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황혜진 기자] ‘○○○님’ 처럼 직급 단순화에 나서고 있는 산업계와 달리, 은행권은 ‘계장, 주임, 부부장’ 등 다른 업종에서는 찾기 힘든 세분화된 직위ㆍ직급이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연공서열, 호봉제 기반의 임금구조 등으로 생긴 인사적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은 직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결정 과정이 오래 걸리고, 막대한 인건비 부담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은행권 내부에서도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응팔 시대 그대로의 은행 조직문화①] 계장님, 주임님, 부부장님…대기업과 거꾸로 가는 은행 직급체계-copy(o)3

‘직급쪼개기’로 유달리 긴 직위체계= 국내 은행의 직급체계는 연공서열형으로 짜여 있다.

입행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한 직급씩 승진하는 구조다. 직위(직급)체계도 복잡하다.

대다수 은행이 창구영업직군(텔러)과 일반직군으로 나누고 그 안에 많게는 10~12개 직위를 두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들의 직위체계(일반직 기준)는 대개 ‘주임-계장-대리-과장-차장-부지점장(부부장)-지점장(부장,센터장)-본부장-임원 체계로 구성된다.

직책으로 따지면 ‘주임-계장-대리’는 행원급,‘과장-차장’은 책임자급, 지점에선 ‘부지점장’ 본사에선 부부장이 관리자급이다. ‘지점장’은 지점의 총책임을 맡은 점포장으로 부서장급이다.

이는 최근 직무 단순화를 꾀하고 있는 다른 산업계와 뚜렷히 구분된다.

삼성은 최근 인사제도 개편을 통해 사원-선임-책임-수석 등으로 직책을 단순화했다.

직급으로 구분해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신한은행은 리테일서비스(RS)직군과 일반직군으로 나눠 두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013년 말 텔러직과 일반직을 단일 직군으로 통합해 L0ㆍL1ㆍ L2ㆍ L3ㆍ L4ㆍ등 5개 직급(세부적으로는 9개 직급)을 마련했다.

가장 복잡한 곳은 KEB하나은행과 합친 옛 외환은행이다. 계장(5B)부터 지점장(1급)까지 10개나 된다.

[응팔 시대 그대로의 은행 조직문화①] 계장님, 주임님, 부부장님…대기업과 거꾸로 가는 은행 직급체계-copy(o)3

의사결정 지연되고 인거비 부담 가중= 은행 직급 체계가 복잡한 이유는 인사적체 때문이다.

1980년대 입사한 수만명의 은행 부장급이 ‘부서의 장’이 될 수 없게 되자 ‘부부장’ 직급을 만들거나 부장급 안에서도 등급을 세부적으로 나누게 된 것이다.

본래 은행의 전통적인 직위(직급) 단계는 크게 행원-지점장대리-차장-지점장 등 4단계에 불과했다.

근속연수에 따라 승진이 이뤄지는 연공서열문화도 직위가 늘어난 이유 중 하나다.

우리은행이 지난해 임금피크(현재 만 55세)에 도달한 직원 중 명예승진을 시켜 지점장대우와 부지점장대우를 추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연봉이 오르는 호봉제와 함께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하는 인사문화는 고임금 장기근속자증가로 이어졌다.

직급과 무관하게 호봉이 오르면서 인사적체는 더욱 심화됐다.

[응팔 시대 그대로의 은행 조직문화①] 계장님, 주임님, 부부장님…대기업과 거꾸로 가는 은행 직급체계-copy(o)3

만년과장, 만년차장은 꾸준히 늘었다.

은행들은 복잡한 직급ㆍ호봉체계가 저성과자를 양산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은행들은 지적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직급ㆍ성과와 무관하게 급여가 오르는 구조이다 보니 ‘만년과장’ ‘만년차장’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ㆍ부장이 넘쳐나면서 은행권 인력구조는 역피라미드 또는 항아리형으로 굳어진지 오래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회사 전체 종사자 중 총 근무기간이 10년 이상이 비중이 43.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은행의 막대한 인력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판매관리비의 60~70%에 달한다.

글로벌 은행들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금융회사의 수익성과 인건비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성과연봉제 도입과 함께 직무의 내용이나 조직 기여도, 책임을 측정해 임금을 지불하는 직무급 확대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사결정과정이 지연되는 것도 직급 세분화의 부작용 중 하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고절차와 결정이 늦어지면서 대출고객을 놓친 적이 있다”면서 “최근 이런 문제가 영업에 걸림돌이 돼 개선추세에 있지만 여전히 단계별로 받아야 하는 결재는 업무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