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영의 sound nomad] 밥 딜런 사수하기-청각공간을 문화재로 보존하다
‘Self Portrait’를 찰리 다니엘스와 콜롬비아 스튜디오 A에서 녹음하고 있는 밥 딜런(맨 왼쪽)
[김성영의 sound nomad] 밥 딜런 사수하기-청각공간을 문화재로 보존하다

필자가 한참 영화에 관심을 가지던 사춘기 중학생 시절, ‘인디아나 존스 2편: 마궁의 사원’이 개봉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영등포 연흥 극장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 마침내 첫 오프닝 신을 바라봤을 때의 떨림은 여전히 생생하다.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는 인디 박사는 영민하고 인기 많은 젠틀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총탄을 피하며 유적지에서 악의 세력을 무찌른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히어로물의 클리셰를 담은 영화다. 처음 경험한 할리우드 영화는 사춘기 중학생에게 그저 경이로웠다. 특히 역사적인 소재로 서사를 풀어냈다는 매력은 오래도록 나의 뇌리에 그 영화를 남겼다.

사람들이 여전히 쥐라기 공원과 같이 역사 그리고 시간 여행을 다루는 스토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과거의 흔적들을 다시 재회하게끔 해주는 고고학의 매력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를 증명하듯 디지털 유적에 관한 관심 역시 크게 증가하며 박물관을 포함한 다수의 기관들이 디지털 복원 전시에 공을 기울이고 있다. 2003년 유네스코가 디지털 유산 보존 관련 헌장을 제정한 이후, 디지털 유적 관련 연구는 이전의 전통적인 사회과학의 통념을 넘어 컴퓨터 과학과의 융합을 꾀하는 대표적인 융복합 분야의 선두주자로 자리잡게 됐다. 특히 최근 ‘AI’와 ‘메타버스’라는 두 핵심 기술을 더해 디지털 유적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이 소개되고 있다.

소리는 어떨까? 고고학 분야 중 하나인 고고 음향학 (archeoacoustics)은 유적의 음향적 요인들이 당시 인간의 생활 및 문화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전 칼럼에서 필자는 공간의 힘과 공간의 청각적 요소가 사람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고고 음향학자들은 이 청각 공간의 힘이 어떻게 한 사회의 특정 문화행동과 결부돼 왔는지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사라진 소리 및 음향 유산들을 디지털로 복원 및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가하고 있다. 고고 음향학자는 소리와 음향 유산을 찾아 모험을 즐기는 인디아나 존스인 셈이다.

이러한 음향 인디아나 박사들의 연구가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는 일이나 심지어 그들의 존재조차 대중에 노출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2019년 4월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파리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며 만인이 사랑하는 건축물인 ‘우리의 귀부인’이 원인 모를 화재로 인해 첨탑을 포함한 일부가 불타 없어지고 있는 가히 충격적인 파손의 현장이 전 세계로 생중계 되었다. 에스메랄다와 콰지모도의 아름답고도 서글픈 사랑의 배경이 화재로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1403년 이후로 대성당을 채워왔던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도 더 이상 듣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필자에게는 ‘언젠간 현장에 가서 실황으로 꼭 들어보리라’라고 마음먹었던 버킷리스트의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마스터 오르간은 대성당 전체 파손에 비해서 그다지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르간을 감싸고 있던 공간은 사라졌다. 과연 사라진 대성당의 잔해 중 화재를 피해 살아남은 파이프오르간의 소리가 노트르담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라고 할 수 있을까?

다행히도 소르본 대학에서 음향 측정과 분석을 연구하는 브라이언 캐츠 (Brian Katz) 교수는 2015년 노트르담 대성당의 음향적 특성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 측정 데이터가 없었다면 아마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음향 유산은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다시는 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화재 전 음향 측정 데이터와 화재 후 데이터를 비교해 화재로 인해 발생한 손실이 어떠한 부분에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되어 논문으로 소개됐고 동시에 노트르담의 복원 공사가 시각적 가치를 복원하는 것을 넘어서 보이지 않은 청각 도메인에서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도록 하는 귀한 자료가 됐다.

캐츠 교수는 물리적 복원 이외에도 디지털 복원을 통해서 누구라도 노트르담 성당의 음향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했고, 이러한 디지털 경험을 통해서 음향 문화유산의 가치를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그의 노력의 결실로 일 년 전 2023년 3월 3일, 노트르담의 소리에 관한 내용이 뉴욕타임스에 소개됐다.

무형 유산의 가치와 보존에 대한 노력은 유네스코를 통해 이미 오래전부터 이뤄지고 있었으나, 노트르담 성당의 음향 복원 프로젝트는 특히 음향 유산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를 계기로 소실의 위험성이 있는 음향 유산의 보존 및 디지털 경험에 관한 노력들이 다방면으로 이뤄졌다.

소실의 위험은 화재나 지진 등과 같은 환경적 요소도 있으나, 경제적인 이유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일본 니혼 대학교에 있었던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던 카잘스 홀은 슈 박스 형태의 공연장으로 연주자들이 특히 선호하는 따뜻한 음향으로 저명한 공간이다. 하지만 공연장 운영을 후원하던 회사의 자금 상황 악화로 인해 2010년 문을 닫고 현재 도서관 혹은 기타 부속 시설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필자가 일하던 야마하는 동경예술대학과 힘을 합쳐 이 아름다운 공연장이 문을 닫기 전 음향 데이터를 정밀 측정해 놓았고, 디지털로 가상 카잘스 홀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다행히 니혼 대학교는 2023년에 이 카잘스 홀의 복원을 결정했고, 오는 2026년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2010년 측정했던 음향 데이터를 통해 새로 개장하는 카잘스 홀이 이전의 아름다운 소리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미래의 가치를 담는 아름다운 홀로 재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러한 경제적 이유로 인한 공간의 소실은 비단 일본의 일만이 아니다. 컨트리 음악의 성지라고 여겨지는 미국 내쉬빌에는 음악 녹음 및 프로덕션 회사들이 모여서 하나의 구역을 만든 Music Row가 있다. 400여개 이상의 음악관련 회사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엘비스 프레슬리부터 테일러 스위프트까지 미국의 음악을 대표하는 수많은 뮤지션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 들어 있다.

[김성영의 sound nomad] 밥 딜런 사수하기-청각공간을 문화재로 보존하다
콜롬비아 스튜디오 A의 현재 모습 [2019년 필자 촬영]

그러나 미국 역사 보존 기금에 의해 역사적으로 보존해야 할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곳 마저 경제적 위협을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내슈빌의 발전하는 경제로 인해 음악 스튜디오를 유지하는 것보다 그 장소를 허물고 고층 아파트를 올리는 것이 훨씬 더 큰 수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밥 딜런이 그의 음악을 구상하고 녹음했던 콜럼비아 스튜디오 A는 내슈빌 사립 벨몬트 대학이 구입하여 다행히도 존폐의 위험으로부터 가까스로 멀어지게 되었다. 음향 유산 소실 위험과 디지털 보존에 관심이 있던 필자와 벨몬트 대학의 고도윤 교수는 미국 인문학 기금의 지원을 받아 내쉬빌 Music Row의 콜럼비아 스튜디오 A를 측정하고 보존했다.

이제 우리가 사랑하는 밥 딜런의 음악이 태동했던 이 스튜디오의 음향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언제 어느 때나 복원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미래에 가상으로 노래하는 밥 딜런을 이 스튜디오로 소환해 새로운 앨범을 만드는 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AI 기술을 통한 목소리 복원은 이미 많이 발전했지만, 그동안 발전이 미미했던 뮤지션의 실제 녹음 공간까지 이제 복원하고 디지털로 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음향 복원 및 디지털화를 위한 많은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경주의 성덕대왕 신종을 디지털로 보관하고 분석하는 프로젝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된 바 있다.

하지만 많은 문화재들이 시각 중심의 복원에만 집중되어 청각 유산에 그다지 큰 비중을 들이지 않고 있는 것 같아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음향 문화유산을 발굴하려는 젊은 인디아나 존스들을 학교에서 만나고 있다는 것에 나름 위로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