면적은 약 3030만㎢로 그린란드의 약 14배에 달한다.

인도 역시 지도에서 프랑스와 크기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면적은 프랑스보다 훨씬 크다. 우리가 수백년 동안 봐온 세계지도가 실제 대륙 간 크기 차이를 상당 부분 가려온 셈이다.

1595~1602년 제작된 메르카토르 지도첩에 실린 아프리카 지도. [영국 왕립지리학회·게티이미지]
1595~1602년 제작된 메르카토르 지도첩에 실린 아프리카 지도. [영국 왕립지리학회·게티이미지]

아프리카 국가들이 지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AU는 올해 메르카토르 도법이 아프리카 대륙의 실제 크기를 왜곡해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아프리카의 경제적 잠재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결정을 채택했다.

이어 토고에 ‘지도 바로잡기(Correct The Map)’ 캠페인을 국제사회에서 추진하는 역할을 맡겼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2018년 개발된 이퀄 어스 도법이다. 대륙과 국가의 상대적인 면적을 실제에 가깝게 유지하면서도 기존 면적 보존형 지도보다 익숙한 세계지도 형태를 구현하도록 설계됐다.

지도 논쟁은 단순히 어느 그림이 더 정확하냐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구형인 지구를 평면으로 완벽하게 옮기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도법을 사용하더라도 면적이나 각도, 거리, 방향 가운데 일부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메르카토르 도법 역시 ‘잘못된 지도’라기보다는 항해라는 목적에 맞춰 방향과 각도를 중시한 지도다. 반대로 이퀄 어스는 각 대륙의 면적을 정확하게 비교하는 데 중점을 둔 만큼 형태와 방향에서는 일정한 왜곡이 발생한다.

결국 어떤 지도가 더 우월한지가 아니라 세계를 어떤 목적으로 보여줄 것인지가 핵심인 셈이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국가들은 세계인의 인식을 형성하는 교과서와 국제기구 자료 등에서는 실제 면적을 보다 충실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메르카토르 지도가 만들어진 지 450년이 넘은 현재까지 교육과 기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만큼 이를 새로운 표준으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계은행은 이미 정적인 지도에서 이퀄 어스나 다른 대체 도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웹 지도에서도 메르카토르 방식의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여왔다. 구글 지도 역시 데스크톱에서는 2018년 지구를 구체로 보여주는 3차원 방식을 도입했다.

아프리카 측은 이번 유엔 표결이 수백년간 굳어진 세계지도의 ‘상식’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뒤세이 장관은 아프리카가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며 “우리는 세계에서 우리가 실제로 차지하는 지리적 크기를 보여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sj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