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세계로봇대회가 열린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 이좡(亦庄)을 찾았다. 대회 현장은 그야말로 로봇의 향연이었다. 중국과 해외 373개 기업이 참가해 3000여 점의 제품과 기술을 선보였고, 44개의 신기술과 설루션이 공개됐다. 관람객도 55만7000명에 달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 걷고 뛰며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로봇들이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더 오래 눈길을 붙잡은 것은 화려한 동작이 아니었다. 로봇이 ‘무엇을 보여주는가’보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였다.
로봇들은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고, 물류창고에서 물건을 나르며, 제품을 분류했다. 음식을 만들고 빨래를 개는 등 우리 생활과 가까운 분야의 로봇도 대거 등장했다. 퍼포먼스 중심이던 전시장이 공장과 물류센터, 상점 등 실제 작업환경을 재현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산업의 경쟁력은 개별 기업의 기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중앙정부가 산업의 방향을 제시하면 지방정부는 실증 공간과 보조금을 제공하고, 민간 자본은 유망 기업에 과감하게 투자한다. 전기차와 스마트폰 산업에서 축적한 배터리·모터·감속기·센서 공급망과 대량생산 역량도 개발 기간과 제조원가를 낮춘다.
무엇보다 중국에는 개발한 로봇을 곧바로 투입하고, 실패하면 고쳐 다시 시험할 수 있는 방대한 제조·물류·서비스 현장이 있다. 중국 로봇산업의 진정한 강점은 완성된 기술보다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고, 데이터를 축적해 제품을 개선한 뒤 양산으로 연결하는 속도에 있다.
중국의 성장은 한국에도 분명한 과제를 던진다. 중국을 위협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거대한 시장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옳지 않다. 중국과 똑같이 경쟁하기보다 한국의 강점을 산업화 성과로 연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와 민간도 휴머노이드 생태계 육성을 위해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투자 규모보다 연구개발의 성과를 실증, 구매, 양산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대기업은 로봇기업과 스타트업에 실제 작업환경과 데이터를 제공하고, 중소 로봇기업은 기술개발을 담당하며, 대학과 연구기관은 인공지능과 핵심부품 연구를 뒷받침해야 한다. 정부는 이들을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는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시장’도 만들어야 한다. 성능이 확인된 로봇은 공공조달과 수요기업의 구매로 이어지게 하고, 핵심부품 기업에는 시험생산부터 양산·해외인증·수출까지 단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부 사업도 현장 투입, 원가 절감, 반복 구매, 수출 등 산업화 성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휴머노이드 경쟁의 승패는 가장 멋진 로봇을 먼저 선보이는 나라보다 기술을 실제 산업과 시장으로 연결하는 나라에 돌아갈 것이다. 한국에는 이미 세계적인 제조기업과 탄탄한 부품산업, 우수한 인공지능·소프트웨어 인재가 있다. 연구실의 기술이 공장으로, 공장의 실증이 구매와 양산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길을 만든다면 한국은 추격자가 아니라 새로운 시장과 표준을 만드는 주역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제조 경쟁력과 혁신 역량이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꽃피워, 한국이 세계 로봇산업의 미래를 이끄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이봉걸 한국무역협회 베이징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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