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은지 기자] 방송가 예능이 소심해졌다. 정규 편성으로 자신 있게 내놓는 예능은 점차 사라지고, 파일럿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핀다. 부족한 제작비, 예측 불가능한 성적표가 빚어낸 방송가의 현실이다.
지난 몇 해 사이 각 방송사의 예능국 PD들은 더 치열해졌다. 불꽃 튀는 시장의 경쟁구도 안에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서다. 기발한 아이템으로 무장한 신제품을 내놓아도 결과는 알 수 없다. 신상품들의 시장경쟁은 도리어 더 치열하며, ‘정규편성’을 손에 쥐고 때로는 예능국과 편성팀의 권력 싸움이 일기도 한다.
방송사들이 파일럿 프로그램에 매진하는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쉽사리 시청률을 예측할 수 없기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편성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택광 문화평론가(경희대 교수) 역시 “제작비와 시청률”을 이유로 들며 “정해진 한도 내에서 초기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규 편성에는 많은 제작비가 드는데 새로운 아이디어는 리스크가 크니까 일단 파일럿으로 시작해 효과가 있으면 정규로 편성하는 것”이라는 성명이다.
‘맛보기’로 정규 편성에 성공한다 해도 시청률은 ‘신의 영역’이다. 어떤 프로그램은 시작은 미비했지만 파일럿을 발판 삼아 시즌제로 승승장구 하고, 파일럿 때는 높은 시청률로 기대를 모았지만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대중들의 외면을 받기도 한다. 파일럿 프로그램에서조차 ‘변수’가 많아진 셈이다. 방송가 관계자들은 지난 2015년 설 당시 첫 선을 보였던 MBC ‘복면가왕’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이 같은 사례로 꼽는다. 누구도 성공을 예상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성공해 현재에도 승승장구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럴 지라도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고 들어간다는 점에서 파일럿은 그 어디에도 없는 최고의 시험대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시험대에서 눈에 띄기 위한 노력도 눈물 겹다. 정규 프로그램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 제작비로 보여줄 수 있는 아이템을 최대한 쏟아낸다. 모든 파일럿의 꿈은 ‘정규 편성’이기 때문이다.
이택광 평론가는 “파일럿을 정규로 편성할지 말지는 시청률에 달려 있고, PD 입장에서도 시청률이 보장돼야 제작비가 나오는 것”이라며 “시청률이 곧 제작비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