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12월 대선에서 당선돼 2003년 취임했다. 17대 총선은 노무현 정부의 2년차인 2004년 4월 치러졌다. 지난 대선과 총선 사이에는 1년 4개월 정도의 시간차가 있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지지 세력을 중심으로 열린우리당이 창당됐고, 탄핵 정국 직후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다음 대선까지는 3년이나 남은 때였다. ‘현재권력’의 승리였다. 2008년 18대 총선은 이명박 정부 출범 2개월만에 치러졌다. 당시 한나라당에선 ‘친이계’(親이명박계)는 ‘공천학살’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친박(親박근혜)진영을 거세했다. ‘현재권력’의 승리였다.

2012년 19대 총선은 대선을 8개월 앞두고 이명박 정부 말기에 치러졌다. 유력한 대선주자였던 당시 박근혜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지휘했다. ‘친박’의 승리였고, ‘미래권력’의 승리였다.

17대와 18대 총선은 정권 초중반기에 치러짐으로서 ‘현재권력’이, 19대는 정권 말기에 이루어짐으로써 ‘미래권력’이 총선을 지배했다.

오는 4ㆍ13 총선은 대선을 1년 8개월 앞두고 치러진다. 이전 3차례와는 총선 시기가 다르다. 박근혜 정권 후반기에 들어섰지만 19대 총선 당시만큼 말기는 아니다. 더구나 ‘선거의 여왕’으로 꼽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비슷한 임기 시점에서의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훨씬 강하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당연히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이 불가피한 시점이다. 그러나 19일까지 대부분 마무리된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에선 ‘미래권력’의 싹은 보이지 않았다. ‘현재권력’의 압승이었다. 청와대가 ‘미래권력’의 조기 득세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뜻이 관철된 것이라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그 결과 여권의 제1 잠룡으로 꼽혔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친박’의 완벽하게 포위됐다. 대권주자로서의 리더십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현재로선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의원이 ‘친유’(親유승민)계의 공천탈락으로 사실상 당내 지지기반을 송두리째 잃고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거취 결정’ 압박을 받고 있는 것도 청와대의 의중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도 정치권에선 ‘정설’이다.

총선 때마다 공천을 두고 보복, 학살 등 섬뜩한 단어를 동원해 불거지는 여당 내의 극한적 계파싸움이 결국 ‘현재권력’과 ‘미래권력’간의 투쟁으로부터 비롯된다는 해석이 있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총선이 4년마다 치러지고 대선이 5년마다 치러짐으로써, 생명을 다해가는 권력과 새롭게 떠오르는 권력 사이의 대립과 충돌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풀이도 내놓는다. 한국 정치의 예측불가능성을 키운다는 것이다. 4와 5의 최소공배수는 20이다. 20년에 한번씩만 겹친다. 헌법이 지금대로 유지된다면 2032년에나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치러진다. 그 때까지는 총선 때마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간의 불일치와 불균형, 대립과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공천을 좌우하는 또 다른 변수는 정치학이 아니라 수학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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