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인도 성지순례기 두 번째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모든 것이 꿈 같고 꼭두각시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불과한 무상(無常)의 실상을 비유한 ‘금강경’ 마지막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권력의 무상함을 느껴보는 시기에 갠지스강의 모래, ‘항하사’를 찾아 금강경을 여행하다 꽂힌 글귀다.
다양한 종교에 대해 포용력을 갖기를 원하는 내가 낯선 불교성지순례를 간다. 눈이 따가울 정도의 퀴퀴한 공기와 낯선 거리, 낯선 분위기, 낯선 음식과 함께 다른 문화와 자연, 환경을 접하며 250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인도로 간다.
중첩된 행사들로 20여일 일정의 인도 초행길은 들뜨고 한편으로 걱정도 하며 며칠 밤잠을 설치며 출발 했다. 부처가 태어나고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교화하다 열반에 든 땅 인도 성지에 직접 가볼 수 있다는 기대감은 결코 숨길 수 없다.
“아난다여! 누구든 성지순례를 떠나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부처가 사촌동생이자 10대 제자중 하나인 ‘아난다’에게 성지순례에 대해 남긴 유훈으로 불경(대반열반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8대 성지는 네팔에 있는 룸비니동산을 비롯해 인도 북동부 지역 갠지스강 유역에 밀집돼 있다.
효율적인 일정으로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델리 공항에서 갠지스강이 있는 바라나시까지 항공편을 이용해야 한다. 델리에서 바라나시는 비행기로 1시간 30분, 열차나 차로 움직이면 12시간 전후가 걸린다.
조계종 중앙신도회 임원 순례단이 델리에 도착하기 며칠 전 먼저 인도에 와 있던 몇몇 이들과 짬을 내 뉴델리에 있는 국립 박물관을 찾았다. 인도 정부가 유일하게 인정한다는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는 곳이다. 순례단 이동 경로에 델리에서의 일정이 없어 시간을 내 미리 찾았다.
델리의 부처 진신사리
부처의 진신사리가 보관돼 있다는 델리 국립박물관(내셔날 뮤지엄 뉴델리)엔 불교 유물만 독립적으로 전시해 놓은 불교유물관이 있다. 불교발상지 국가의 국립 불교유물관 치고는 규모도 작고 찾는 이들도 많지 않은 듯하다. 비록 성지는 아니지만 부처의 진신사리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인도를 찾는 불자들은 꼭 들려볼 만한 장소이다.
이곳의 사리는 부처가 열반했던 ‘쿠시나가르’에서 부처의 법구를 화장해 나온 ‘가장 확실한’ 부처의 유골(진신사리)이라고 인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불자들에게 이를 친견하는 것처럼 감동적인 순간이 또 있을까 싶다.
우리나라에도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는 봉정암, 중대사자암 등 5대 적멸보궁을 포함해 여러 곳은 특별한 기도처로 인식돼 많은 불자들이 기도를 위해 연중 찾고 있다.
이곳 박물관 진신사리는 1898년 고대 카필라바스투(가필라성) 발굴 과정에서 작은 사리 용기와 함께 발견됐다. 사리 용기 뚜껑에 “이것은 샤카 족의 붓다 세존의 사리용기로서, 그의 형제·자매·처자들이 모신 것이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부처께서 ‘쿠시나가르’에서 입멸에 든 후 수습한 사리를 8등분해서 나눠줬다. 그중 하나가 석가족에게 배분됐고 석가족이 사리탑을 세워 보관했다. 이게 발굴된 것이다.
이곳 부처의 진신사리는 외부에서 볼 수 없는 사리탑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육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금탑 유리관 속에 있어 이 또한 신기하고 환희로움이 느껴졌다.
델리 국립 박물관 불교관은 ‘부처의 일생’, ‘인도미술에 있어 부처’, ‘불교의 부처들’, ‘자타카 상징 및 보살’, ‘불교 두루마리 그림’, ‘디지털관’, ‘아시아 불교전래관’ 등의 이름을 붙인 9개의 홀로 이뤄져 있다.
8개관은 가볍게 둘러볼 뿐 모두의 관심은 진신사리가 있는 7관의 부처유물관이다. 진신사리 유리 금탑 앞에는 대구와 경기도 등에서 온 스님과 순례객들이 예불을 드리고 몇몇 외국인들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인도 수도 델리와 마하트마 간디
델리는 16세기 무굴제국의 수도였으며, 20세기 영국령 수도로서 400여 년간 인도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인도의 수도로서 세계 최대도시이다. 불교 경전에서 델리는 고대 인도 16국 중 하나인 ‘쿠루’였다. 쿠루족은 심오한 가르침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 부처가 이곳에서 가장 심오한 법문인 ‘대념처경’을 설법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도 대륙이 힌두교화돼 있는 지금도 델리는 ‘수많은 종교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도시’라고 할 정도로 신흥종교가 뻗어나가는 거점이다.
이슬람을 신봉한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만큼 델리에는 이슬람 문화와 건축물의 상징이라 할 만한 72m 높이의 5층탑 ‘꾸뜹 미나르’와 인도 최초 이슬람사원 ‘쿠와트 사원’, 정원속의 묘라는 ‘후마윤 묘’ 등 웅대한 건축물들이 많은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이에 경쟁이라도 하듯 인도인의 1만년 문화를 압축시켜 보여준다는 세계 최대의 힌두교사원 ‘악샤르담 사원’이 2005년 개관해 인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8만4000여 신을 대리석에 정교하게 조각하고, 사원과 푸른정원, 음악분수 등을 만들어 인도 건축물의 총화를 보여주고 있다. 웅장함과 아름다움, 예술성에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다.
휴대전화 등 대부분의 소지품을 소지하고 입장할 수 없어 사진 한 장 찍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입장료 없이 눈으로나마 호사를 누린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죽기 전에 봐야할 건축물 중 하나라고 소개된 연꽃 사원은 1986년에 만들어진 바하이교 사원이다. 널따란 푸른 공원광장 한복판에 세워진 물위에 떠있는 27개의 연꽃 봉우리 모양의 사원으로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를 연상케 한다. 한참을 줄서서 기다려야 하고 긴 거리를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사원내부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기도처라고 해 외관만 보고 발길을 돌렸다.
머리와 수염을 평생 깍지 않는다는 시크교 델리 사원도 그 웅장함이 여느곳 못지 않다고 해 방문 계획이었으나 여건상 보지 못해 아쉬웠다. 시크교는 이슬람교와 힌두교가 혼합됐다고 하는 생소한 종교지만 3000만명 정도의 신도를 보유한 세계 5번째 종교로 영향력이 크다.
델리 도심, 대통령궁 앞 널따란 광장 중심에 파리의 개선문 모양을 뜬 ‘인디아 게이트’가 자리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때 점령국 영국을 위해 싸우다가 죽은 7만여 명의 인도 병사들의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는 1921년에 세워진 42m의 대형 추모탑이다. 점령국 영국에 의해 만들어진 슬픈 역사의 기록물을 인도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식민지를 겪었던 인도의 영웅 마하트마 간디의 화장장(라지가트)과 추모관 박물관이 있는 간디 공원을 예정에 없이 방문하게 되는 행운을 가졌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국부로 추앙받는 세계적인 위인이자 비폭력 저항의 상징 마하트마 간디의 추모공원에 있는 간디 화장장은 비교적 넓은 잔디 공원에 있지만 맨발로 입장해야만 한다.
‘꺼지지 않은 촛불’이라고 불리는 작은 불이 1년 내내 그를 기리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인도를 방문하면 필히 이곳에 들러 간디 정신을 기리며 헌화하는 곳이다.
공원 내 간디의 생애를 정리해놓은 박물관과 추모관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의 분열을 막고자 힌두, 이슬람의 종교적 화해를 통한 인도 통일을 추구했음에도 결국 이슬람 극우파 청년의 흉탄에 의해 쓰러졌던 간디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본다.
붓다와 간디라는 두 명의 세계적인 성인을 배출한 나라로서, 인도인들의 자긍심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간디 추모관 회장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맡고 있다.
이곳에서 대우건설 정원주 회장이 한-인도 민간영역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인 최초 간디 국제상을 수여하는 영광을 지켜봤다.
갠지스강 모래 – 금강경의 항하사(恒河沙)
델리에서 새벽 4시50분 출발 예정이던 바라나시(Varanasi)행 항공기는 안개 문제로 인해 한참 지연된 오전 9시에 출발할 수 있었다. 인도를 찾으면 꼭 가봐야 한다고 지목되는 바라나시 갠지스강 가는 길은 협소해 조그만 승합차로 분승해 출발했다. 바라나시 지역 갠지스강에서 펼쳐지는 독특한 힌두교 종교행위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한번쯤 되돌아보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많은 이들이 찾는 것 같다.
천상에 있던 강을 힌두교 시바신이 인간들의 업보를 지우고 구제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보낸 것이 갠지스강이라고 해 힌두교도들이 성스럽게 생각하는 성지이다. 갠지스강에서 목욕도 하고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화장해서 뿌려주기도 하는 인도인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고 또 숭배의 대상이다.
배를 타고 갠지스상을 유람하면서 그동안 국내 방송 등을 통해 머릿속에 그려졌던 시체들이 떠다니고 각종 오염물질로 지저분할 것이라 짐작했다. 물은 탁했지만 생각과 달리 오염물이 떠다니거나 하지 않아 의아했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정화작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여전히 한쪽에는 시체를 강물에 씻고, 인접 다비장에서 화장한 화장재를 강에 뿌리고, 옆에선 애들이나 성인 할 것 없이 목욕하는 모습이다.
갠지스강은 중국과 인도 국경지대 히말라야 산맥 빙하에서 발원해 인도 북동부 지역을 통과해 뱅골만까지 흘러들어가는 전체 길이 2511㎞에 84만㎢의 넓은 유역을 형성하고 있는 세계 3대 강으로 꼽힌다. 기복이 적고 유속이 느려 물이 흐르는 동안 폭이 넓어진 강을 따라 비옥한 평원이 넓게 형성돼 5억에 가까운 인구들이 강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다.
중국어로는 갠지스를 항하(恒河)라고 한다. 억, 조, 경, 해 등을 아득히 넘어선 ‘항하사(恒河沙)’라는 숫자 단위가 있는데 ‘항하의 모래알의 갯수’만큼 끝없이 많다는 의미다. 한문 번역 불경에서 갠지스를 항하(恒河)라고 하는 데에서 비롯됐다.
힌두어 강가(Ganga)를 음역한 것이라고 한다. 항하사(恒河沙)라는 말이 불경에도 자주 언급된다. 부처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기원정사에서 설법했던 비교적 짧은 경전인 금강경에도 5번이나 언급 될 정도다.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수(항하사수)로 삼천대천세계(무한한 우주세계)를 가득 채울 만한 금은보화를 보시하더라도.”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만큼 많은 목숨을 바쳐 보시하더라도 사구계(금강경의 핵심사상)만이라도 독송하여 남에게 전달할 수 있으면 이 공덕이 그보다 훨씬 크다.”
부처가 10대 제자중 한 명인 ‘수보리’의 질문에 답하면서 “셀 수 없이 크고 많은 양”을 표현하고자 할 때 ‘갠지스강의 모래(항하사)’라는 말을 썼다.
갠지스강을 운행하던 배가 모래 사구에 순례단을 잠시 내려준다. 기복이 적어 유속이 느리다보니 넓은 모래사구가 형성돼 불경의 ‘항하사’를 밟아보는 기회를 갖게 됐다. 일행 중 몇 사람은 갠지스강 모래를 조그만 봉지에 담는다. 금강경의 항하사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부처는 신성한 강물(갠지스강)에 목욕함으로써 죄업이 소멸된다고 주장하는 브라만교 사제에게 “그렇다면 갠지스강에 속에 사는 물고기들이 인간보다 낫다는 말인가”라고 했다.
부처는 “성스러운 강물(갠지스강)로 목욕을 해도 악행을 저지르면 여전히 더럽지만, 계율을 지키며 살면 우물물로 목욕을 해도 깨끗한 자”라고 했다.
갠지스강 아랫물에 노을이 내려앉는다. 아침이 되면 갠지스강에도 여지없이 해가 솟을 것이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