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난 몇 해 사이 방송가엔 ‘데칼코마니 예능’이 난무했다. 히트작 만들기에 눈이 먼 예능PD들은 된다 싶은 아이템에 몰려들었다. 복제하듯 쏟아진 프로그램들은 이른바 ‘예능 트렌드’의 변화를 더 빨리 불러왔다. 소재별로 분류하니 시청자는 그간 복사판 예능에 많이도 웃었다. 육아예능에 흐뭇했고, 가족예능에 따뜻했다. 여행예능에 대리만족을 느꼈고, 쿡방(요리하는 방송)에 입맛을 바꿨다. 요즘은 음악예능에 한창 귀호강 중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복사하듯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꼬집는다. 특히 지상파 방송3사에서 끝도 없이 빚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예능PD들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예능PD들의 고충은 참신한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없는 방송사의 제작환경에 있었다. 다채널 시대에 돌입한 이후 광고시장은 다수의 매체가 나눠가지는 구조가 됐다. 지상파 3사와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은 방송사의 최대 수익인 광고 매출을 삼분한다. 광고재원이 줄어드니 제작비도 덩달아 줄일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

KBS의 한 예능PD는 “제작비는 나날이 줄어드는데 적은 비용으로 높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프로그램과 같은 수준의 콘텐츠를 요구한다. 뻔하더라도 가장 안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심지어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인력도 줄인다. 업무강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고위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사는 현재 재원을 놓고 경쟁이 과열돼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럴지라도 아예 새로운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포상금까지 주는 사내 기획안 공모전은 일선 PD들의 창의력을 높이고, 독특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장이다. 하지만 참신한 기획안을 들고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할지라도 방송사에선 모험을 하기를 주저한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론칭해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고스란히 ‘리스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예능PD는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윗선에선 큰 돈을 써가며 모험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성공사례가 있어 안정적인 시청률을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를 바라기에, 결과를 놓고 보면 새로운 시도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엇비슷한 그림의 예능 프로그램이 줄줄이 쏟아지는 이유다.

모 방송사의 10년차 예능PD는 “타사에서 이미 인기를 모았던 예능 프로그램이 신규 콘텐츠로 줄줄이 편성되는 상황을 보고 자괴감을 느낀다”고까지 토로했다.

심지어 없는 제작비로 프로그램을 꾸려가려니 모 방송사의 예능PD들은 협찬까지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 됐다.

현재 방송사 관계자는은 현재의 예능가는 과거와 달리 “1년 단위, 6개월 단위로 트렌드가 바뀐다”고 진단한다. 한 예능PD는 “주기가 빨리 바뀌니 방송가는 예능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했다. 어떤 방송사에선 새로운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쏟아내기도 하고, 어떤 방송사에선 안정적인 시청률이 나오는 식상한 프로그램만 내놓는다”며 “대단한 명장도 하루 아침에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없들 수는 없는데 제작여건이 열악하면 고충이 클 수 밖에 없다. 각사마다 결정한 생존법이 갈리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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