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르헨티나의 항만 도시 로사리오 지역 유명 TV뉴스 앵커 후안 페드로 알레아르트가 지난주 '카날3'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 그가 덧붙인 말에 아르헨티나는 발칵 뒤집혔다. 그것은 충격적인 말이었다. "저는 가족들에게서 아동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라는 폭탄 발언이었다.
아르헨티나의 뉴스 진행자가 생방송 도중 과거 성폭력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아동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해 주목받고 있다.
앵커 알레아르트는 성폭력 가해자로 자신의 아버지와 삼촌을 지목했다. 그는 30여분간 생방송 시간 중 대부분을 할애해 여섯 살 때부터 시작된 성적 학대와 폭력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알레아르트는 이 과정에서 중간중간 눈물을 보였다. 감정이 차오르는 듯 말을 몇 번 멈추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양성, 즉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판정을 받은 후 여동생에게도 성적 학대를 했다고도 폭로했다.
알레아르트는 "지금 모두 성인이 된 다른 피해자도 여럿 있다"며 "피해를 봤다는 게 되레 부끄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치유의 길은 입 밖으로 (피해 사실을)내뱉고 고발하는 것임을 믿는다"고 했다.
그는 이 사건을 공론화하기 전 경찰에 아버지와 삼촌을 고소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알레아르트의 부친은 피소된 사실을 알게 된 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사리오국립대 교수였던 삼촌도 방송 직후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라나시온은 전했다. 클라린은 피해자로 언급된 이들 중 일부는 "알레아르트가 남의 사생활을 멋대로 공개했다"며 항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만 현지에서는 대체로 알레아르트를 응원하는 한편, 숨기고 있던 자신의 과거 피해 사실을 알리고자 시민 단체 등에 도움을 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아동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입법화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 형법에는 성폭력 범죄 공소시효를 12년으로 규정 중이다. 아동 성폭력의 경우 2015년 '피해자 시간 존중 법'으로 알려진 법률 개정을 통해 피해자가 고소한 시점부터 공소시효 시기를 계산하는 것으로 정했다. 하지만 소급 적용 여부에 대한 규정이 미비해 개별 사건마다 법관의 판단이 다른 상황이다.
알레아르트는 방송 도중 "오래된 잔혹한 행위 앞에서 진실은 언제나 승리한다"며 의원들에게 아동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직접 주장키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