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계, 尹 대통령 ‘12·3계엄’은 친위쿠데타
소리없는 軍 내부 반발… 야권에 제보 지속
‘국회를 구하자’ 장갑차 막아선 민주 국민들
신속한 국회의 대응… 여야 불문 ‘계엄 반대’
계엄군 헬기의 국회 진입 공군이 막았다
국가정보원 반발·경찰도 소극 대응으로 저지
취재부터 뉴스까지, 그 사이(메타·μετa) 행간을 다시 씁니다.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정치학에선 국가 행정 수반이 다른 국가기관의 기능을 방해·차단해 권력을 유지·강화 하려는 시도를 ‘친위쿠데타(self-coup)’라고 명한다. 정치학계에선 한국에서 지난 12월 3일 발생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건을 친위쿠데타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쿠데타를 연구하는 김남규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전형적인 친위쿠데타”라고 분석했다. 통상의 쿠데타는 군부나 정권 엘리트 등 집권하지 못한 측이 일으키는데, 이럴 경우 성공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반면 정권을 가진 측에서 실시하는 친위쿠테타의 경우 군과 경찰을 동원할 수 있는 기반이 있어 성공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한국의 경우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10월 자신의 3선 개헌을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사건 ‘10월 유신’이 대표적인 ‘친위쿠데타’로 분류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1979년 12월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한 사건(12·12사태)은 일반 ‘쿠데타’로 분류된다.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8월 대통령으로 당선됐는데, 이 기간(1979년 12월~1980년 8월)을 ‘내란 기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5·18민주화운동’은 이 기간(1980년 5월)에 발생했다. 내란죄는 현직 대통령도 소추되는 중범죄로, 공소시효가 없고 내란죄를 범한 죄인울 ‘역적(逆賊)’이라 부른다.
친위쿠데타는 성공률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미국 카네기멜런대와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공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45년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46차례의 친위 쿠데타 중 10번이 최근 10년 사이 발생했고 이런 친위 쿠데타의 성공률은 약 80%에 이른다. 실권을 장악 한 측이 벌이는 것이 친위쿠데타기 때문에 물리력 동원이 그만큼 쉽기에 성공률이 높다는 분석이다. AP통신은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건을 ‘친위쿠데타’라고 정의 내리면서, 비상계엄 선포가 6시간 만에 끝난 것을 두고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소리없는 軍 반발… 계엄 제보, 야당으로
계엄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최초로 불거져 나온 곳은 군 내부였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그 즉시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립 상황이 중지되고 계엄사령관을 필두로 치안과 사법의 주체가 전환된다. 국가가 군 체제로 재편되는 것이다. 과거 쿠데타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군 내부에선 ‘계엄’의 위험을 알리는 메시지가 꾸준히 외부로 유출됐다. 야당이 계엄을 미리 경고했던 것 역시 군 내부 제보가 정보의 근원이다. 이는 군 내부의 ‘계엄 저항’ 세력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AP통신은 한국의 계엄 해제 상황을 전하며 “계엄에 대해 군의 수용성이 친위쿠데타 성공의 가늠자”라고 분석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8월 21일 “저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계엄령 준비설의 정보를 입수해서 추미애 당시 대표에게 제보했던 사람 중 하나”라며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국방부 장관의 갑작스러운 교체, 대통령의 뜬금없는 반국가세력 발언으로 이어지는 최근 정권 흐름의 핵심은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계엄 준비’ 주장은 정부 여당으로부터 ‘계엄 괴담’으로 치부되며 역풍을 맞기도 했으나, 현재는 ‘김민석이 옳았다’는 평가가 다수다.
국가정보원 1차장 출신인 박선원 민주당 의원도 ‘계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왔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지난 12일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계엄이 발령이 되면 국회의장이 잡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계엄해제를 주재할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우원식 의장에게 숙소를 옮기시라는 조언과 공관에 별도 출입문을 만드시라는 얘기도 오갔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계엄령 선포 시기를 오는 12월 10일~15일 사이로 예상했는데 이보다 더 빠르게 선포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도 ’계엄 우려’가 있다고 계속 조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를 놓고 보면 군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계엄 제보’들이 야당에 접수됐고, 계엄을 해제 할 수 있는 의원 정족수(150석)를 넉넉히 넘긴 190석의 찬성으로 계엄을 해제 할 수 있었던 배경엔 ‘계엄만은 막아야 한다’는 군 내부의 문제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계엄 해제를 막기 위해 국회에 투입됐던 707특임대 등은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적극적인 지시를 이행치 않는 태업으로 맞섰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 계엄군은 시민들에 ‘죄송하다’는 말을 거푸 하고 국회를 빠져나가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계엄장갑차 막아선 국민… 유튜브 중계도 한 몫
계엄을 막아 낸 1등 공로자들은 결국 시민들이었다. 3일 밤 10시 23분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소식을 들은 국민들은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경찰은 시민들의 국회 진입을 막아섰다. 경찰 지휘부 혼선 탓에 시민들의 국회 진입은 통제와 허용이 반복됐다. 일부 시민들은 계엄군이 국회로 밀고들어온 계엄군의 장갑차를 몸으로 막아서는 장면도 포착됐고, 4일 새벽 1시께 국회가 본회의를 열고 ‘계엄해제안’을 통과시키자 국회 정문앞에서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당시 국회 경내로 진입하려는 시민들은 철문을 붙잡고 흔들며 “당장 열라”고 외쳤고, 4일 0시께엔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 수백명이 “비상계엄을 당장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국회 출입증을 가진 국회 보좌진들 역시 단시간 내 계엄 해제를 가능케 한 주역들이다. 보좌진들은 계엄군의 본청 진입 상황을 실시간으로 의원실과 기자들에게 공유하면서 대응 방안을 마련했고, 본회의장으로 계엄군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의자와 책상, 책장 등을 밀어 진입로를 봉쇄하는 기민함을 보이기도 했다. 다수 보좌진들은 당일 저녁 술자리에 참석한 인원들이 많았는데, 이 때문에 보좌진들 사이에선 ‘술을 안먹었으면 그렇게 용감하게 계엄군을 막진 못했을 것’이라는 우스개가 나돌기도 했다.
유튜브 역시 짧은 시간 많은 수의 국민들이 국회 앞으로 모이게 만든 동력이었다. 특히 제1야당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켰다. 이 대표는 “불법적이고 위헌적이며 반국민적인 계엄 선포”라며 “국민 여러분, 지금 국회로 와 달라. 지금은 실제 상황이다”며 지지자들을 독려했다. 이 대표는 폐쇄된 국회 출입문 대신 담장을 넘어 경내로 진입하는 모습까지 생중계했다. 이 대표의 유튜브 구독자수는 110만명이 넘는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12월 첫주(2~8일) 유튜브 모바일 앱(안드로이드+iOS 기준)의 시청시간은 4억6668만시간으로 전주 대비 4.3%(1983만시간) 늘어났다. 주간 1인당 평균 이용시간도 706.58분을 기록, 모바일인덱스가 해당 데이터를 제공해 온 2021년 3월 이후 가장 길었다. 주간 1인당 평균 이용시간이 700분대를 넘어선 것도 처음이다. 전 국민들이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한 손에 쥐고 유튜브를 주시하면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숙지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가 이렇게 신속?… 155분만에 ‘계엄해제’
국회의원들도 상상 이상의 기민함을 보였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불과 30여분만인 3일 오후 11시께 ‘계엄 포고령’이 선언됐다. 계엄사령부는 포고령을 통해 1항에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밝혔다. 국회의장은 ‘모든 국회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으로 와달라‘고 소집 명령을 내렸다.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은 계엄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얘기를 듣고 솔직히 살 떨렸다. 실제 상황이다. 빨리 집을 나와서 피신해야 된다”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계엄군들이 본청 정문을 에워싸고 있으면 나는 체포를 당하러 가는 건데 이렇게 가는 것이 맞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본청을 향해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비록 잡혀갈지라도 가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계엄 해제 상황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것은 여야 불문이었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한동훈 대표는 “계엄은 잘못된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국민의힘 의원들 가운데 본회의장에서 계엄해제 안건에 찬성을 표한 곽규택·김상욱·김성원·김용태·김재섭·김형동·박수민·박정하·박정훈·서범수·신성범·우재준·장동혁·정성국·정연욱·주진우·조경태·한지아 의원 등 18명이다. 대부분 친한동훈계 의원들이다. 이 과정에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계엄 해제 안건 부결을 위해 의원 모임 장소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로 공지했다. 추 원내대표는 ‘내란 동조’ 의혹을 받고 있는 상태다.
계엄 선포 1시간여가 지난 시점 부터 모든 시선은 국회 본회의장으로 쏠렸다. 본회의장에 과연 의결에 필요한 최소인원(150명)이 모였느냐 여부가 관건이었다. 그 사이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으로 가기 위해 국회 담을 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엔 우원식 국회의장도 있었다. 국회의장이 회의 주재를 위해 국회 담을 뛰어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4일 오전 0시30분께 각 방송사들은 국회 본회의장을 비췄다. 의석 수가 성원이 됐다는 보도도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우 의장은 4일 오전 0시58분께 ‘계엄해제안은 가결됐다’고 선언했다.
어떻게 불과 1시간여만에 국회의원 150명이 모였는지는 아직도 여러 해석들이 있다. 당초 국회는 예산안 처리를 10일로(기존 2일) 미뤄둔 상태였다. 그래서 평일이었던 3일 밤에는 다수 국회의원들이 서울 등 수도권 인근에 머물고 있었고, 이것은 국회의원 소집령에 따라 다수 의원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배경이 됐다. 국회 관계자는 “주말에 계엄이 선포가 됐더라면 신속 해제가 어려웠다. 지방에 내려가는 의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1시간여만에 150명 이상의 의원들을 본회의장으로 불러 모은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눈발 날씨… 하늘길 막히자 특전사 ‘지각’
‘계엄의 밤’ 하늘엔 옅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하늘은 유달리 구름으로 가득찼다. 한 특전사 간부는 “그 날 날씨가 별로 좋지가 않았다. 훈련 상황이었다면 그정도 날씨면 (헬기 운항이) 취소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조지호 경찰청장을 만나 제시했던 ‘계엄계획서’에는 3일 밤 10시 계엄 선포, 11시 국회 장악이라는 시간 계획이 적시 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계엄 선포는 당초 계획보다 23분 늦었고, 특전사 등 계엄군의 국회 최초 도착은 예정(밤 11시)보다 48분이나 늦었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시각이 늦어진 것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국무회의 개최에 필요한 국무위원 정족수 확보 등 과정이 계엄 선포 시각을 늦춘 것으로 이해된다. 특전사의 국회 도착이 늦어진 가장 유력한 원인은 현재까지론 하늘길이 막혔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계엄 선포 당시 군 헬기의 국회 진입을 막아선 것은 수도방위사령부의 한 대령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해당 대령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출동) 목적을 계속 물어도 답하지 않아 (헬기 진입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3일 밤 10시49분께 계엄군을 태운 헬기가 서울 공역으로 진입하려 할 때 진입 승인을 세 차례 보류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당초 계획보다 43분가량이 늦은 11시43분에서야 계엄군의 헬기는 서울 공역 안으로 처음 진입했다. 최초 승인 요청 시간 밤 10시49분보다 1시간 가까이 지체된 셈이다.
이 ‘1시간’은 계엄해제 상황을 만들기에 황금같은 시간이었다. 시민들은 국회로 운집했고, 국회의원들은 담장을 넘어 국회 본회의장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던 시각이 바로 이 한시간이다. 계엄군이 먼저 국회에 도착하냐,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먼저 국회에 도착하냐의 경쟁이었다. 만약 헬기가 계엄 계획대로 국회에 일찍 진입했다면 군이 더 빠르게 국회를 통제할 가능성도 있었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계엄군 헬기가 늦게 국회에 도착한 이유에 대해 “특전사는 헬기로 이동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공역 관리는 공군작전사령부에서 MCRC(중앙방공통제소)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며 “한강을 따라서 헬기가 내려오는데 용산을 경유해 비행하다 보면 P73 비행금지구역이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이걸(P73 비행금지구역) 열어줘야 (헬기가) 여의도로 들어오는데 해당 공역을 관리하는 공군에서 안 열어줬다. 그러다 보니 이걸 허가해 달라, 아니다로 40분께 지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北 직접타격 지시, 합참이 막아
헌법(77조)은 대통령의 계엄 선포 조건으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내걸고 있다. 윤 대통령이 3일 밤 계엄 선포와 함께 밝힌 계엄선포 이유는 그러나 야당에 의한 장관들에 대한 탄핵안 남발, 예산안 삭감 등만 포함돼 있다. 그래서 이번 계언 선포에 대해 ‘위헌적’이라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데, 계엄 해제 후 확인된 바에 따르면 북한을 직접 타격해 도발을 유도, 계엄 선포의 명분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는 정황들이 포착되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12·3 비상계엄 작전을 앞두고 김명수 합참의장에 ‘북한 오물풍선 원점타격’을 지시했으나, 김 의장이 이를 거부하자 폭언을 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보 받았다는 내용에 따르면 “김용현 전 장관이 오물풍선 원점타격 지시를 거부한 김 의장에게 퍼부었다는 폭언 관련한 당시 군 고위 관계자의 제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시점은 지난달 28일이다.
당시 북한은 32번째 오물풍선을 남측으로 날려보냈고, 이 소식을 들은 김 전 장관이 합참 전투통제실로 내려와 ‘경고 사격 후 원점을 타격하라’고 지시했고, 김 의장이 이를 거부하자 김 전 장관의 폭언이 이어졌다는 설명이었다. 김 의장은 “이제까지 국방부 대응 원칙과 다르다. 원점타격은 잘못하면 국지전으로 갈 수 있다. 민간에 피해가 갈 수도 있다”고 반대하자 김 전 장관은 “개념 없는 놈이네”라며 “쟤 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은 이승오 합참 작전본부장에게 다시 원점타격을 지시했으나, 이 역시 거부됐다.
통상의 경우 계엄이 선포되면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12·3 계엄에서는 계엄사령관으로 합참의장 대신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됐다. 이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김 의장에게 말한 “쟤 빼”가 계엄에서 빼라는 의미 아니겠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김 의장은 이번 계엄 사태 당시 지휘라인에서 배제돼 있었다. 다만 합참은 지난 9일 “북 오물풍선 살포 관련 국지전을 유도하기 위한 김 전 장관의 원점 타격 지시는 없었다”고 밝혔고, “11월 28일 오물풍선 살포 상황에 김 전 장관은 전투통제실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말안들은’ 국정원·소극 대응 경찰도 한 몫
윤 대통령은 대부분의 계엄 계획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중심으로 삼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군을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 등 필요 사항에 대한 계획은 다소 미흡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밀을 위해 극 소수의 인원만이 계엄대비 상황을 공유했고, 이 때문에 군 이외의 기관을 파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항들은 미흡해 결국 계엄이 선고 6시간만에 해제되게 된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예컨대 계엄 계획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납치 계획이었다.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은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한통 받은 뒤 여인형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홍 차장은 국회에 출석해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김민석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민주당),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유튜버 김어준, 김명수 전 대법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을 체포하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방첩사가 국정원에 요청한 것은 요인들의 위치 파악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군은 민간인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이 때문에 누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계엄군이 국정원에 긴급하게 협조 요청을 넣은 셈이다. 그러나 홍 차장은 관련 요청을 받은 뒤 “미친X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계엄군 측의 계속된 요구에도 홍 차장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조태용 국정원장은 홍 차장의 주장에 대해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정치인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전혀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국회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막아 ‘내란 동조’ 혐의를 받고 있는 경찰도 따져보면 나름대로의 태업으로 소극적인 저항을 한 흔적도 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당초 ‘계엄 상황을 tv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으나, 실제로는 계엄 선포 3시간 전 윤 대통령을 서울 안가에서 만나 지시 명령서를 받은 것으로 새롭게 드러났다. 조 청장이 받은 지시 사항은 ▷(체포조) 안보수사관 100명 지원 ▷정치인 등 주요인사 15명 위치 정보 확인 ▷선관위 3곳 군 병력 배치 관련 경비인력 지원 등 3가지를 요구했다.
조 청장은 선관위에 대한 경찰 인력 지원은 불상사 대비 차원에서 경기남부경찰청장에게 지시했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부당한 지휘로 판단해 불이행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치인들에 대한 위치정보는 계엄군에 넘겨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