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바라보는 경기 전망이 좀처럼 밝아지지 않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2208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경기전망 조사에서 내년 1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77에 그쳤다. 2021년 4분기부터 18분기 연속 기준선인 100을 밑도는 수치다. 경기 부진이 장기화·고착화하고 있다.
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들의 체감은 암담하다. 업종별로 기준선인 100을 웃돈 곳은 반도체(120)와 화장품(121) 두 곳뿐이고, 나머지 대부분 제조업은 100 아래에 머물렀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호경기에 올라탄 반도체, K-뷰티 위상 강화에 따른 화장품 산업만 환할 뿐, 식음료(84), 철강(66), 비금속광물(40)의 전망은 어둡기 짝이 없다. 특히 내수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의 전망지수는 75로 대기업(88), 중견기업(88)에 크게 못 미쳤다. 이들에게 더 혹독하다는 뜻이다.
기업들이 체감 악화의 배경으로 가장 먼저 꼽은 것은 고환율이다. 조사에서 고환율이 경영에 ‘부담이 된다’고 답한 기업은 38.1%로, ‘도움이 된다’는 응답(8.3%)의 네 배를 넘었다. 수입 원자재와 에너지, 중간재 비중이 큰 국내 산업 구조에서 환율이 오르면 원가 부담이 커지고 수익성은 그만큼 나빠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상당수 기업이 올해 초 세운 매출과 영업이익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답했는데,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 관세·환율까지 부담이 더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기업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환율, 금리 못지않게, 내년 경영 환경을 둘러싼 제도·노사 리스크도 기업 심리를 짓누르는 요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70% 이상이 내년 노사관계가 올해보다 더 불안정해질 것으로 내다봤고, 특히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른 교섭 갈등과 노동계 투쟁 확대 가능성을 최대 불안 요인으로 꼽았다. 최근 정부가 내년 3월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행정 지침을 내놨지만, 사용자성 판단과 교섭 대상 범위가 모호해 현장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졌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은 것이다.
지금 기업들은 기술 경쟁의 한복판에서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기술 패러다임의 거대한 파고를 타고 넘지 못하면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다. 기업이 오로지 본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에 가장 큰 리스크는 불확실성이다. 고환율만 해도 개인의 해외 투자를 국내로 돌리고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조치도 급한 대로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많아져야 투자도 들어오고 환율도 안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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