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지정학 시험대 오른 비트코인[개릭 하일먼]
필자가 약 10년 전 암호화폐의 지정학적 함의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대부분 회의적이었으며 심지어 대놓고 무시하는 이들도 많았다. 2016년, 필자는 중국 인민은행이 미국 중심의 글로벌 금융 질서를 흔들 전략적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중국은 채굴과 거래 모두에서 전세계를 압도하며 비트코인 생태계의 핵심 허브로 군림하고 있었다. 해당 논지는 필자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이자 금융 및 지정학 분야의 석학인 나이얼 퍼거슨(Niall Ferguson) 교수와의 논의를 거쳐 발전된 것으로, 비트코인이 기술적 호기심의 대상에서 국가 전략 도구로까지 진화할 수 있다는 가설에 기반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공상에 가까운 주장처럼 들렸던 이 전망은, 이제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시간이 흘러 2025년 3월이 되자, 예상과 달리 중국이 아닌 미국이 먼저 과감한 비트코인 비축 행보에 나섰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전략적 비
2025.04.29 11:36관세보다 센 ‘新제조업 전쟁’ 온다[아서 허먼]
20세기 미국 경제사상계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1977년 출간한 저서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rtainty)’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이 겪었던 혼란의 정국을 다뤘다. 당시 미국은 인플레이션, 아랍의 석유 금수 조치, 베트남전 이후의 사회 불안, 뉴욕시 파산 위기까지 겹쳐 재난에 가까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후,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다시 국가적 자부심을 되찾고 인플레이션을 잡았으며 본격적인 경제 회복에 들어갔다. 오늘날 그 ‘불확실성의 시대’는 전 세계가 함께 겪는 현실이 됐다. 이번엔 석유 금수 조치 때문이 아니다. 4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세계 경제 질서를 뒤집고, 관세를 무기로 중국의 무역·산업 지배력을 꺾으려는 미국 정부의 강경한 정책이 원인이다. 이 여파로 미국 채권 시장을 포함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뿌리째 흔들렸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70
2025.04.23 11:43관세 폭풍…높아지는 日 글로벌 리스크 [후쿠다 신이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간 일본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은 도요타와 소니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 기업들이 주도해 왔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일본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주요 산업국 가운데 GDP 대비 수출 비중이 매우 낮은 편에 속했다. 예를 들어, 2000년 일본의 총 수출은 GDP의 약 10.5%로, 이는 OECD 평균인 약 20.9%와 세계 평균인 약 23.5%에 크게 뒤떨어진 것은 물론, 미국의 약 10.7%보다도 약간 낮은 수치였다. 이는 당시 일본 내수 시장의 규모가 여전히 컸으며, 글로벌 경쟁력이 높은 제조업 기업들의 주요 수익원이 일본 내 판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수출 비중은 급격히 상승해 2014년에 17.4%, 2023년에 21.8%를 기록했다. 이는 2023년 기준 약 11.0%에 머물러 있는 미국의 수출 비중과 뚜렷한 대조세를 보인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수출 비중이 빠르게 증가한 주요 배경에는 세 가지 구조적인
2025.04.17 11:15트럼프 ‘관세 공식’, 두 가지 치명적 오류[웨이 상진]
최근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국가적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은 외부로부터 또 다른 충격을 받을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수입품에 대해 부과한 25%의 고율 관세가 바로 그 충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록 관세 발효일이 7월 9일로 연기되었지만 충격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이 타국의 금속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모든 제품에 145%를 부과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 큰 위안이 되지 않는다. 한국은 대중 (對中)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많은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타국 기업과 연결되어 있기에 이들 국가의 경제 약화는 곧 한국 경제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본인이 촉발한 전세계 무역 전쟁을 전세계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길 원했는지, 만우절 다음 날까지 기다렸다가 관세를 발표하는 신중함(?)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의도가 성공적이었다는 근거는 아직까지 찾아볼 수 없다. 트럼프가 말하는 ‘상호관세’는 사실
2025.04.15 11:33관세폭탄보다 심각한 ‘마러라고 합의’<인위적 달러 약세 정책 추진> 실현 가능성 높다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의 모든 국가에 고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90일 연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중국을 명백히 표적으로 삼는 등 변덕스러운 움직임으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이것이 트럼프 경제팀에서 나올 수 있는 최악의 소식이 아닐 수도 있다. 무역 관세는 분명 해롭지만, 쉽게 해제될 수 있다. 관세의 인상과 철폐는 국가 간 신뢰에 큰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지만, 금융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조치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미국처럼 개방된 자본 계정을 가진 국가들은 갑작스러운 신뢰 붕괴가 자본 유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은 안정적으로 자본을 유치해왔으며, 이는 무역 적자의 규모 자체보다도 중요한 요소다. 미국은 자국의 무역 적자를 외국 자본으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외국 자본이 이에 대한 프리미엄을 요구해오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미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유지한 덕분이다. 이처럼 미국이 무역 불균형은 물론 과도한 재정 적자까지
2025.04.11 11:07권위주의 지도자, 왜 갈수록 독재적으로 변할까 [카우시크 바수]
3년 전, 필자는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조금이라도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왜 권위주의적 성향이 악화하고 결국 독재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지에 대한 연구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경제학과 심리학 이론에 기반한 이론적 글로, 제목은 ‘독재자의 변형: 왜 독재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빠지는가(The Morphing of Dictators: Why Dictators get Worse Over Time)’였다. 필자는 이 논문을 한 학술지에 게재했고, 대부분의 연구 논문과 마찬가지로 경제학이나 정치학을 공부하는 일부 학생들과 연구자들이 점차 읽게 될 것이며, 수 년 뒤엔 그들 중 일부가 이 이론을 확장하거나 발전시키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가 빠르게 확산하고 민주주의는 점차적으로 침식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필자가 쓴 논문이 예상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논문이 주목받는 것은 일반적으로 연구자에게 기쁜 일이지만, 이번
2025.04.08 11:16중국과 국제무역체제에 대한 불편한 진실 [드와이트 퍼킨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세계 자유무역 체제는 오랫동안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위협을 받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집착은 자유무역 체제를 흔들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볼 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북미 지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에서도 중국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비판론자들은 중국이 자국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대규모 보조금 정책을 시행하고 위안화를 저평가하며, 지식재산권을 존중하지 않는 등 세계 무역질서를 교란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최근에 제기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상당수는 중국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수십 년 전 일본의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던 시기에도, 미국은 엔화가 저평가됐으며 일본이 수입을 제한하기 위해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가 위험하다’는 등 규제정책을 교묘하게 이용했다고 일본의 무역 관행을 비판한 바 있다. 거의 25년 전, 오늘날과는 달리 국제사회는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의 새로운 회원국으로
2025.04.02 11:00AI기술, 이제 ‘사치재’가 아니다[마이클 얼리슨]
AI 학습의 새로운 패러다임 수년간 인공지능(AI) 연구는 오픈AI, 구글 딥마인드(DeepMind), 앤트로픽(Anthropic) 등 서구권 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 딥시크(DeepSeek)는 AI 개발 경쟁의 판도를 바꿀 중요한 전환점으로 보인다. 단순한 거대 언어 모델(LLM)을 넘어, 기존의 통념을 깨는 학습 방식을 제시하며 글로벌 AI 기술의 기준을 새로 쓰려 하고 있다. 딥시크가 놀라운 이유는 성능이 아니라 설계에 있다. 오픈AI의 모델이 방대한 데이터, 사람의 검토, 정교한 강화 학습에 의존하는 반면, 딥시크는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전략을 택했다. 이 방식이 널리 적용된다면, 기존AI의 근본적인 개념이 흔들릴 수 있다. 지나치게 복잡했던 AI 학습, 돌파구가 열릴까? 지난 10년간 AI 발전은 정해진 공식을 따라왔다. 더 큰 모델, 더 많은 데이터, 더 강력한 연산 자원을 투입하는 이른바 ‘물량 공세’다. 물론 효과는 있
2025.03.27 11:06핵심 광물·지정학·통제권을 둘러싼 경쟁 [아딧야 신하]
2010년 9월, 센카쿠 열도 인근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하는 사건으로 현대 권력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건 이후 불과 몇 주 만에 전 세계 주요 희토류 공급국인 중국이 핵심 광물에 대한 일본의 접근을 차단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충격으로 작용했다. 이것이 의도적인 경제적 압박이었는지, 아니면 불투명한 수출 정책의 자연스러운 결과였는지는 중요한 논점이 아니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보다 근본적인 현실은, 21세기 권력의 기반은 군사력이나 재정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력은 기술 문명의 동력인 원소들의 통제권이라는 물질적 요소에도 깊이 내재돼 있다. 리튬, 코발트, 희토류는 단순한 원자재 그 이상이다. 이제는 산업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영향력의 새로운 수단인 것이다. 아시아는 글로벌 제조업의 중심지임에도 공급망 집중화 현상에 휘말리며 지질학과 지정학이 교차하는 불안정한 게임 속에 갇혀 있다. 핵심 광물을 확보하는 문제는
2025.03.21 11:22트럼프의 폭주, 과학의 위기 [프랭크 파스퀘일]
미국의 IT매거진 편집장이었던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은 2008년에 “이론의 종말(End of Theory): 데이터 홍수로 인해 과학적 기법은 구식이 됐다”는 글을 출간했다. 현재의 AI시대를 예견한 이 잡지 기사는 이례적으로 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앤더슨의 가설은 단순명료했다. ‘빅데이터(big data)‘ 시대에는 사물의 궁극적인 원인을 찾고자 하는 과학적 탐구가 시대에 뒤처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학적 탐구 대신에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데이터를 쏟아붓고, 기계를 점진적으로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는 행동 경로를 식별하도록 학습시키면 된다. 그 과정에서 기계(또는 기계의 프로그래머)가 그러한 식별의 역할을 실제로 이해하는 지의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구글 연구진이 말하는 ’데이터의 놀라운 효율성(unreasonable effectiveness of data)’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관점이다. 2025년 현재
2025.03.19 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