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사태 해결을 위해 출범한 여야의정협의체가 20일 만에 가동을 중단했다. 의사단체인 대한의학회와 한국의대·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1일 4차 회의 후 “정부와 여당에 사태 해결 의지가 없다”며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야당과 의사협회, 전공의 단체들이 참여하지 않아 불완전한 상태에서 출범한 협의체가 두 단체마저 이탈하면서 좌초 위기에 처하게 됐다. 국민의힘은 “당분간 휴지기를 갖는 것”이라며 재개 가능성을 열어놨지만 의료공백은 내년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여당의 “크리스마스 선물”운운은 허언이 됐다.

핵심은 결국 2025학년 의대 증원이다. 두 의사단체는 정원 조정이 필요하다며, 100명 규모의 미충원 인원을 정시로 넘기지 말고 예비 합격자 수를 축소해 정원을 조정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입시혼란을 이유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의사단체는 “해결 의지를 조금이라도 보여 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으나 정부는 어떤 유연성도 보이지 않아 절망했다”고 했다.

정부의 태도는 아쉽다. 입시 일정이 진행중이라도 의사단체가 요구한 예비 합격자 수 축소나 미충원 인원의 정시 이월 여지를 따져보려고 조차 하지 않은 것은 답답하다. 어렵게 마련된 대화자리라면 성의있는 태도를 보이는 게 마땅하다. 작은 돌파구라도 찾아야 할 마당에 스스로 기회를 차단한 셈이다. 애초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던 정치권의 책임도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참여의사단체가 의사들을 설득할 만한 권위가 없다며 사실상 외면했고, 한동훈 국민의힘대표는 지방의대 설립을 내세워 갈등을 키웠다. 중재자 역할은 커녕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 것이다.

의료계도 의료현장에 꼭 필요한 논의는 눈감고 증원 축소에만 매달린 것은 비난을 면키 어렵다. 숫자에만 10개월째 매달리는 게 정상은 아니다. 의사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의료개혁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게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와 장기적인 의료시스템 발전을 위한 논의는 미룰 일이 아니다. 협의체를 다시 가동해 대화를 재개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국민들은 조마조마한 상태다. ‘아프면 큰일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의료공백 장기화로 환자와 국민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도 돌아올 가능성이 적어 병원을 지키는 전임의와 교수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내년 1월 대한의사협회의 새 지도부가 출범해 강성기조를 내세운다면 연쇄적 파장이 불가피하다. 상대방을 무릎 꿇게 하겠다는 식으로는 사태를 해결하기 힘들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에 둔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