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만의 차별성을 약화시키는 요인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KBS1 ‘동네 한 바퀴’는 취지가 매우 좋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동네의 가치를 재발견해주는 아날로그 감성 로컬기행 다큐멘터리다.
진행자가 포근하면서 차분하고, 온화하며 품격까지 갖춘 김영철에서 구수하고 유쾌한 이만기로 바뀐 지도 2년 3개월 정도가 되면서 이만기 스타일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동네 한 바퀴'만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모습들도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잦은 식당 방문. 회당 7~8곳을 찾아가면 절반 이상이 음식점, 빵집, 케익떡집 등이다. 식당을 찾아가지 말라는 게 아니다.
'동네'라는 무대 위의 진짜 주인공들로,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살아왔거나, 그래서 추억과 기억을 선사할 수 있는 식당과 주인이라면 얼마든지 찾아가 그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만기가 경기도 이천에서 게걸무 시래기 국밥·비빔밥 집을 찾아가 사연을 들었던 건 아주 좋았다.
하지만 '동네 한 바퀴'는 이런 식당뿐만 아니라 동네 맛집 정도의 집들까지 열심히, 그리고 자주 찾아간다. 지난 5일 방송된 경북 예천편에서 나온 예천 칼국수와 굴림만두, 회룡포 순대국밥집은 일반 맛집이다.
그나마 8년 전, 교통사고로 떠난 아내 대신 남편 만수 씨가 총각 아들과 함께 운영하는 찹쌀떡집은 이 집만의 스토리가 있어 괜찮았지만, 그냥 식당을 자주 방문하면 '동네 한바퀴'라는 프로그램의 차별성이 약화된다.
'동네 한 바퀴'가 식당을 자주 방문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된다. 취재와 제작의 편의성 때문으로 보인다. 식당은 '동네 한 바퀴'의 이만기 방문 자체가 홍보를 위한 절호의 기회다. 이걸 놓치고 싶지 않아 식당 종업원들이 적극 취재에 임하는 게 방송으로도 보인다. 그런 요구를 자꾸 받아주면 맛집 프로그램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만기는 구수하고 유쾌하기는 하지만, 단조롭고 두루뭉술하다. 음식 맛을 본 후의 반응도 "기가 찹니다. 너무 맛이 좋아요"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만기 씨가 표현해내는 맛 평가의 기대감이 조금도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경상도톤 사투리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방송에서 틀린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이만기 씨가 지역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기 위한 것이지만, 음식을 먹으면서 자주 술을 마신다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둘째, 지방 유적이나 둘러볼만한 장소를 찾아가더라도 '동네 한 바퀴'만의 분위기가 필요하다. 5일 방송에서 찾아간 700년의 세월을 품은 부자나무 석송령은 리포터나 향토사학자가 '6시 내 고향'이나 '생생정보'에서 설명, 소개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세째, '동네 한 바퀴'는 MC 이만기가 각 지역민들에게 다가가 동네의 이야기를 보물찾기 하듯 찾아나서며 잃어버린 추억과 시간을 되찾아준다는 콘셉트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연출 장면이 자주 발견된다.
가령, 5일 영주시 무섬마을 앞에 있는 황금빛 모래사장에서 한 아저씨가 힘차게 말을 타고 달린다. 그러다 우연히 이만기를 만난다. 이건 설정이다. 굳이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할 필요가 없는데, '동네 한 바퀴'는 이런 작위적 연출과 설정이 많다.
용리단길에서 횟집을 하는 주인이 자전거를 타고 사거리에서 갑자기 나타나 이만기를 만나는 설정도 자연스럽게 한다고 했지만, 어색하다. '동네 한 바퀴'는 자연스러운 아날로그성 프로그램이다. 이런 인위적인 설정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