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적 민주주의’는 ‘말’로 거의 모든 것이 이뤄지는 정치권의 ‘절대 방패’다. 상대방이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때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라”는 공격을 날리고, 뜻이 관철된 이후에는 “모든 절차를 지켰으니 불합리해도 어쩔 수 없다”는 방어 자세를 취하는 식이다.
지난 17일 새누리당 전국위원회를 ‘보이콧’함으로써 비박(非박근혜)계 중심의 비상대책위원회ㆍ혁신위원회 출범을 저지한 친박(親박근혜)계 역시 같은 방패를 꺼내 들었다. 친박계 핵심중진인 홍문종 의원은 다음날 즉시 전면에 나서 “정진석 원내대표가 (비대위 인선에 대해) 다양한 분들과 미리 상의를 했어야 한다”며 “전국위원들이 아무런 상의도 없는 회의에 참석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에게 (관련 내용을)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결함을 지적했다.
조직적으로 혁신을 무산시킨 친박계에 쏟아질 비난을 방어하는 동시에, 비대위 인선 파동을 특정인ㆍ특정세력의 이해관계 문제가 아닌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조치다. 그러나 친박계의 이런 논리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다시 절차적 민주주의가 친박계의 논리를 파괴하는 무기다. 찬성ㆍ반대 표결과 토론이 보장된 공식회의에 ‘불참’함으로써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본산’인 국회에서 일어나선 안될 비이성적 행위다. 비대위 인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회의에 참석해 반대표를 던지고 대안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당내 소장파인 하태경 의원은 “회의장에서 토론할 용기조차 없는 것이냐”며 “(전국위에서) 무제한 토론을 해도 부족할 판에 회의 자체를 열지 못하다니 절망스럽다”고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결국 문제를 바로잡을 수단도 절차적 민주주의다. 장외에서 “전국위는 불발됐으니 이제 생각이 다른 자는 물러나라”는 협박을 반복하는 대신, 다시 정상적으로 전국위를 열고 그 안에서 서로의 총의를 모아야 한다. “사람들을 설득해 전국위를 다시 개최하자. 그것이 당이 사는 최선의 대안이다” 하 의원의 절절한 마지막 당부가 뇌리에 깊숙이 각인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