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재해보상법 시행 5년
2018~2023년 과로사 공무원 137명
코로나19 기간 급증
과도한 업무 MZ세대 기피로 이어져
“공무원 사망 줄일 실질적 대책 필요”
[헤럴드경제=안효정·박혜원·박지영 기자] #.지난해 5월 전남 전주시 행정복지센터 행정민원팀장 A(사망 당시 53세)씨의 사망 사고가 있었다. 이틀간 진행된 지방선거 사전 투표 업무를 총괄했던 A씨는 사전투표 첫날에는 오전 4시 30분부터 오후 7시 40분까지, 둘째날에는 오전 5시부터 오후 9시 15분까지 일했다. 첫날 구토 증세를 보였던 A씨는 사전 투표가 끝난 다음날 오전 병원으로 옮겨졌고 결국 뇌출혈로 사망했다. A씨는 과로사로 인한 순직(공무상 재해)을 인정받았다.
#.인천 부평구 보건소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B(당시 35살)씨는 지난 2021년 9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20년 3월 공무원이 된 지 약 1년 6개월 만이었다. 천씨가 그동안 초과근무한 시간은 1202시간이었다. 특히 사망 직전 2달은 월 평균 116시간 이상 일했다. 밤 10시 이후 퇴근한 날도 28일에 달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밤 퇴근을 했던 셈이다. B씨의 극단적 선택 원인으로 과도한 업무가 꼽혔고 B씨는 순직 처리됐다.
오는 21일은 공무원재해보상법이 시행된지 5년째 되는 날이다. 이 법은 공무원이 일하다 다치거나 죽는 상황을 예방하고, 유가족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2023년이 된 지금, 변화는 없었다. 시행 직후 주춤한 듯한 과로사 공무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다시 급증했다. 업무 부담과 직장 내 갈등 등으로 극단 선택을 하는 공무원 또한 여전하다. 과도한 업무, 공무원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결국 최근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의 공무원 기피 현상을 야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로 사망 공무원 5년간 137명
20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 받은 ‘공무원 직종별 과로사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8년 10월부터 지난 6월까지 5년 동안 과로사 한 공무원 수는 137명에 달했다. 인사혁신처는 뇌심혈관계 질병으로 인한 사망 사례를 과로사로 집계했다.
시기별로 살펴보면 ▷2018년 10~12월 8명 ▷2019년 31명 ▷2020년 18명 ▷2021년 30명 ▷2022년 43명 ▷2023년 1~6월 7명이다. 과로사를 신청한 후 인사혁신처로부터 승인을 받은 사례만을 종합한 수치로, 실제 과로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사례는 이보다 더 많다. 같은 기간 과로사 인정을 신청한 건수는 212명에 달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공무원도 증가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자살 순직자는 ▷2018년 10~12월 0명 ▷2019년 4명 ▷2020년 7명 ▷2020년 10명 ▷2022년 22명 ▷2023년 1~6월 5명이다. 역시 코로나19 기간 동안 급증했다가 올해 들어 다소 주춤한 모습이다.
공무원의 정신 건강에는 이미 빨간 불이 켜진지 오래다. 2018년 5907명이었던 공무원 마음건강센터 개인상담 이용자가 올해는(8월 기준) 4873명으로 늘었다. 증가세를 감안하면 5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2018년부터 지난 8월까지 개인상담 또는 진단·검사를 받은 공무원은 8만 5768명에 달했다. 이용 건수 기준으로는 무려 18만 1157건이다.
박중배 전국공무원노조 대변인은 “공무원 재해법이 시행됐음에도 공무원들은 크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신입 공무원의 경우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이 됐는데 야근과 과로, 악성 민원 등이 많으니 감당 못하고 마음의 병을 앓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그만두는 공무원이 많아 인력 부족이 심해지는데 충원은 되지 않으니 업무 과중 문제가 더욱 심해진다”고 말했다.
공무원 지원자수 7년 만에 반토막…“과로에 MZ 기피”
공무원의 잇따른 죽음은 공무원을 기피하는 현상을 낳고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며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업무의 종류와 중요도는 증가하지만 연봉 등 금전적 보상은 낮고,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초과 근무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이미지가 퍼지면서 MZ세대 공무원 지원자수가 급감하는 추세다.
특히 업무 과중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공무원 인기 급감 이유로 꼽는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MZ세대에게 결정적인 단점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민원으로 인한 감정 노동, 신입일수록 부과되는 업무량 등 공무원직의 어려움이 늘어나다 보니 MZ세대 사이에서 공무원 선호도가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희생이 강요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MZ세대의 공무원 탈출을 부추긴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을 ‘공복(公僕)’으로 보고 ‘공무원이라면 당연히 일이 힘들어도 감수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여전히 강하다”며 “MZ세대에게 이런 압력이 부담으로 다가와 공무원을 멀리 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2023년 9급, 7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공채) 원서 접수 인원은 각각 12만 1526명과 2만 9086명이다. 2017년과 비교하면 9급 공무원은 46.8%, 7급 공무원은 66.26% 감소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무원직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이 업무상 받는 어려움을 전문가나 심리 상담 지원을 통해 잘 풀어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과로사 등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인 교수는 “공무원도 노동자이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 등 기본적인 노동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공무원의 사업주에 해당하는 게 정부인 만큼 정부가 공무원들이 업무를 하면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살피고 이를 해소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권인숙 의원은 “공무원재해통과법 5년 지났는데도 전체 공무원 과로사, 자살이 줄어들지 않고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