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주요 은행의 수신금리 인하 속도가 빨라지며 ‘쥐꼬리’ 금리에 실망한 소비자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금리 인하가 더 이뤄지기 전에 하루빨리 상품에 가입하려는 ‘막차’ 수요는 한 달 새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최근 비상계엄령 사태에 따라 미국 등으로 투자자금 이탈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그나마 자금을 모으던 은행마저 동력을 잃으며 ‘머니무브(자금이동)’ 현상이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예금금리 인하 속도↑…정기예금 2%대 진입 목전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11월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948조2201억원으로 한 달 새 6조2068억원(0.65%) 늘었다. 그러나 11월 중 증가폭은 10월 증가폭(11조5420억원)과 비교해 5조3352억원(46%)가량 감소하면서 규모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적금도 마찬가지다. 5대 은행의 11월 정기적금 잔액은 39조5405억원으로 한 달 새 6229억원 늘었다. 그러나 10월(9102억원)과 비교해서는 31.5% 감소했다. 5대 은행 정기적금 증가액은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매월 1조원을 넘어섰지만, 지난 10월을 기점으로 점차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예금금리 인하가 계속되는 가운데, 은행 예·적금에는 되레 자금이 쏠리기 시작했다. 기준금리 인하가 예견되며 조금이라도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하려는 수요가 몰린 영향이다. 그러나 지난달을 기점으로 금리 인하 속도가 빨라지며, ‘막차’ 수요 또한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 10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약 3년 2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하(0.25%포인트)를 시행한 바 있다. 한은은 이어진 11월 금통위에서도 추가 기준금리 인하(0.25%포인트)를 결정했다. 이에 시장금리가 하락 추세를 이어가자, 은행들은 각종 예·적금 상품 금리를 하향 조정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최근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기준 5대 은행의 주요 정기예금 상품 금리(1년 만기)는 3.2~3.22%로 불과 일주일 전인 11월 말(3.35~3.42%)와 비교해 상·하단 각각 0.2%포인트, 0.15%포인트 줄었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1년 만기 예금금리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금리는 5일 기준 2.92%로 한 달 만에 0.4%포인트 감소했다. 이번주 들어서는 2.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예금도 증시도 매력 없어” 美주식, 코인으로 자금 이탈
일각에서는 예·적금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이 사그라들며, 국내 투자 수요가 미국 주식 등 해외로 이탈하는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뒤 국내 정세가 급속도로 불안정해지면서, 국내 증시는 연일 하락폭을 나타냈다. 6일에는 개인 투자자들의 투매가 이어지며 코스피 지수가 장중 2400선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다.
반면 미국 주식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 대선 승리 이후 거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코스피 지수가 3.92% 오르는 동안 나스닥지수는 6.91% 상승했다. 비상계엄령 사태가 벌어진 직후부터는 이같은 탈동조화 현상이 더 거세지고 있다. 지난 4일과 5일, 이틀간 코스피는 2.32% 떨어졌다. 반면 한국 증시와 통상 흐름을 같이 하는 뉴욕증시 나스닥지수는 4일 0.4%, 5일 1.3%의 상승률을 보였다
이미 자금 이탈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592조6669억원으로 전월(613조3937억원)과 비교해 20조원 넘게 줄었다. 예금금리가 0%대에 수렴해 사실상 ‘무원가성 예금’으로 불리는 요구불예금은 여타 투자처의 수요에 따른 잔액 변동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정기 예·적금까지 금리 인하로 수요가 떨어지며, 자금 이탈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 시중은행 PB센터 관계자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고객들에 섣불리 국내 증시나 이를 바탕으로 한 파생상품에 가입하라고 할 수는 없는 처지”라며 “그나마 예금 등에는 꾸준히 투자 수요가 있었는데, 이제는 고객들도 코인이나 미국 주식, 금 등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