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 꼴찌 회사 환골탈태 시킨 자산운용업계 ‘난세의 구세주’…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의 투자·교육철학
영웅지재(英雄之材). 재주가 비범하고 용략이 탁월한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흔히 영웅지재는 난세에 요구되는데, 주변이 혼란하고 어지러울 때 재주와 용략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지난 2년 사이 자산운용업계에도 이 같이 평가되는 인물이 있다. 2014년 1월 국내 자산운용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수익률 꼴지의 메리츠자산운용을 환골탈태시킨 존 리 대표를 향해 ‘난세의 구세주’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한 치 앞을 예단하기 어려운 투자업계에서 35년 이상을 일해온 그는 이런 시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한적한 서울 북촌 사옥에서 존 리(58ㆍ한국명 이정복)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를 직접 만나봤다.
그는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키운 투자신념과 교육철학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을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또, “아직도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투자란 끊임없는 훈련의 연속이자 결과”라고 소신을 밝혔다.
▶‘긍정왕’ㆍ‘방목형’ 교육이 나의 뿌리=“풍족했죠. 하지만 다른 차원의 ‘풍족’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미래는 ‘여성’, ‘교육’, ‘금융’에 있다면서 모든 분야의 기본과 결과는 ‘교육 방식’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자신의 성장경험에서 비롯된 그의 철학이다.
이 대표는 건설업에 종사했던 아버지의 사업이 승승장구한 덕분에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0년대 당시 2층 양옥집에 전화가 있는 집은 인천 시내에서도 드물었다. 존 리 사장은 그런 부유한 집의 6남매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늦둥이 막내아들을 ‘품안의 귀한 아들’로 키웠을 것 같지만 그의 어머니는 소위 ‘방목 교육’을 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했던 어머니는 어린 막내 아들을 홀로 서울살이를 시켰다.
“어머니가 인천에서 택시를 잡고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중에 가장 좋은 곳으로 데려달라’는 한 마디를 하셨지요. 그리고 덕수 초등학교에 다니게 됐습니다. 그게 전부였어요. 그 이후로는 전학을 가든 입학식을 하든 다 혼자 하는 식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거나 ‘무엇이 돼야 한다’는 식의 간섭이나 강요도 없었고 단지 ‘나는 너를 믿는다’는 격려만이 전부였어요.”
그의 어머니는 이 대표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이후로는 과외 한번 시키지 않았다. 자식이 무엇을 하든 항상 믿고 지지해줄 뿐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때문일까. 갑작스레 가세가 기울었을 때도 그는 큰 흔들림이 없이 지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대표가 12살이 되던 무렵,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2층 양옥집에서 어느 순간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갈 만큼 생활 환경이 급변했다.
“지금 생각하면 불행해졌다고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었을 만한 상황인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긍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어머니의 교육방식이 한 몫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긍정 정신’만큼은 풍족하게 심어줬다고 자부했다.
▶모든 경험은 인생의 ‘밑천’=“고생스럽다고 여긴 모든 순간이 오늘날의 저를 만들었지요.”
그는 연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지만, 답답함을 느꼈다. 획일적인 한국의 교육 방식이 스스로와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무작정 큰 누나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호기로운 선택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오늘날의 ‘존 리’를 만들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미국에 큰 누나가 있으니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유학을 결정했지만, 언어적인 장벽에다 경제적인 지원 없이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죠(웃음)”
미국에서 의사로 일했던 큰 누나는 경제력이 충분했지만 막내 동생이 뉴욕대(NYU) 합격했다며 등록금 고지서를 내밀자 “그걸 왜 내가 내줘야 하지”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스스로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는 현실을 체감하면서 그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유소, 식당, 택시운전사 등 종류만도 35개가 넘는 다양한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는 그 때 ‘노동의 가치’와 ‘돈을 어떻게 버는지’에 대한 생각을 틔웠다고 했다. 어떤 비즈니스가 성공하고 또 어떻게 하면 망하는지 현장에서 몸소 부딪히며 배웠다.
“주유소나 식당에서 일한다고 창피하거나 하지 않았어요. 땀의 가치를 알게됐고, 체면 때문에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내 돈이라면 어떻게 굴릴까” 먼저 생각한다=그가 투자업계에 첫 발을 들인 계기는 뉴욕대(NYU)에 개설돼 있던 회계사 교육 프로그램에 들어가면서다. 그리고 1985년 KPMG의 전신인 피트 마윅에서 회계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KPMG에서 7년간 기본기를 다진 그는 이 후 스커더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한국 사람이라는 이점을 살려 이듬해부터 15년간 ‘코리아펀드’를 운용했다. 그는 스커더자산운용이 가졌던 기업철학과 투자원칙에 굉장한 ‘감명’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스커더자산운용사는 ‘가족은 경영에 개입할 수 없다’, ‘경영권 경쟁이 있어야 회사는 성장한다’, ‘회사 지분은 전부 직원이 갖는다’ 등등의 훌륭한 원칙을 지키면서 회사를 운영했죠. 거기서 제 투자철학을 더 굳건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고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회사는 엄청나게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때문에 메리츠자산운용은 새로운 펀드 출시에 앞서 직원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고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주력한다.
“일선 직원들이 우리가 운용하는 펀드에 가입이 안돼 있다는 게 처음에는 의아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펀드가 출시되면 직원들부터 먼저 가입을 합니다. ‘내 돈이라면 어떻게 굴릴까’ 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반영이 될 수 밖에 없어요.”
메리츠자산운용이 최근 중국펀드나 벤트남펀드 출시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이유도 결국 “내 돈이라면 어떻게 굴릴까”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펀드 투자를 단기 목돈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닌 ‘노후 준비’로 여기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3개월, 6개월 단기적으로는 투자한 회사의 성적이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당장 손절매 하는 것은 ‘투기’와 다름없지 않나요?.”
IMF 금융위기, 리먼사태 등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외부충격을 수 없이 경험해온 그는 진짜 투자 고수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때문에 단기간의 펀드 성과를 놓고 재단하는 외부 평가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메리츠자산운용의 투자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꿔야 산다”= “구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35년만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업무방식, 교육방식, 회식문화 등은 모두 30년전 그대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충격이었지요.”
35년간의 해외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이 대표는 더욱 객관적인 시각으로 한국 시장, 한국 사회를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그는 대표이사 취임 이후 여의도에 있던 사옥을 종로구 북촌으로 이전했다. 소위 ‘선수’들이 몰려있는 여의도에 있어야 한다는 자체가 구시대적인 업무방식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업무보고는 보고서 없이 이메일을 활용하도록 바꿨다. 자율출퇴근제도 도입했다.
“고객을 행복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직원들이 행복해야 합니다. 직원들이 행복하려면 잘못된 갑을관계나 상명하복 관계는 없애야 해요. 그래서 회식도 없애고, 불필요한 문서작업이나 보고서 쓰는 일도 없도록 했습니다. 술마시며 업무관계를 맺는 관례나 의전도 필요가 없다고 했지요.”
처음에는 ‘정말 이래도 되는지’ 눈치를 보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직원들의 만족도는 수직 상승했다.
특히 여직원들의 만족도와 업무성과는 시너지를 내 더욱 빛을 발했다.
한국 사람들이 자녀 교육에만 이른바 ‘몰빵’을 하고 노후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는 분위기도 그는 안타깝다고 했다.
“자본과 노동이 함께 일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자녀들에게 ‘자본이 일하는 방법’에 대해 전혀 가르치지 않아요. 부모들이 대신 전부 다 해주려고 하죠. 끊임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는 ‘한국의 노인층 빈곤율’이 세계 1위라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대한민국 노인 빈곤이 사회적인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때문에 노후 준비에 대해 젊은층이 인식을 새롭게 해야하고 특히 사교육에만 몰입돼 있는 ‘아줌마 파워’를 달리 발현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과 투자’에 대한 기본기가 바로 잡힌다면 한국의 미래는 무척 밝아요. ‘공부 잘하라’는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한 부자’가 되라고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하루 하루가 매일 기대되기 때문에 요즘에도 새벽 3시에 일어난다고 했다. 그는 자산운용사 대표로 일하는 바쁜 와중에도 연간 2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교육 및 투자 관련 강연을 진행하며 ‘바꿔야 산다’는 자신의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hyjgogo@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