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략적 인내’ 거부감 ‘북핵문제 망쳤다’ 인식
대북강경파 루비오·왈츠, 트럼프 대북인식에 맞출 듯
트럼프·김정은 ‘브로맨스’ 북미정상회담 이어질 수도
北 위기 고조시 예측불가의 ‘화염과 분노’ 압박 가능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집권 2기는 격랑의 한반도를 예고하고 있다. 통상적으로도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는 한국 외교안보에 있어서 미 리더십 교체는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트럼프 당선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브로맨스’를 내세우며 미국의 대북·대한반도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공언하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는 22일 김 위원장이 전날 방산전시회 ‘국방발전-2024’ 개막식 연설을 통해 미국과 협상을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가봤다며 지속적인 군사력 강화 의지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다만 김 위원장의 발언이 본격적인 북미대화 재개에 앞선 기싸움의 일환일 가능성은 남아 있다.
당장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변화가 예상된다. 버락 오바마·조 바이든 행정부를 관통해 온 대북 경제제재 중심의 ‘전략적 인내’는 폐기 수순에 접어들 전망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는 “트럼프의 머릿속에는 북한문제와 관련해 ‘화염과 분노’·‘큰 핵단추’라는 압박과 만나보니 말이 잘 통하더라는 대화라는 두 가지 옵션이 있을 것”이라며 “트럼프는 전략적 인내가 상황을 망쳐놨다고 비판해왔는데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두 가지 옵션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형석 대진대 교수도 “전략적 인내라는 게 사실상 북한문제와 북핵문제에 있어서 손을 놓고 있는 측면이 있었다”며 “트럼프는 그와 달리 좌고우면하지 않고 화끈하게 압박을 하든지 화끈하게 대화를 하든지 특유의 스타일대로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에,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을 백악과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하며 외교안보팀 인선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역할도 주목된다.
루비오 상원의원은 김 위원장을 겨냥해 ‘핵무기와 장거리로켓을 지닌 미치광이’라고 비판하고 북미정상회담에 회의론을 드러내는 등 대북 강경론자로 분류된다.
왈츠 하원의원 역시 북한과 러시아 군사협력을 두고 ‘위험하고 사악한 동맹’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다만 트럼프 2기 인선의 가장 큰 기준이 트럼프 당선인을 향한 ‘충성도’라는 점에서 이들이 1기 때 경험 많은 참모진에 비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는 힘들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김 교수는 “현재 인선 과정에서 거론되는 분들이 대북 강경론자라는 평가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충성파’라는 점”이라며 “이들의 과거 발언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 대북인식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트럼프도 집권 1기 초반엔 북한에 대해 최대 압박을 가하다 대화에 나섰다”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전쟁 등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와 북한의 태도를 따져본 뒤 힘으로 기선을 잡고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전 교수는 “지금 인사에서 거론되는 분들이 중국과 러시아,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 국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또 하나의 사실은 트럼프가 네 국가 중 러시아와 북한에 대해서는 인식이 다르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충성심이 검증된 사람들”이라면서 “트럼프는 러시아와 북한에 대해서는 ‘내가 지도자들도 잘 알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해왔는데 중국과 이란문제는 참모들의 의견을 따르더라도 러시아와 북한문제는 자신의 생각대로 끌고 가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김 위원장과 또다시 북미정상회담 담판에 나서는 시나리오도 살아있다.
전 교수는 “북한이 초강경 핵실험이나 미국을 향해 태평양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쏜다든지 엉뚱한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꽤 있다”며 “1~2년을 놓고 보면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절반 이상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 교수는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좋겠지만 우선 핵동결만하는 중간목표만 달성해도 괜찮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한미가 사전에 조율하지 않으면 미국이 한국을 패싱하고 그냥 가거나, 한국의 불만을 듣고 ‘그럼 나는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한미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북핵 고도화와 북러관계 강화 등 상황이 바뀐 만큼 급격한 북미대화 진전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트럼프가 선거 과정에서 김정은과 관련해 우호적인 얘기를 했지만 집권 1기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며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핵무력 고도화 노선으로 되돌아갔고 대남관계도 대적관계로 바꿨다”고 진단했다.
또 “무엇보다 러시아 변수가 등장했다”며 “러시아와 상당한 유대관계를 쌓은 북한이 미국과는 장기전이다, 정면돌파전이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그러면서 “트럼프 입장에서는 북한이 더 이상 위기를 고조시키지 않고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다면 그 정도 수준에서 관리하려 할 수 있다”며 “북한이 미국의 국익을 침해하거나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과거 ‘완전한 파괴’나 ‘화염과 분노’를 경고한 것처럼 예측불가의 강력한 수단을 동원한 대북 압박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