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들어간 스타트업 대표에 약 5억원 투자금이 12억원대 개인채무로
중기연 “투자는 손실도 투자자 몫…융자와 책임 귀속 명확히 구분해야”
연대책임 제한에도 주식매수청구권·위약벌 등 우회 조항은 사각지대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1. 2017년 한 스타트업 회사의 A대표는 금융사로부터 5억원을 투자받았다. 대출이 아니라 회사 주식을 내주는 ‘상환전환우선주’ 발행을 통한 지분투자였다. 하지만 회사가 경영난으로 회생절차에 들어가자 투자금은 A대표 개인의 빚으로 돌아왔다. 투자자인 금융사가 A대표에게 주식을 되팔 수 있다는 계약 조항 탓이다. 매수가격은 투자원금의 15% 복리. A대표가 갚아야 할 돈은 12억원이었다. 대법원은 올해 4월 A대표에게 “투자자에게 12억원을 줘야 한다”고 확정 판결했다.
#2. 또 다른 B기업은 투자자 13명에게 상환전환우선주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계약서에는 회사가 투자자 동의 없이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회사와 대표가 투자원금에 해당하는 위약벌을 지급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대법원은 회사가 특정 투자자의 원금을 보장하는 약정은 주주평등 원칙에 어긋나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보면서도, 대표 개인의 책임은 여전히 남는다고 판단 했다. 회사에는 무효인 약정이라도 대표가 직접 지급을 약속했다면 개인채무로 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선 두 사례 모두 대출이 아닌 투자 형식의 자금조달이었지만 회사가 어려워진 뒤에는 투자 손실이 모두 창업자 개인에게 넘어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분투자는 회사가 성장하면 투자자가 수익을 얻고, 실패하면 투자금을 잃는 금융 방식이지만 대표 개인의 주식매수 의무나 위약벌 조항이 붙으면 투자금이 대표 개인의 빚으로 남는다. 관련 논의는 당시 법조계에서도 ‘창업 위축’ 우려로 받아들여졌다.
투자와 대출 사이 남은 ‘우회 책임’
중소벤처기업 연구원은 지난 13일 발간한 ‘해외 벤처 금융의 책임 구조’ 보고서에서 투자와 융자의 책임 귀속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투자는 기업의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하기 때문에 기업 성과에 따른 수익과 손실을 투자자가 부담한다. 투자자는 출자한 자본 범위에서 유한책임을 지며 기업이 부실해지면 투자금을 잃는 것이 원칙이다.
이에 비해 융자는 원리금 상환을 전제로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기업의 성과와 관계없이 채무자가 계약에 따른 상환 의무를 부담하며 채권 회수를 위해 담보와 대표자 개인보증이 결합될 수 있다. 중기연 한성연 부연구위원은 “투자에서는 손실이 투자자에게 귀속되는 반면 융자에서는 채무자가 상환 책임을 부담한다”며 “두 방식의 구분은 책임 귀속 구조의 명확성과 금융 거래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창업자 책임 감면 제도 개선은 꾸준히 이어졌다. 정부는 2018년 모태펀드 기준규약을 개정해 고의·중과실이 없는 창업자에게 투자기업의 의무를 연대 부담시키는 행위를 제한했다. 2022년에는 벤처투자법에 제3자 연대책임 제한 근거를 마련했다. 투자를 받은 회사가 자금을 다른 용도에 사용하는 등의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현실과 제도 사이의 간극이다. 실제 투자계약에서는 ‘연대보증’이라는 표현 대신 대표에게 별도의 의무를 부여하는 방식이 공공연히 사용돼 왔다. 회사의 회생이나 파산을 조건으로 한 주식매수청구권, 대표가 직접 부담하는 풋옵션, 투자원금에 연동한 위약벌, 회사와 별도로 부담하는 독립채무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A대표 사건에서도 투자자는 회사 채무에 대한 연대보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투자사인 금융사 측은 A대표에게 ‘계약상 주식매수 의무’가 별도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연대책임 제한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경제적 효과가 유사한 계약 조항이 독립채무로 인정되면 창업자의 개인책임은 남게 된다. 대법원도 이를 인정해 A대표는 투자금(5억원)의 두배가 넘는 채무를 지게 됐다.
중기연 한선영 부연구위원은 “최근 업계에서는 대표가 회사의 모든 의무를 함께 부담하는 계약이 줄었지만, 이전에 체결된 계약은 유효기간이 끝나지 않은 채 회생·파산 과정에서 현실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계약도 벤처투자 연대책임 제한이 본격화하기 전인 2017년 체결됐다.
영국은 집 담보 금지, 일본은 보증 없는 창업대출
해외 주요국은 대출에 대표자 개인보증을 붙일 때에도 책임의 범위와 조정 절차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중기연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의 벤처투자 계약은 투자자의 보호수단을 창업자 개인의 원금상환 의무보다 의결권과 이사회 구성, 우선권, 지분 구조 등 계약상 권리와 지배구조에 두고 있다. 미국 벤처투자협회와 영국 벤처투자협회는 표준계약서를 통해 투자 조건과 투자자의 경영 참여 권한을 규정한다.
영국의 기업대출 지원제도(CBILS)는 25만파운드 이하 대출에 개인보증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초과하는 대출 가운데 개인보증을 통해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대출잔액의 최대 20%로 제한했다. 회사 대표자의 주거용 주택을 담보로 잡는 것도 금지했다.
일본은 2014년 ‘경영자 보증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 금융기관이 대표자 보증을 요구할 때 필요성과 적정성을 설명하도록 하고, 법인과 대표의 자산·회계가 분리된 기업에는 보증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2022년 마련된 ‘경영자 보증 개혁 프로그램’에는 창업 5년 이내 기업에 경영자 보증을 요구하지 않는 신용보증 제도가 포함됐다. 기업이 부실해진 뒤에는 법원 파산 대신 금융기관과 협의해 보증채무를 조정하고, 경영자가 일정 생활자산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도 운영한다.
미국은 중소기업청 보증대출에서 일반적으로 지분 20% 이상을 보유한 경영자에게 개인보증을 요구한다. 대신에 보증 적용 대상을 지분 기준으로 한정하고, 기업 부실 이후에는 파산과 구조조정 제도를 통해 채무 부담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중기연은 “국가별로 제도 설계 방식에는 차이가 있으나, 투자 영역에서는 유한 책임 원칙이 유지된다. 융자 영역에서는 개인 책임 관리 방식에 차이가 나타나는 공통적인 구조가 확인된다”며 “책임 구조의 설계 방식이 금융 거래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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