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2개월여를 앞두고 지난 15~16일(이하 현지시간)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었다. 시 주석은 트럼프 2기를 겨냥, ‘국제 자유무역 시스템과 원할한 산업·공급망 수호’메시지를 반복했다. 또 한국과 미국, 일본과 각각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문제에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과 미·일 정상은 북한 도발과 러시아·북한 군사 협력에 대해 중국의 역할을 당부했다. 이번 APEC 회의는 우리에겐 경제·안보 이익을 극대화할 대미·대중 ‘실리 외교’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계기였다.

윤 대통령은 15일 한중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포함한 군사 도발과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거론한 뒤 “(이는) 한반도 역내 불안정을 야기하는 행동으로서 중국이 건설적으로 역할을 해 달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중국 역시 역내 정세의 완화를 희망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원하지 않는다”며 “오로지 당사자들이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양국 정상은 상호 방문도 제안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시 주석이 윤 대통령을 먼저 초청했고, 윤 대통령도 시 주석의 방한을 제안했다.

16일 열린 미중정상회담에서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북한군 러시아 파병을 “위험한 확전”이라고 규탄하며 “중국은 (북·러에) 영향력과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조선반도(한반도)에서 충돌·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의 전략적 안보와 핵심이익이 위협받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 외무성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시 주석 간 회담에선 납북자 문제와 북한 정세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혀 관련 의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논의했음을 시사했다.

시 주석은 세션 연설은 물론이고, 한미일과 뉴질랜드 등 ‘미국 우방’과의 회담에서 무역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를 비판하고 자유무역 수호와 공급망 안정을 강조했다. 시 주석의 행보는 동맹·비동맹 불문하고 통상 압력을 강화하는 트럼프 2기 출범에 앞서 서방국가와의 관계를 ‘정돈’해 놓으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또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에선 ‘중국의 안보’와 동시에 ‘중국의 핵심 이익’을 언급했는데 러·북 뿐 아니라 트럼프 2기에도 우회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관계 개선의 흐름을 살려가면서도 트럼프 2기의 대중 통상 압박 동참에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정부가 현명한 ‘실리 외교’를 깊이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