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지난 2002년 6월 29일, 한국 축구팀은 터키와 한일월드컵 3, 4위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한국팀이 기적적으로 4강에 오르면서 전국이 축제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날 오전 북한군이 이런 분위기에 완전히 찬물을 끼얹었다.
이날 오전 한국 해군의 최일선 임무를 담당하는 참수리 고속정이 서해 NLL(북방한계선) 인근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로보호 지원을 위해 출항했다. 오전 9시54분 북한군 등산곶 경비정이 서해 NLL을 침범했고, 이에 대응해 우리 해군 고속정 253편대(참수리 357호정, 358호정)가 출동했다.
그러나 10시25분 북한 경비정이 참수리 357호정을 향해 선제공격을 가해 우리 해군 6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당하는 참변이 벌어졌다. 우리 해군도 곧 대응사격을 가해 북한 경비정 역시 반파되고 약 30여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나, 월드컵으로 축제와 같았던 이날 분위기는 완전히 가라앉고 말았다.
대통령은 이날 저녁 장관들과 함께 청와대에서 3, 4위전을 관람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제2연평해전으로 명명된 이날 교전은 ‘연평해전’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교전에서 우리 피해가 생각보다 컸던 이유 중 하나는 북한군 경비정 화력이 더 강했다는 점이다.
북한군 등산곶 경비정 684호는 배수량 207t, 최대 28노트(시속 51㎞)의 속도에 85㎜ 전차포, 37㎜ 기관포, 14.5㎜ 기관포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우리 군 참수리 고속정은 배수량 170t, 최대 37노트(시속 68㎞)로 속도는 조금 더 빨랐지만, 배수량 면에서나 40㎜ 포, 20㎜ 발칸포, M60 기관총 등의 화력 면에서 열세였다.
이날 전투에서 우리 군에 치명타를 준 공격도 북한군의 85㎜ 전차포였다. 당시 NLL을 침범하고 남하해 참수리 고속정 450m 거리까지 접근한 북한군 경비정은 10시25분경 85㎜ 전차포를 기습적으로 선제 발사했다.
이때 우리 측 참수리 고속정 357호정의 핵심부인 조타실이 파괴되고 윤영하 정장이 전사했다. 첫 기습공격 한 방에 초반 전세가 불리하게 전개된 것이다.
우리 해군이 곧 반격에 나서 북한 경비정 684호가 반파돼 다른 경비정에 의해 예인되는 신세가 됐으나, 우리 참수리정의 화력이 약해 북한군의 85㎜ 포와 같은 결정타를 날리지는 못했다. 반면 85㎜에 기습당한 우리 군 357호정은 선체 손상이 심해 예인 도중 침몰하고 말았다.
후에 인양된 357호정을 분석해보니 85㎜ 전차포 5발, 37㎜ 기관포 19발, 14.5㎜ 기관포 258발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응해 357호정은 40㎜포와 20㎜포를 총 680여발 발사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한다.
이 교전을 계기로 우리 군은 기존 참수리 고속정을 대체할 더 강한 고속정 개발에 몰두했다. 이른바 PKX-A와 PKX-B 개발사업이다.
PKX-A는 지금의 윤영하급 유도탄 고속함(PKG)이다.
현재 계획된 총 18척을 모두 건조해 선령이 30년 이상된 참수리 고속정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배수량 350t으로 참수리 고속정의 2배 수준이며, 속도 최대 41노트(시속 75㎞)로 참수리 고속정보다 더 빠르다. 76㎜ 함포, 국산 대함미사일(해성)을 장착해 화력도 월등히 강해졌다. 대공레이더와 열영상장비도 장착해 대공전투능력과 수상근접전 능력도 향상됐다.
28일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진수식을 가진 신형 고속정(PKMR) 1번함은 PKX-B 사업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이 신형 고속정은 배수량 210t급으로 윤영하급 유도탄 고속함보다는 적고, 기존 참수리보다는 크다.
속도는 최대 40노트(시속 74㎞)로 유도탄 고속함에 버금가며, 130㎜ 유도로켓, 76㎜ 함포, 12.7㎜ 원격사격통제체제 기관포 등으로 무장했다. 추진체계는 유도탄 고속함과 같은 워터제트 방식이다. 워터제트 방식은 어망이 있는 저수심 해역에서도 작전이 가능하다.
참수리 고속정 357호정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당시 피해 규모를 면밀히 고려해 만들어졌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130㎜ 유도로켓은 참수리 고속정의 40㎜와 20㎜로는 침몰시키지 못했던 북한군 경비정을 정밀타격, 침몰시킬 수 있다. 그 외 76㎜ 함포로도 85㎜의 적 경비정에 대항할 수 있다.
357호정 교전 과정에서 장병이 직접 제어하는 20㎜ 기관포에서 희생이 컸음을 감안해 신형 고속정의 12.7㎜ 기관포는 원격사격통제 방식을 채택했다. K-6 중기관총을 함정 레이더와 연동해 표적을 자동 추적하고, 사격요원은 실내에서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탄착점을 수정해 발사한다. 더 안전하면서 명중률은 더 높인 것이다.
무기 자동화로 승조원 수(20여명)는 기존 참수리 고속정(30여명)보다 대폭 줄었다.
해군 함정 중 500t 급 이상은 세종대왕함, 안중근함, 포항함 등 위인의 이름이나 지명을 함명으로 정한다. 500t 이하는 대표적 함명에 건조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 함명을 정한다.
이날 진수한 신형 고속정 1번함은 기존 참수리 고속정 명칭을 이어받아 참수리-211호정으로 명명됐다.
해군은 PKX-A 사업으로 만든 유도탄 고속함(PKG) 18척에 이어 PKX-B 사업의 결과물인 신형 고속정(PKMR) 앞으로 20여척 건조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