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106분기 연속 흑자
26년 넘게 이어온 ‘이익 체력’
52년 쌓은 ‘멀티메탈’ 경쟁력
핵심광물 회수율 60%대→80%대
최윤범, ‘핵심광물 플랫폼’ 전환 속도
美 테네시 통합제련소 2029년 시운전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아연·연을 만들던 고려아연이 52년 간 쉼없는 기술 개발 노력으로 금·은·동을 넘어 갈륨·게르마늄·인듐·안티모니까지 생산·회수하는 ‘멀티메탈 통합제련’ 기업으로 진화했다. 중국산 핵심광물 의존도를 줄이려는 미국이 이 기술력에 주목하면서 고려아연의 반세기 축적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2000년 1분기 이후 올해 2분기까지 106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6년 넘게 단 한 차례도 분기 적자를 내지 않은 셈이다. 올해 2분기에도 연결 기준 영업이익 5870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126.8% 증가했다. 상반기 기준으로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폭넓은 금속 포트폴리오가 장기간 흑자를 이어온 배경이다. 실제 올해 2분기에는 금·은 가격이 약세를 보였지만 아연과 희소금속 가격 강세, 구리 판매 확대가 빈자리를 채웠다. 안티모니·비스무스 판매량이 늘었고 인듐 판매량도 전분기보다 51% 증가했다. KZ트레이딩의 판매 확대와 호주 SMC의 생산 회복도 실적을 뒷받침했다. 특정 금속 가격이 흔들려도 다른 제품의 가격과 판매량, 회수율로 충격을 흡수하는 사업 구조가 튼튼한 체력의 기반이 됐다.
이 같은 ‘이익 체력’의 뿌리는 52년에 걸친 기술과 원료 경쟁력에 있다. 고려아연은 1974년 최기호 창업주가 국내 비철금속 산업의 불모지에서 제련사업에 뛰어들며 출발했다. 이후 세 아들인 최창걸·최창영·최창근 명예회장이 경영을 이어받아 각각 경영 기반과 제련 기술, 원료 공급망 경쟁력을 키웠다.
특히 금속공학을 전공한 최창영 명예회장은 제련 잔재에서 유가금속을 추가로 회수하는 TSL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이끌며 생산성과 회수율을 높였다. 최창근 명예회장은 세계 각지의 광산과 자원개발 현장을 찾아 안정적인 원료 공급망을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고려아연의 사업 구조도 달라졌다. 아연과 연에서 출발해 금·은·동과 각종 희소금속까지 하나의 공정에서 함께 생산·회수하는 ‘멀티메탈 통합제련’ 체계로 발전했다. 현재 고려아연의 경쟁력으로 꼽히는 다금속 구조가 어느 한 시점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반세기에 걸친 기술과 투자의 축적물인 셈이다.
최윤범 회장 체제에서는 선대가 쌓은 통합제련 경쟁력을 핵심광물로 확장하고 있다. 현재 유가금속 회수율은 최대 96.5%, 핵심광물 회수율은 과거 60%대에서 80%대로 높아졌다. 2028년까지 동 생산능력을 연 15만톤으로 늘리고 갈륨·게르마늄 생산도 본격화할 계획이다.
이른바 ‘전략광물 프리미엄’도 커지고 있다. 올해 2분기 인듐 판매량은 전분기보다 51% 늘었고, 인듐 화합물을 자체 생산해 데이터센터·광통신 고객에 직접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게르마늄 역시 생산 일정을 앞당겨 2027년 초 판매를 추진하고 있다.
최 회장이 그리고 있는 다음 단계는 고려아연을 ‘글로벌 핵심광물 플랫폼 기업’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2022년 제시한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통해 ▷신재생에너지·그린수소 ▷이차전지 소재 ▷리사이클링·자원순환을 3대 신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전통 제련기업에서 미래 산업의 소재·자원 공급망 기업으로 외연을 넓히는 전략이다.
52년간 축적한 제련 기술이 향하는 가장 상징적인 무대는 미국이다.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테네시주에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구축하는 ‘프로젝트 크루서블’을 추진하고 있다. 2029년 시운전을 목표로 핵심광물 11종을 포함한 비철금속 13종과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할 계획이다. 온산제련소에서 50년 이상 축적한 제련 기술과 운영 경험을 미국에 옮겨 심는 대형 프로젝트다.
미국 역시 고려아연의 기술력에 주목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핵심광물 관련 회의에서 고려아연의 미국 투자 프로젝트를 공급망 구축 사례로 직접 거론했다. 중국 비중이 높은 갈륨·게르마늄·인듐·안티모니 등의 공급망을 미국과 동맹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여러 금속을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고려아연의 통합제련 역량이 전략적 자산으로 부상한 것이다.
최 회장은 지난달 31일 창립 52주년 기념사에서 ‘금속을 녹이고 정련하는 내열 용기(도가니)’를 뜻하는 크루서블을 고려아연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으로 제시했다. 그는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단순한 제련소 건설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우방국의 산업 및 경제안보를 뒷받침하는 출발점”이라며 미국 테네시 제련소를 글로벌 첨단산업에 핵심광물을 공급하는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지난 52년이 아연·연에서 시작해 ‘멀티메탈’ 경쟁력을 쌓아온 시간이었다면, 다음 50년의 무대는 글로벌 핵심광물 공급망이다. 최 회장은 “앞으로 프로젝트 크루서블이 완공되고 온산에서 뛰는 우리의 심장이 미국 테네시에서도 뛰는 그날까지 우리의 마음 역시 이 뜨거운 도가니 속에서 더욱 단련되고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water@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