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15대1 경쟁률 뚫고 ‘꿈의 무대’ 입성…국립창극단 신입단원 삼인방
국립창극단, 5년 만에 신입단원 선발
15대 1 경쟁률 뚫은 김수인ㆍ김우정ㆍ왕윤정
“제비뽑기로 실기ㆍ심사위원 앞에서 토론 압박”
‘꿈의 직장’ 입성…“사명감과 책임감 커져”

‘나무, 물고기, 달’로 떨리는 데뷔 무대
“제발, 연습한 만큼만 나왔으면…”

국립창극단이 5년 만에 신입 단원을 선발했다. 지난해 8월 채용 공고가 나가자 몰린 인원은 45명.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김우정, 왕윤정, 김수인(왼쪽부터)이 새 식구가 됐다. 세 사람은 오는 11일 시작되는 ‘나무, 물고기, 달’을 통해 국립창극단 정단원으로의 데뷔 무대를 갖는다. [국립창극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거문고가 만드는 리듬을 타고 논다는 걸 염두만 해주세요. 지금 정말 좋습니다.” 국립창극단 신작 ‘나무, 물고기, 달’의 리허설 현장. 신입단원 김수인이 원형 무대 중앙에서 연기와 소리를 마치자, 이자람 음악감독의 격려와 칭찬이 오갔다. 김수인의 역할은 물고기. “손짓, 몸짓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배요섭) 연출님께서 스스로 동작을 연구하도록 길을 만들어주셨어요.” 손은 지느러미가 돼 허공을 유영했고, 시선은 텅 빈 객석 구석구석을 맞췄다. 데뷔 무대를 앞둔 창극단 막내의 연습을 지켜보며, 선배들의 격려도 이어졌다.

국립창극단이 5년 만에 신입 단원을 선발했다. 국립창극단의 벽은 높다. 단원 선발도 드문 데다 과정도 까다롭다. 지난해 8월 채용 공고가 나가자 몰린 인원은 45명.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단 세 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국립창극단의 새 식구가 된 김수인(26), 김우정(26), 왕윤정(31)을 만나 국립창극단 입성기를 들어봤다.

▶ ‘꿈의 직장’ 입성기…각별한 인연으로 키운 도전=국립창극단은 소리꾼과 창극 배우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겐 ‘꿈의 직장’과 다름없다. “소리를 하는 사람, 특히 극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국립창극단을 꿈꿀 거예요. 쉽게 볼 수 없는 대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왕윤정) 당대 최고의 국악인들이 우리 문화예술의 꽃을 피웠고, 박애리 남상일 김준수 등 전통 문화계에 무수히 많은 스타들을 배출해왔다.

국립창극단의 단원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서류심사 이후 소리와 연기, 무용 등 실기전형이 이어지고, 면접 전형에선 토론까지 진행한다. 이 과정이 완전히 ‘복불복’이다. 물론 실력은 기본이다. 연기 시험의 경우 선택지는 사전에 공지되지만, 제비뽑기를 통해 판소리 4바탕(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중 하나를 고른다. 무용에 필요한 장단(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등)도 뽑기로 정한다. “소품을 사용할 수 없어 맨손으로 즉흥춤을 춰요.”(김우정) “어느 장단이든 소화할 수 있는 걸 보는 것 같더라고요.” (김수인)

토론은 올해 처음 생겼다. “15분 전에 주제를 알려줘요.” (김우정) 현재 문화예술계의 이슈 중 하나를 다뤘으나, 세 사람 모두 의외의 ‘주제’였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 연출가와의 협업 관련해 준비했는데, 완전히 빗나갔어요. (웃음)”(김수인) 최종 면접 현장에서의 아찔한 기억이 세 사람의 생생한 표정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다. “찬성, 반대, 사회자가 있는데 누가 어떤 역할을 할지 모르는 데다 심사위원들이 앞에 있으니 압박이 심하더라고요.”(왕윤정, 김수인)

판소리 명창 왕기철의 딸인 왕윤정은 아버지에 이어 2대째 국립창극단 단원이 됐다. 그는 “창극단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꿈꾸는 곳”이라며 “정단원이 되니 사명감과 책인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 제공]

신입 단원들과 국립창극단의 인연은 각별하다. 저마다 한 번씩 창극단과 연이 닿았다. ‘창극 배우’로의 꿈을 키운 계기이기도 하다.

동기 중 첫째인 왕윤정은 판소리 명창 왕기철의 딸이다. 왕윤정은 14년간 창극단에 몸담은 아버지에 이어 2대에 걸쳐 국립창극단 단원이 됐다. 첫 만남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어린 심청 역할이었다. 20년이 지난 창극단 실기 현장에서도 왕윤정은 ‘심청가’에서 심봉사의 아내가 죽는 장면을 선보였다. “2012년부터 3년간 창극단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됐어요. 그때 스릴러 창극 등 다양한 장르를 하면서 작품의 경험을 쌓게 됐어요. 정단원이 되고 나니 인턴 때와는 다른 사명감과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김우정은 지난해 국립극장 70주년 기념작으로 올린 ‘춘향’ 오디션에 합격해 객원 단원으로 호흡을 맞췄다. 풋풋하고 당찬 소녀 춘향이 김우정의 얼굴을 통해 새롭게 그려졌다. 당시 함께 호흡 한 이소연 김준수가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우정은 자유 소리에선 주종목인 ‘춘향가’ 중 ‘이별가’를 선보였다고 한다. “막연한 바람이 현실이 되니, 객원 단원으로 무대에 섰을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고 있어요.”

김수인에게도 국립창극단과 남모르는 인연이 있었다. 2014년이던 대학교 1학년 재학 시절, 창극 ‘배비장전’에 객원 단원으로 합류할 예정이었다. 학교에서 자랑도 많이 했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공연이 취소됐어요. 한 달간 렌트카를 빌렸는데 연습은 한 번 밖에 못했어요.” 당시의 ‘망연자실’은 7년 만에 회복됐다. 실기에선 재기발랄한 ‘수궁가’의 한 대목을 선보였다. “꿈꿔왔던 곳이라 제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국립창극단에서의 공연들이 의식있게 다가오는 요즘이에요.”

지난해 국립극장 70주년 기념작으로 올린 ‘춘향’ 오디션에 합격해 객원 단원으로 호흡을 맞춘 김우정도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정단원이 됐다. 김우정은 “막연한 바람이 현실이 되니, 객원 단원으로 무대에 섰을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라며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 제공]

▶ 설레는 첫 무대…“제발, 연습한 만큼만 나왔으면”=입단 이후 두 달. 가장 가까이에서 서로의 모습을 지켜본 세 사람은 매일이 흐뭇하고 뿌듯하다. “수인이와 우정이가 저보다 어려서인지 어미새의 마음으로 보고 있어요. 점점 프로가 돼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어요.(웃음)”(왕윤정)

세 사람은 올해 국립창극단의 신작 ‘나무, 물고기, 달’(3월 11~21일·국립극장 하늘극장)로 데뷔전을 치른다. 정단원으로 처음 서는 무대다. 한국, 중국, 인도의 설화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소원나무로 향하는 인물들의 여정을 그린다. “자기 안의 행복”과 “진짜 나의 모습”을 찾는다는 주제를 담았다. 매일 대여섯 시간씩 연습에 매진하는 현재, 세 사람의 얼굴엔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돈다.

“아직 제 안에 불안하고 온전치 못한 부분이 있지만, 무대에 오르면 잘 하고 싶고 눈이 돌아가고 싶어요.”(김수인) “지금은 다른 것보다 딱 연습한 만큼만 나왔으면 좋겠어요. 음이탈만 안 나면 좋겠어요.”(왕윤정) “맞아요, 맞아요.” 김우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누구보다 공감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제 자신이 가장 먼저 알거든요.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왕윤정) 연습을 마치고 귀가하면 쓰러져 잠들곤 한다. “집에서는 무조건 묵언수행이에요.”(김수인) “집에서도 말을 하면 에너지가 방전되니까요.”(김우정)

무대 경험이 쌓이고, 연습이 길어질수록 세 사람이 창극에 가지는 애착도 커진다. 소리꾼이자 창극 배우,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도 활발히 해온 김우정은 “여러 시도 중에서도 극을 했을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한다. “다양한 예술세계가 있지만, 극의 한 배역을 맡아 연기할 때 못 빠져나올 정도로 행복하고, 살아있다고 느끼게 되더라고요.”

인턴 생활을 통해 작품 경험이 많은 왕윤정은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작품이라는 데에 큰 의미를 뒀다. “판소리는 모노드라마 같은 혼자만의 연극인데, 그것을 펼쳐 누군가와 함께 호흡하면서 다른 색채를 입혀가는 매력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나 혼자만의 예술이 아닌 함께 하는 즐거움 안에서 다양한 모습의 저를 가져보고 싶었어요.” (왕윤정)

어머니인 명창 김선이의 뒤를 잇는 ‘2세 소리꾼’ 김수인은 소리, 무용, 연기를 겸하는 종합예술인 창극을 하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다”며 “행동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의식있게 다가온다”고 했다. [국립창극단 제공]

어머니인 명창 김선이를 잇는 2세 소리꾼이지만, 김수인은 소리보다는 무용가로의 꿈을 꿨다고 한다. “복학하면서 달라졌어요. 나와 안 맞는 예술이라 생각해 소리를 정성 들여 해보지 않았던 것이 안일하고 건방진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춤과 노래가 융화된 창극이 제가 하고 싶은 종합예술이 더라고요. 모든 걸 한번에 할 수 있는 예술을 하게 된 지금이 너무나 행복해요.”

미래의 국립창극단 간판스타이자, 창극계의 ‘아이돌’이 될 세 사람은 크고 작은 목표를 품고 첫발을 딛고 있다. 저마다의 어깨 위로 감당해야 할 무게가 묵직하고, 걸음마다 새겨진 다짐들이 굳건하다. 그러면서도 경쾌한 템포를 잃지 않는다.

“창극단 합격 소식을 듣고 아버지께서 눈물을 보이셨어요.” 호탕하게 웃으며, 솔직한 입담을 꺼내놓던 왕윤정의 눈도 금세 불거졌다. “그동안 묵묵히 지켜만 보셨는데 굉장히 좋으셨나 봐요. 아버지는 어렵게 소리를 해오셨어요. 제가 아버지가 하신 것만큼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이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느 작품을 만나도 제가 가진 향기를 풍길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왕윤정)

“제겐 어머니가 뮤즈거든요. 어려운 환경에서도 딸의 일이라면 아낌없이 뒷바라지 해주셨어요. 이제 다시 기초적인 것부터 다져가려고요. 세월의 변화에도 작품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탄탄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김우정)

“합격 통지를 받고 입단 전부터 걱정을 많이 했어요. 막내인 탓에 더디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많은 선생님들이 쌓아온 국립창극단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연습하고 공부하려고요. 그래야 수명이 길어질 거라 생각해요. ”(김수인)

sh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