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투기 자금이 몰리면서 미국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영국 구리 가격과의 격차가 이례적으로 벌어진 가운데 상품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거래가 가장 활발한 구리 선물 3개월물(7월 인도분) 가격은 지난주 11% 급등했으며 15일 장중 파운드당 5.13달러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6일에도 장중 5달러를 상회하다 4.89달러에 마감했다.
t당 가격으로 비교하면 뉴욕 구리 선물은 최고 1만1310달러를 넘어서며 런던 구리 선물(1만278달러)보다 프리미엄이 1000달러 이상 붙었다. 씨티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두 시장의 구리 선물 가격은 더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 왔으며 격차는 t당 90달러 미만이었다.
시장 관계자들은 투기 세력이 미국 시장의 프리미엄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트레이더들에 포지션 청산 압박을 가한 것이 구리 가격 급등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뉴욕에서 인도 가능한 재고 수준에 대한 두려움이 베팅을 더 부추겼다고 말했다. 구리 가격의 방향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투기적 거래는 계약이 더 복잡한 런던금속거래소(LME)보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더 쉽게 이뤄지고 있다.
트라피구라 등 약세 포지션을 가진 상품 거래자들은 미국으로 인도될 구리를 확보하고 숏(매도) 포지션을 청산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컨설팅 회사 우드매킨지의 엘레니 조아니데스 구리 리서치 부문장은 “도망치는 시장처럼 느껴진다”면서 “지난 몇 달 동안 엄청난 양의 투기성 자금이 유입됐다. 정말 거대하다”고 말했다.
구리의 갑작스러운 급등은 최근 몇 년간 니켈, 가스,코코아 등의 상품에서 유사하게 나타난 움직임으로, 공급이 중단되고 거래자들이 구매 및 판매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는 데 따른 상품 거래의 변동성을 보여준다.
구리는 건물, 전력 케이블, 전기차 등 광범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탈탄소화에 필수적인 금속이다. 하지만 광산 채굴 부족과 수익성 저하로 생산량이 줄면서 정제 구리 부족이 예상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뉴욕 구리 가격의 상승이 미국에 기반을 둔 자금이 상품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는 현상과도 관련된다고 분석했다.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수준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진 가운데 자산운용사와 헤지펀드들 사이에서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원자재가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 지난 15일 중국이 지방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구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구리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매수를 더욱 부추겼다.
나탈리 스콧-그레이 스톤액스 기초금속 애널리스트는 “구리 수요의 장기적 증가와 공급 위험에 대해 시장이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트레이더들은 지난 2022년 3월 니켈 시장처럼 미국 구리 시장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당시 숏 스퀴즈(공매도 투자자가 자산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다시 매수에 나서면서 가격이 급등하는 것)로 니켈은 며칠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시장 운영자인 LME는 시장 안정을 위해 개입하게 됐다.
콜린 해밀턴 BMO 상품 애널리스트는 “구리 가격 급등은 CME가 현재의 시장 이탈을 해결하기 위해 인도 연기 허용과 같이 규칙을 일시적으로 수정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CME는 “시장 참가자들이 구리의 위험과 불확실성을 관리함에 따라 설계된 대로 운영되고 있는 우리 시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