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신용점수 925.8점으로 ↑

마통대출은 950점 이상 돼야

저신용자, 불법사채 우려 커져

#. 서울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한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으려다, 심사 과정에서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정규직 직장에 다니는 데다 고신용자에 해당하는 그는 탈락 사유를 문의했지만 은행은 “내부 사정상 승인이 어렵다”는 답변을 반복할 뿐이었다. A씨는 “여타 시중은행서도 소액대출을 안내하거나, 한도나 금리가 터무니없이 높게 설정되는 경험을 했다 ”면서 “2금융권 대출을 알아봐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20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3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서 새로 취급한 신용대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KCB 기준)는 925.8점으로 지난해 동기(916.4점)와 비교해 9.4점가량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말(923점)과 비교해서는 약 4.6점가량 늘어난 수치다.

▶“담보 없으면 안 돼” 은행권, 신용대출 조인다=차주들의 평균 신용점수가 상승했다는 것은, 그만큼 은행권의 대출 심사 문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별도의 담보가 없이 차주의 신용으로만 대출을 심사하는 신용대출 및 마이너스통장대출의 경우 차주들의 신용도가 대출 심사에 영향을 주는 정도가 크다.

이같은 현상은 인터넷전문은행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인터넷은행 3사(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가 새로 취급한 신용대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는 921.7점으로 지난해 동기(895.3점)과 비교해 26.4점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너스통장 대출의 경우 심사 문턱이 더 높았다. 5대 은행이 지난 3월 새로 취급한 마이너스대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는 955.8점으로 지난해 동기(945.8점)와 비교해 10점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 신용대출(925.8점)과 비교해 30점가량 높은 수치다. 통상 신용 1등급(신용점수 951~1000점)에 해당하는 차주들을 중심으로 대출이 실행됐다는 얘기다.

은행들이 최근 ‘신용대출 조이기’에 나선 것은 대출 건전성과 관련이 깊다. 고금리 장기화 현상이 나타나며 은행권의 신용대출 연체율은 나날이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충당금 등 비용 부담이 더해지자, 은행권에서도 담보대출 위주로 대출을 실행하며 여신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가계 신용대출 연체율은 0.73%로 전년 동기(0.59%)와 비교해 0.14%포인트 증가했다. 은행권은 지난해부터 대규모로 부실채권을 정리하며 건전성 관리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대출 연체율은 3개월째 0.7%대를 유지하며, 2015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한국은행의 ‘대출행태서베이’ 자료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가계일반(주택담보대출 제외) 차주 대출태도지수는 마이너스(-)6으로 전 분기(0)와 비교해 6포인트 줄었다. 반면 가계주택 차주 대출태도지수는 (+)3으로 전 분기(-14)와 비교해 17포인트 증가했다. 여기서 (+)부호는 대출태도 완화를, (-)부호는 그 반대를 의미한다. 은행권에서 비교적 안전한 담보대출 수요를 중심으로 대출을 실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막혀버린 저신용자 대출 통로=이에 따라 고신용자들조차 신용대출을 위해 제2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상위 5대 저축은행(SBI·OK·한국투자·웰컴·애큐온)의 신규 신용대출 중 800점대(NICE 기준) 이상 차주의 비중은 20.9%에 달했다. 이들에게 적용되는 저축은행 신용대출 금리는 10%대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 대다수다.

문제는 은행권 대출 문턱이 높아질수록, 중·저신용 취약계층에 대한 자금 공급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신용자들이 은행권에서 대출받지 않고 2금융권으로 밀려날 경우, 2금융권에서 주 고객으로 삼는 중·저신용자들에 대한 대출 규모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고신용자 대출이 어렵다는 말은 곧 중·저신용자들에 대한 대출 공급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제도권 대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대부업 대출에서도 신용대출 규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김광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