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윤현종ㆍ민상식 기자] 직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사고 원인에 따라 책임 소재는 엇갈립니다. 중요한 건 직장 과실, 즉 기업의 잘못으로 결론났을 때 이 회사를 ‘살인죄’로 벌할 수 있느냐인데요. 영국은 가능합니다. 김재윤 전남대 로스쿨 부교수가 2014년 ‘형사정책연구’에 쓴 논문에 따르면 영국은 2007년 7월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2008년 4월부터 시행 중입니다.
이 법 1조를 요약하면 “기업 등의 운영ㆍ조직 실패로 근로자가 사망하고, 그 ‘실패’가 고위관리자에 의한 것으로 기업이 부담해야 할 주의 의무를 어겼을 경우 기업과실치사죄가 성립한다”입니다. 개인을 넘어 법인(法人)도 단죄 대상으로 포함한 것입니다. 여기서 법인이 내야 할 벌금엔 상한선이 없습니다 보험으로 ‘땜질’도 불가능하다고 규정합니다.
지금까지 이 법의 심판을 받은 ‘살인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벌금이 부과된 건 우리 돈으로 따져 20억원이 채 안 됩니다. 반면 이들 회사의 기업가치는 벌금의 25∼66배에 달합니다. 주의의무를 위반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 몬 회사와 그 책임자들을 살펴봤습니다.
1. 볼드윈스크레인하이어(Baldwins Crane Hire)
영국 중장비 운영업체 볼드윈스크레인하이어는 기업과실치사법 시행 이후 가장 무거운 심판을 받았습니다.
2011년 8월, 이 회사 직원 린제이 이스턴(사망 당시 49세)이 크레인을 몰고가다 사망했습니다. 좁은 채석장 연결도로를 달리던 크레인은 균형을 잃고 옆 제방을 들이받았습니다. 그가 운전한 130톤 짜리 차량 윗 부분의 무거운 구조물이 운전석을 덮쳤습니다. 이 사고는 운전자 부주의 탓으로 ‘덮힐’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국 조사 결과 기업 책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속속 드러났습니다.
회사가 운영 중인 대형 크레인 차량의 75%가 부실상태였습니다. 이스턴이 몰던 차량도 브레이크 시스템 5개 중 4개가 고장이었습니다. 그는 망가진 차량 제동장치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심지어 이스턴은 불량한 장비 때문에 안전에 위협을 느껴 회사를 휴직한 적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법원이 “부실한 운영 등이 이스턴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판단한 이유입니다.
결국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22일 벌금 90만파운드(15억1000만원)를 물어야 했습니다. 영국 ‘기업살인법’ 발효 이후 가장 큰 액수였습니다. 그러나 당국이 죗값을 계산하는 동안에도 회사는 잘 나갔습니다. 자산운용사 인베스텍(Investec)은 볼드윈스크레인을 ‘제일 빨리 크고 있는 100대 비상장사’ 85위로 꼽기도 했죠. 웨인 볼드윈(Wayne Baldwin) 등 오너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이 회사의 가치는 최소 2000만파운드(337억원)에 달했습니다. 기업 가치의 4%만을 책임 진 이 기업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2. CAV에어로스페이스(CAV Aerospace)
2013년 1월, 영국 캠브리지 공항에 있는 CAV에어로스페이스의 한 창고. 하도급 노동자 폴 바우어스(사망 당시 47세)가 수 톤 짜리 비행기와 맞먹는 무게의 알루미늄 건축자재들에 깔려 죽었습니다. 법원은 회사 측이 창고 안전관리에 실패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사를 직접 진행한 영국 ‘보건ㆍ안전위원회(HSEㆍHealth and Safety Executive)’도 “이 사고는 완벽한 인재(人災)”라고 결론내렸습니다.
2000년 세워진 CAV 에어로스페이스는 에어버스ㆍ걸프스트림 등 유명 여객기에 부품을 공급하는 직원 600명 짜리 중견기업입니다. 영국ㆍ폴란드ㆍ멕시코 등 전 세계 7개 지역 작업장을 운영 중이었죠. 이 회사가 법원 판결을 못 이겨 바우어스 ‘목숨값’으로 낸 돈은 벌금과 비용 등을 합쳐 72만5000파운드(12억2000만원)입니다.
그러나 이는 작년 3월 경영진이 회사를 투자기업 베터캐피탈(Better Capital)에 팔고 받은 돈 4800만파운드(808억원)의 1.5% 수준입니다. 사고 당시 최고경영자(CEO) 오언 데이비드 맥팔랜 (Owen David Mcfarlaneㆍ57)의 개인자산 5650만파운드(951억원)과 비교하면 1%를 겨우 넘는 돈이었습니다. 맥팔렌은 심리 내내 회사 책임을 적극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3. 스티리사이클(Sterecycle (Rotherham) Limited)
세 번 째로 많은 벌금을 문 회사는 자원재활용 기업 스티리사이클입니다. 2011년 1월 이 회사 노동자 마이클 윈프리는 폭발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숨졌습니다. 공장 내 정화장치가 고압을 못견뎌 폭발하며 그를 덮쳤습니다. 강한 압력은 공장 벽에도 큰 구멍을 낼 정도였죠.
이 사고 역시 조사 결과 “100% 피할 수 있었던 인재”로 결론 났습니다. 남부 요크셔 경찰은 “스티리사이클 측은 작업장 안전이 수년 간 심각하게 위협 받아온 걸 인지하지 못했다”고 덧붙입니다.
그런데 회사는 사고가 일어난 뒤에도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습니다. 같은 해 12월 510만파운드 규모 투자를 받기도 했죠. 이 때 쓰레기 처리능력은 연간 17만5000톤에 달했습니다. 서울서 1년 간 발생한 생활쓰레기 74%(2015년 11월 기준)를 이 공장 하나가 감당할 수 있었단 뜻입니다. 기업가치도 2013년 기준 1690만파운드(284억원)를 찍었습니다.
이 회사 CEO 톰 실즈(Thomas Shields)도 다른 ‘살인기업’ 경영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고 심리 내내 회사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11월 7일 법원은 스티리사이클에게 벌금 50만파운드(8억4000만원)를 내라고 판결했습니다. 판결 후 1년이 지나지 않아 이 회사는 청산절차를 밟았습니다.
해산 이전 스티리사이클이 낸 벌금 규모는 기업가치의 3%가 채 안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픽. 이해나 인턴디자이너
윤현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