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는 더 똑똑해지고 있을까 [루먼 초두리]
지난 몇 년 동안 인공지능(AI)은 더 큰 ‘언어모델(Language Model)’을 만드는 경쟁, 즉 덩치를 키우는 데 몰두해 왔다. AI에서 말하는 ‘모델’은 데이터를 학습해 언어를 이해하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의 두뇌다. 쉽게 말해, 질문을 이해하고 대답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언어 생성 엔진인 셈이다. 지금까지 업계에서는 “더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더 복잡한 계산을 돌릴수록 AI는 더 똑똑해진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AI의 미래는 가장 거대한 모델이 아니라, 더 효율적이고 현명한 모델, 즉 ‘소형 언어모델(Small Language Model·SLM)’이 이끌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작은 모델들은 단순히 크기를 줄인 기술이 아니라, AI를 더 똑똑하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되돌리려는 새로운 시도다. LLM(대규모 언어모델)은 오랫동안 ‘규모가 곧 진보’의 상징이었다. 수천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이 모델들은 거대한 데이터셋을 학습해
2025.11.04 11:09
트럼프 APEC 격랑의 아시아 [라자 모한]
아시아를 방문 중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과의 양자 정상회담을 포함해 아시아 지역의 정치·경제 지도자들과 연쇄 회담을 갖는다. 이는 미국의 아시아 관여 정책에서 새로운 중대한 장(章)이 열리는 순간을 뜻한다. 이제 과거의 기준은 무의미해졌다. 세계 경제의 중심인 아시아에서 트럼프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글로벌 질서를 좌우할 것이다. 만약 중국과의 무역 휴전이 성사된다면, 이는 경제적 분절을 완화하고 전략적 조정의 시간을 벌어주는 ‘관리된 경쟁’(managed rivalry)의 단계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수정된 현실적 조건 속에서 미국의 동맹 관계가 안정된다면, 아시아 지역의 균형 유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축 중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아시아와 세계는 심각한 혼란에 직면할 것이다. 이번에 트럼프를 맞이하는 아세안(ASEAN), 일본, 한국에게는 새로운 격변을
2025.10.28 11:19
한국이 APEC에서 승리하는 방법 [허아람]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개최국으로서 한국이 공개한 홍보 영상은 화려한 스타들로 가득하다. K-팝 스타 지드래곤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박찬욱 감독, 축구선수 박지성, 셰프 안성재 등이 등장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바로 이재명 대통령이다. 그는 회원국 비행기의 착륙을 돕는 항공 유도 요원으로 짧게 카메오 출연한다. 외교부는 이 장면이 내부 위기 이후 한국이 세계 무대로 질서 있게 복귀한다는 의미를 상징한다고 밝혔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이는 결국 그의 기소·탄핵·극심하게 분열된 조기 대선으로 이어지는 연쇄 사건을 촉발했다. 그 결과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며 정권은 진보 진영으로 교체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운동 초기부터 자신이 ‘실용 외교’라 부르는 노선을 내세웠다. 안보 동맹국인 미국과 주요 경제 파트너인 중국 사이의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국은 그 사이에
2025.10.23 11:26
통화스와프의 지정학 [지안루카 베니그노]
배경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통화스와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무역·투자 협상의 하나로 미 연방준비제도(Fed)와의 상설 통화스와프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미 재무부가 외환안정기금(ESF)을 통해 아르헨티나에 스와프 기구를 제공해 현지 통화를 안정시키는 방안을 결정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러한 기술적 장치 이면에는 더 깊은 현실이 존재한다. 통화스와프는 ‘국제통화 위계(monetary hierarchy)’의 상징이 돼버렸다. 자국이 선호하거나 필요한 외화, 특히 달러에 대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은 단지 금융 안정성을 좌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나라의 지정학적 정체성과 방향성을 보여주는 신호로 작용한다. 이 글에서는 스와프라인이 무엇인지 간략히 살펴보고, 달러 중심의 미 연준 네트워크와 위안화 중심의 중국인민은행(PBoC) 네트워크를 비교한다. 두 시스템의 목적과 작동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면서, 이들이 결국 국제통화체계의 비대칭성―즉, 달러
2025.10.15 11:15
스테이블코인 전략 없는 기업 도태된다 [크리스티안 카탈리니]
항공사 마일리지에는 재미있는 점이 있다. 사실상 그것은 일종의 사설 화폐다. 항공사가 이 마일리지를 발행하고, 환율을 통제한다. 이 환율은 항공사가 마음대로 평가절하할 수 있으며, 신용카드 파트너사에 수십억 달러어치로 판매된다. 많은 항공사에 이 고수익 금융 사업은 비행기를 띄우는 본업보다 훨씬 수익성이 좋다. 비슷한 이야기는 커피숍에서도 벌어진다. 스타벅스는 애플리케이션에 고객 예치금 19억 달러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열성적인 카페인 애호가들로부터 받은 무이자 대출과 다름없다. 이들 기업, 그리고 수많은 다른 기업들은 중요한 진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고객의 신뢰를 얻으면, 논리적인 다음 단계는 은행이 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사설 화폐 생태계는 폐쇄적인 ‘정원’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한 지니어스법(GENIUS Act)은 다소 과장된 이름의 규칙집 같지만, 그 벽을 허물고 있다. 이 법안은 인터넷 기반 달러를 만드는 명확한 정부 승인 절차를 제공
2025.09.16 11:34
중국의 위협, 흔들리는 한국 첨단산업 [로버트 앳킨슨]
한국은 조선, 가전, 반도체, 자동차, 화학, 철강, 배터리 등 주요 첨단산업에서 중국과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동안 한국 기업들은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한국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강력한 국내 정책이 필요하다. 과거 시행했던 투자세액공제를 부활시키고, 미흡한 연구개발(R&D) 세액공제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동맹국들과 협력하지 않는다면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특히 불공정하고 중상주의적 방식으로 생산된 중국의 첨단 제품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 미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첨단산업은 다른 산업과 작동 방식이 다르다. 규모가 곧 경쟁력이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클수록 비용 구조는 낮아지고, 미래 투자를 위한 자본도 늘어난다. 반대로 점유율을 잃으면 고정비 부담은 그대로 남아 비용이 증가하고, 투자 여력은 줄며 경쟁력은 약화된다. 혁신적인 돌파구가 없으면 급격한 축소나 몰락
2025.09.03 11:15
소화불량에 걸린 중국 [배리 아이켄그린]
중국 지도부는 수년간 소비 촉진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전은 매우 미미했다. 이제 중국 경제가 버티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이 시급하게, 그리고 대대적으로 가속화되어야 한다. 중국의 산업 설비 투자와 수출 중심의 생산 모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정책으로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한때 145%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대중 관세는, 베이징이 희토류 광물 수출 제한을 위협하자 여전히 타격이 큰 30%로 낮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관세율을 향후 90일간 유지한 채 협상을 이어가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외 정책 흐름을 보면, 관세 인하를 크게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중국의 대미 수출은 이미 급격히 줄었으며, 2025년 상반기에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0% 이상 감소했다. 이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집권 마지막 2년 동안 이미 이어져온 감소세에 더해진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우회 수출 길마저 차단하며, 제3국 조립·환
2025.08.27 11:09
제도권 진입 스테이블코인,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크리스티안 카탈리니]
지난달 미국 의회에서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정식으로 통과됐다. 이 법안은 업계에 중대한 전환점이며, 앞으로 우리는 이를 스테이블코인의 본격적인 대중 채택 직전의 변곡점으로 회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단 하나의 미국 법률 통과가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어떤 문제가 남아 있을까. 미국에서 창업가, 투자자, 그리고 소비자 옹호단체까지 수년 동안 암호화폐 분야의 규제 명확성을 요구해 왔다. 이전 행정부는 이 기술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 게리 겐슬러가 선호한 ‘집행을 통한 규제’ 기조에서 잘 드러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적대적인 분위기보다, 명확한 규칙의 부재가 불법 행위자들이 합법적 사업자들과 뒤섞여 활동하도록 방치했고, 이는 업계가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로 하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점이다. 그 공백이 남긴 대가는 테라·루나 붕괴 사태에서 뼈저리게 드러났다. 창업자 권도형은 몬
2025.08.22 11:45
트럼프는 왜 인도를 손절했나[웨이 상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인도를 “죽은 경제(dead economy)”라고 규정하며, 인도산 대미(對美) 수입품에 대해 총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절반은 미국산 제품에 대한 인도의 불공정 무역 장벽에 대한 보복이고, 나머지 절반은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에너지 제품 수입에 대한 제재 차원이다. 그러나 인도는 동시에 ‘역동적이고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로도 평가받으며, 러시아와 미국 모두와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는 외교력은 상업·전략적 이점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인도 경제는 ‘죽은 것’일까, ‘역동적인 것(dynamic)‘일까? 삼성, SK, 현대차를 비롯해 글로벌 기업들이 공급망 재편과 생산기지 이전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죽은 경제’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는 인도의 높은 수입 장벽에 따른 비효율성을 가리킬 수도, 외국인 직접투자(FDI) 기업들이 인도에서 겪는 관료적 규제를 의미할 수도 있
2025.08.19 11:11
일본 ‘제노포비아’ 확산[후쿠다 신이치]
지난 7월 20일, 일본은 참의원 선거를 실시했다. 선거 결과 외국인 노동자 수의 증가에 반대하는 정당들이 큰 성과를 거뒀다. 특히 극우 성향의 군소정당인 참정당(Sanseito)은 의석 수를 크게 늘렸다. 참정당은 외국인 노동자 배제를 명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지만, 감소하는 노동력을 값싼 외국인 노동력으로 대체하려는 발상은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의 수용을 제한하고, 이들의 영주권 및 가족 초청을 규제하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내외 언론은 이러한 산세이당의 부상에 놀라움을 표하며, 일본 국민 사이에 ‘우경화’ 경향이 감지된다고 보도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다른 주요 국가들에 비해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매우 낮았다. 하지만 1995년을 정점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하면서, 일본은 대체 노동력으로 외국인 노동자 유치를 위한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최근 수년간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일본 출입국재류관
2025.08.12 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