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면 성욕 세진다” 교회의 ‘금지령’에 유럽 발칵 뒤집힌 이유 [퇴근후 부엌-버터]
[123rf]

[퇴근 후 부엌]술에 절어 해장국을 시켜만 먹다 어느 날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끓여봤습니다. 그 맛에 반해 요리에 눈을 떴습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먹으면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끼에 만원이 훌쩍 넘는 식대에 이왕이면 집밥을 해먹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퇴근 후 ‘집밥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요리와 재료에 담긴 썰도 한 술 떠 드립니다.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프랑스 북부 소도시 루앙. 이곳에는 ‘버터 타워(Tour de Beurre)’라고 불리는 거대한 대성당이 있습니다. 성당 벽이 노란색이라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인지 기대하고 방문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외관은 유럽의 여느 대성당과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먹으면 성욕 세진다” 교회의 ‘금지령’에 유럽 발칵 뒤집힌 이유 [퇴근후 부엌-버터]
프랑스 루앙 대성당. 신주희 기자

사실 버터 타워라는 별명은 색깔 때문이 아니라 중세 교회가 ‘버터 면죄부’로 걷은 세금으로 탑을 지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정면에서 성당을 봤을 때 나중에 지은 오른쪽 탑이 버터 타워, 왼쪽 탑이 로만 타워입니다. 맨 꼭대기 종탑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무거운 종탑인 ‘잔 다르크종’이 달려 있습니다. 루앙에서 생을 마감한 잔 다르크를 기리기 위해 만든 종입니다.

루앙 대성당은 독일의 쾰른 대성당이 완공되기 전인 188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버터로 얼마나 많은 돈을 거둬들였으면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었나 궁금했습니다. 이번 퇴근 후 부엌에서는 면죄부까지 사면서 먹어야 했던 버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재료썰]

동아시아 식문화권에서 버터는 꼭 필요한 식재료는 아닙니다. 냉장고 한 켠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아쉬울 것 없지만, 중세 중부와 북유럽에서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버터는 기름을 대신할 필수 식재료였습니다. 식탁에 올라가는 작은 버터 한 조각이 유럽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위세를 떨치던 시기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버터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로마 교황청에서 사순절, 즉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날인 부활주일 전 40일 동안 육식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음식을 먹지 않고 고행을 했던 예수의 고난을 기리는 의미였습니다. 이 육식에는 버터, 크림 등 동물성 지방도 포함됐습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고기와 유제품이 성욕을 부추긴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인해 독신 서약을 지키는 수행자들은 금식 기간에 동물성 식품을 멀리해야만 했습니다. 15세기부터는 이 같은 의무가 수도자뿐 아니라 일반 신자에도 확대됐습니다.

“먹으면 성욕 세진다” 교회의 ‘금지령’에 유럽 발칵 뒤집힌 이유 [퇴근후 부엌-버터]

애초에 버터 대신 올리브유를 사용하는 지중해 국가는 이 금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탈리아, 스페인은 유제품 이외의 식재료가 풍부한 데다가 바다에 인접한 관계로 육류보다 생선을 즐겼습니다. 문제는 유럽의 내륙 지방이었습니다. 북유럽 지역에서는 추운 날씨 탓에 올리브가 잘 자라지 않았습니다. 또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버터가 아니면 당장 식생활에 쓸 기름을 구하기가 어려웠죠. 이에 더해 낙농업을 기반으로 생활하던 게르만 문화의 영향으로 북유럽 지역에서는 교황청의 포고를 선뜻 따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딱 40일간 이 금기가 적용되면 버틸 만 했겠습니다만 사순절 금식 기간뿐 아니라 금육일인 매주 금요일과 각종 축일을 포함하면 육류 금식 기간은 너무나도 길었습니다.

“먹으면 성욕 세진다” 교회의 ‘금지령’에 유럽 발칵 뒤집힌 이유 [퇴근후 부엌-버터]
1516년 교황 레오 10세가 발행한 면죄부. 1954년 독일 루터 필름이 마틴 루터 영화를 제작한 루터 교회 프로덕션(Lutheran Church Productions)에 제공했다.

여기에 교황청은 한 술 더 떠 이를 어기고 사순절에 버터를 먹게 되면 우상숭배보다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황당하게도 여기에는 단서조항이 붙습니다. ‘만약 부득이하게 먹어야만 한다면 교황청에 미리 사정을 설명하고 면죄부를 발급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덴마크와 스웨덴 같은 북부 게르만 민족 출신의 왕과 귀족들은 도저히 버터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교황에게 돈을 바치는 대신 버터와 우유를 택했습니다.

교황청이 말도 안 되는 ‘버터 면죄부’를 제시했던 이유도 따로 있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는 이슬람교와 대대적인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오스만제국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현재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함락시켜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것을 시작으로 동유럽을 빠르게 점령해나갔습니다. 심지어 1480년에는 이탈리아 남부 오틀란토에도 오스만 군대가 침입했습니다. 위기의식이 고조된 교황청은 전쟁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더 많은 면죄부를 발행합니다. 결국에는 면죄부가 유가증권처럼 시중에서 유통될 정도에 이르렀다고 하죠. 이에 더해 15세기 인쇄술 발명 덕분에 면죄부의 대량 발행이 가능해지면서 교황청은 점점 더 악랄한 방법으로 서민들을 쥐어짜기 시작했습니다.

또 교황청은 면죄부로 거둬들인 자금으로 대성당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내에는 버터 면죄부 판매를 위한 헌금함까지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지어진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루앙 대성당의 ‘버터 타워’입니다.

점점 늘어나는 세금에 대한 반발감도 더 커져만 갔습니다. 그 중에서 독일 지역의 반발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교황청은 사순절 기간 유제품 면죄부에 대한 세금을 계속 올렸고 결국 민심은 폭발하고 맙니다.

1520년, 종교개혁의 아버지 마틴 루터가 마침내 로마 교황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날립니다. 그는 ‘95개조의 의견서’를 발표한 지 3년 뒤인 1520년 ‘독일 지역의 그리스도교인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강도 높게 버터 면죄부를 비판합니다.

“먹으면 성욕 세진다” 교회의 ‘금지령’에 유럽 발칵 뒤집힌 이유 [퇴근후 부엌-버터]
독일 드레스덴의 마틴 루터 기념비. [123rf]

서한에서 루터는 “금식은 누구에게든 자유롭게 적용되어야 하며 모든 종류의 음식물 역시 누구나 자유롭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로마에 있는 저들 자신은 금식을 조롱하면서 로마 밖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저들이 구두도 닦으려 하지 않는 기름을 먹게 하고, 또 그 후에는 우리에게 버터 및 각종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팔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버터 면죄부를 대놓고 지적합니다.

이어 “저들은 우리의 양심을 너무나 불안하고 소심하게 만들어 놓았기에 이 자유에 관해 설교하는 것조차 더 이상 어려울 지경”이라며 “그럴 것이 일반 백성을 속이고 저주하고 또는 음행을 저지르는 것보다 버터를 먹는 것을 더 큰 죄로 간주하고 꺼려하기 때문”이라고 했죠.

“먹으면 성욕 세진다” 교회의 ‘금지령’에 유럽 발칵 뒤집힌 이유 [퇴근후 부엌-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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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격정적인 비판은 북유럽인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덴마크와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의 나라들은 루터의 말에 따라 가톨릭교회와 단절했습니다. 그렇게 개신교로 개종한 북유럽 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가톨릭 교회가 힘을 못 쓰고 있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버터 문화권에 따라 유럽의 종교 지형을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프랑스 역사학자 장 루이 플랑드랭이 쓴 ‘음식: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요리사’에서 이 같은 의견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유럽의 종교 지도를 보면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 버터를 먹는 문화권은 오늘날까지도 개신교의 세가 강합니다. 반면, 올리브오일 문화권인 이탈리아나 스페인, 포르투갈은 아직까지도 가톨릭이 우세합니다.

“먹으면 성욕 세진다” 교회의 ‘금지령’에 유럽 발칵 뒤집힌 이유 [퇴근후 부엌-버터]
버터레몬 파스타. 신주희 기자

버터는 양식의 기본 식재료로 꼽힙니다. 특히 프랑스 요리에서 소스의 기본인 루(roux)를 만들 때에도 반드시 버터가 들어갑니다. 다만, 유지방의 무거운 맛 때문에 한국 사람들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버터의 무거운 맛은 날리고 풍미는 살린 레몬 버터 파스타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레몬 버터 파스타는 2014년 개봉한 코미디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 남자 주인공 파블로가 배우 스칼렛 요한슨에게 해준 요리로 유명해졌습니다. 지중해의 식재료인 레몬과 게르만족의 식재료인 버터가 만난 퓨전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먹으면 성욕 세진다” 교회의 ‘금지령’에 유럽 발칵 뒤집힌 이유 [퇴근후 부엌-버터]

▶재료 : 마늘 4~5알, 레몬 반개, 양파 반개, 링귀니면 1인분, 가염버터 20g, 치킨스톡, 새우 취향껏

“먹으면 성욕 세진다” 교회의 ‘금지령’에 유럽 발칵 뒤집힌 이유 [퇴근후 부엌-버터]

1. 마늘, 양파를 다집니다. 버터 한 조각을 썰어 둡니다.

2. 끓는 물에 소금 한 꼬집 넣고 파스타 면을 6분간 삶습니다.

“먹으면 성욕 세진다” 교회의 ‘금지령’에 유럽 발칵 뒤집힌 이유 [퇴근후 부엌-버터]

3. 달군 팬에 버터를 녹이고 다진 마늘과 양파를 넣고 볶습니다.

4. 새우를 넣고 남은 버터를 넣습니다.

“먹으면 성욕 세진다” 교회의 ‘금지령’에 유럽 발칵 뒤집힌 이유 [퇴근후 부엌-버터]

5. 새우가 익으면 면과 면수 한 국자, 치킨스톡 한 숟갈을 넣어 간을 맞춥니다.

6. 마지막으로 레몬즙을 짜서 섞어줍니다.

“먹으면 성욕 세진다” 교회의 ‘금지령’에 유럽 발칵 뒤집힌 이유 [퇴근후 부엌-버터]

버터는 식용유와 달리 고온에서 금방 타버립니다. 재료가 타지 않도록 약불로 볶아야 버터의 풍미를 살릴 수 있습니다. 레몬향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레몬을 갈아 올리면 보다 완성도 높은 요리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참고 문헌]

50가지 기름 이야기 (도현신, 2023)

Food: A Culinary History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 (Jean-Louis Flandrin, 1999)

18세기의 맛 (안대회 외,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