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롭 실링(Slop Ceiling): AI 오물과 인간 검증의 한계 [크리스티안 카탈리니]
AI는 빛의 속도로 생성하지만, 검증은 신뢰의 속도로 움직인다. 얼마 전 아마존웹서비스(AWS)에서 한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클라우드 엔지니어들이 달라붙었음에도 몇 시간 동안이나 사태를 되돌리지 못했다. 문제는 시스템 자체의 결함이 아니었다. 제로데이 공격(zero-day exploit·소프트웨어 제작사도 모르는 약점을 이용한 해커의 공격)도, 하드웨어의 연쇄 고장도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허무할 정도로 평범한 문제였다. AI 코딩 어시스턴트에게 소프트웨어 환경을 수정하라는 일상적인 작업이 맡겨졌다. 이 도구는 환경을 분석하더니 ‘전체를 다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그대로 실행해 버렸다. 배관공을 불러 물이 새는 수도꼭지를 고쳐달라고 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화장실이 통째로 철거돼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AI는 아주 ‘열심히’ 일했지만, 작업 시작 전 그 계획을 검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태평양 건너편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검증
2026.03.25 11:12
디지털 위안화와 통화 권력의 新지형 [지안루카 베니그노]
지난 반세기 동안 국제통화 질서의 논리는 비교적 명확해 보였다. 한 통화가 세계적 역할을 수행하려면 자유롭게 태환(兌換)될 수 있어야 했다. 국경을 넘어 쉽게 교환되고, 투자에 활용 가능하며, 깊고 개방적인 금융시장을 기반으로 해야 했다. 달러가 지배적 통화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그 지위가 오랫동안 흔들릴 수 없어 보였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는 이 전제를 시험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자본 통제를 서둘러 해체하거나 금융시스템을 서구식으로 개방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국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화폐와 새로운 국경 간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위안화는 완전한 태환성을 갖추지 않고도 국제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길을 열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디지털 위안화를 둘러싼 논의는 주로 기술적 측면, 감시 강화의 가능성, 혹은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프레임에 집중돼 왔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보다 미묘하면서도 잠재적으로 훨씬
2026.02.10 11:09
일본 인플레이션 5년차…가격보다 중요한 건 임금상승 [와타나베 츠토무]
약 30년에 걸친 이른바 ‘만성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을 겪은 끝에 일본은 마침내 2022년 봄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국면에 들어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사실상 변동이 없던 물가와 임금이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는 그 전환이 시작된 지 5년째에 해당한다. 이 변화가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일본이 과연 ‘정상적인’ 경제 환경으로의 이동을 완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이번 변화는 일본의 디플레이션 극복 정책이 마침내 성과를 거둔 결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은 정책 당국이 당초 구상했던 방식으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인플레이션은 주로 해외에서 수입된 것이었고, 이후에야 임금 인상 등 국내 요인과 맞물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말한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은 분명하다. 정상적인 경제에서는 물가가 연 2% 안팎의 완만한 속도로 상승하고, 임금은
2026.02.06 11:35
소버린AI를 위한 다른 길: 한국의 SLM<소형언어모델>과 오픈소스 전략 [머브 히콕]
한국의 인공지능(AI) 전략은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네 가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① 기술과 인프라 혁신 ② 스타트업과 인재 육성 ③ 포용성과 공정성의 문화 조성 ④ AI 거버넌스 분야에서의 글로벌 리더십 확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정부는 ‘소버린 AI(sovereign AI)’를 강조해 왔다. 이는 경제적 경쟁이자 국가 안보 차원의 필요로 규정된다. 경제적 경쟁이란 미국과 중국의 AI 파운데이션 모델에 대한 글로벌 대안이 되겠다는 의미다. 안보적 측면은 특히 국가 안보와 관련된 데이터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역량을 뜻한다. 몇 달 전 정부는 소버린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최종 선정 기업에는 2000억원(미화 73억5000만달러) 이상의 공공 자금이 지원될 예정이다. 이 예산에는 데이터 확보 및 처리, GPU 임차, 인건비 등이 포함된다. 아직 선정 절차는
2026.02.02 11:07
핀테크의 AI 질문, 상당수가 틀렸다 [크리스티안 카탈리니]
핀테크는 지난 15년 동안 ‘은행은 인가 문제(charter problem)를 안고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말을 점잖게 설명해 왔다. 때로는 마케팅 문구였고, 때로는 사실이었으며, 또 어떤 때는 금융 서비스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돈을 만질 자격을 얻고, 유지하는 일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말이었다. AI는 이 문제를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날카롭게 만든다. 대중적으로 유통되는 AI 서사는 이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범용 기술이라는 것이다. AI는 코드를 작성하고, 문서를 요약하며, 고객 문의에 답하고, 정책을 초안 작성하고, 의심 거래를 표시하고, 대출 심사를 돕고,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여름 인턴보다 더 빠르게 발표 자료를 만든다. 다시 말해 AI는 ‘소프트웨어화된 노동(labor-as-software)’이며, 금융 서비스의 상당 부분은 서류 작업, 조정, 예외 처리, 서로 단절된 시스템 사이에서 정보를 옮기는 일로 구성돼 있
2026.01.28 11:10
한 시대의 종언, 글로벌 무역 질서 어디로 가나 [프랑소와즈 니콜라]
2025년, 분수령의 해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볼 때 2025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왔던 규칙 기반 글로벌 무역 질서가 사실상 막을 내린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 체제는 이미 상당 기간 압박을 받아왔고, 변화하는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거나 대응하지 못하면서 점차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이 특별한 이유는, 기존 질서에 대한 공격이 다름 아닌 이 시스템의 설계자였던 미국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도입한 이른바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는 비차별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조치이자, 다자간 규칙 기반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다. 비차별 원칙은 전후 무역 체제의 핵심 기둥 가운데 하나였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그리고 이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도화된 최혜국대우(MFN) 조항에 따르면, 회원국이 특정 교역 상대국에 관세 인하와 같은 유리한 조건을 부여할 경우, 그 혜택은
2026.01.21 11:05
현금이냐 현물이냐…복지 지원의 정치·경제학 [스테파니 스탠체바]
최근 미국에선 부분적인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업무 정지)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저소득 가구가 식량 지원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혼란은 모든 선진국이 오랫동안 씨름해 온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사회는 가장 가난한 구성원들을 어느 정도까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도와야 하느냐는 문제다. 이 질문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복지 확대, 근로연령층 빈곤, 사회보장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선진국 전반에서 빈곤 구제에 대한 사고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전통적인 모델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역사적으로 빈곤 완화 정책은 배우자를 잃은 여성이나 장애인처럼 노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집단을 대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모델이 자리 잡았다. 저임금 노동자, 특히 자녀를 둔 가구에 지원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목표는 소득을 ‘대체’하는 것이
2026.01.19 11:25
2026 미중 무역전쟁과 한국의 대응[마테오 마지오리]
2026년이 막 시작됐다. 이미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이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볼 수 있다. 올해 남은 기간에도 이런 흐름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강대국들의 노골적인 경제·군사 행동의 재개를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강대국 경쟁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 영역을 생각해보는 게 좋다. 첫째, 미국은 여전히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둘째,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강대국들이 치열하게 경쟁한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점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셋째, 중국은 기초 제조업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금융 전쟁터 과거에는 지루하다고 여겨졌던 결제 시스템과 기본 금융 서비스가 이제는 강대국 경쟁의 중심이 됐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통해 다른 나라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능력은 이란·러시아 제재, HSBC 압박, 국제은행간 금융결제망(SWIFT)에서 특정 기관 분리까지 다양하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전
2026.01.14 11:44
기업의 세 가지 스테이블코인 전략 [단테 디스파르테]
전 세계 모든 기업은 스테이블코인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발행할 필요는 없다. 스테이블코인의 핵심은 ‘개방형 디지털 화폐’이며, 이 개방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이는 기업과 조직이 항상 연결된 인터넷 환경에서 대규모 결제와 경제 활동을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해준다. 최근 미국의 지니어스(GENIUS) 법안과 유럽의 암호자산시장규제(MiCA) 등 스테이블코인 관련 주요 법률이 등장하면서 규제 환경이 명확해졌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과 이사회는 스테이블코인을 두고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직접 만들 것인가(build), 사올 것인가(buy), 아니면 협력할 것인가(partner)다. 스테이블코인 네트워크를 처음부터 구축하는 일은, 마치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막대한 자본과 기술 투자를 무시하고 바닥부터 AI 플랫폼을 만드는 것과 같다. 기업들이 AI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자체 대형언어모델을
2026.01.13 11:09
“AI기술 일자리 양극화 초래할 수도” [토마 피케티에게 듣다]
세계적 석학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본지 서면 인터뷰에서 “혁신과 재분배가 긴장관계에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21세기 조건에 맞는 사회 민주적 전환이 없다면, 높은 불평등이 장기지속하는 체제로 진입할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인공지능(AI)·가상자산 등이 번영의 도구가 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토록 하려면 제도·정치적 선택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음은 피케티 교수·세계불평등연구소(WIL)의 리카르도 고메즈 카레라 연구원과 진행한 공동 인터뷰의 일문일답. -불평등은 역사적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나, 아니면 극도의 불평등이 장기 지속하는 체제로 진입하고 있나. ▶나는 우리가 불평등의 역사적 정점에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매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극심한 불평등은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정상 상태였다. 지속적인 불평등 완화 국면은 드물었고, 취약했으며, 정치적 조건에 크게 좌우됐다.
2026.01.06 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